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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839호-스미스와 올바른 종교학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4. 7. 16. 14:24

스미스와 올바른 종교학

 

news letter No.839 2024/7/16

 

 

 

조너선 스미스의 학문 세계를 정리할 일이 생겨 읽은 책이 샘 길(Sam Gill)올바른 종교학: 조너선 스미스를 바탕으로(2020)이다. 2017년 스미스가 사망한 이후 그의 학문적 성과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출판된 책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수십 년째 스미스와 길의 책을 읽으며 종교학을 공부해 왔던 터라 둘 다 친숙한 학자이다. 그 둘의 대화를 듣는 기분으로 읽은 책이다. 샘 길은 북미 원주민(Native American) 종교 연구자로, 스미스와 전공 분야는 달라도 이론적 관심을 공유하며 작업해 왔다. 예를 들어, 스미스의 꼼꼼한 자료 비평에 자극받아, 원주민 자료가 학자들에게 변용되어 인용되는 방식을 추적한 이야기 따라가기(Storytracking, 1988)를 저술한 바 있다.

 

스미스의 학문을 정리하는 길의 방식은 독특하다. 여기서 스미스의 학문을 요약할 여유는 없다. 다만 샘 길의 저작에서 스미스를 취급하는 독특한 논점 하나에 집중해서 말하고 싶다. 이 독특성은 길이 스미스와 평생 이론적 관심을 공유한 학문적 동지였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1960년대 말 거의 같은 시기에, 스미스는 교수로, 길은 대학원생으로 시카고대학에 와서 만났다. 이 시기는 미국의 종교학이 팽창하던 때였다. 공립교육기관에서 지식으로서 종교를 가르치는 것(teaching about religion)이 합당하다는 1963년 미국 대법원판결이 내려진 이후, 종교학과 설립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1960년에 25개였던 미국대학 종교학과 수는 1966년에 173개가 되었다. 스미스와 길은 종교학의 폭발적 성장기에 대학원을 다니고 교수가 되었던 세대의 사람들이다.

 

샘 길은 스미스 학문의 의미를 결산하는 책의 제목을 올바른 종교학”(Proper Study of Religion)이라고 붙였다. 사실 “proper”는 우리말로 옮기기에 까다롭다. 샘 길이 의도하는 뜻은 알맞은, 풀어 말하면 공립대학에서 학문으로서 걸맞은 자격을 갖춘종교학이고, 그 결과 올바른, 제대로 된종교학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올바른으로 하겠다. 샘 길이 보기에 스미스의 학문은 학문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종교학, 올바른 종교학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문제는 그의 학문을 결산하는 이 자리에서 지금의 종교학이 그러하냐는 것이다. 샘 길은 이렇게 묻는다. “이제 1960년대 중후반에 학문적 이력을 시작한 이들 대부분이 은퇴하거나 사망했다. 이제 결산의 시간이다. 종교에 관한 학문적 연구(academic study of religion)는 성숙했는가? 종교에 관한 학문적 연구는 현대 세속 대학에서 안정적이고 올바른 자리를 획득했는가? 내 느낌으로는 이 질문 어느 것에도 자신 있게 강한 긍정을 할 수 없다.”(6)

 

여기서 올바른 종교학을 만들기 위한 스미스의 지적 노력이 무엇이었는가를 언급할 수밖에 없는데, 이 글에서 다루기엔 너무 중요한 내용이므로 한두 가지 예로 대신하고자 한다. 말년의 강연에서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유적인(generic) 종교 연구 발전을 위한 기초 작업이 당시에(1960년대)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기대는 대부분 실현되지 못한 채로 있다.” 유적이라는 것은 종교 일반에 대한 관심을 말한다. 자신의 연구가 자기 분야를 넘어서 종교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 관심의 공유가 미국 종교학계에서 제대로 되지 못한다는 것이, 샘 길이 강조하는 논점이다.

 

조너선 스미스가 공유된 지적 관심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한 이론 작업으로 유명한 것이 비교에 관한 것이다. 스미스는 비교의 목적/종말’”(the “end” of comparison)이라는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스미스는 이중적 의미의 제목을 즐겨 다는데, 여기서도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end”가 사용되었다. 아마도 여기서 “end”는 비교로 대표되는, 공유된 종교학 이론을 정초하려는 지적 노력이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지시한 말일 수도 있다. 적어도 샘 길은 그렇게 읽어내고 있다.

 

스미스로 대표되는 종교학의 한 세대가 가고 있다. 종교학과의 팽창과 더불어 등장한 이 세대는 올바른 종교학을 정초하였는가? 샘 길은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그는 스미스의 학문을 정리하는 저서에서 종교학의 위기를 말하였다. “개인의 죽음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학문 분야의 죽음”(21)이라고 언급할 때는 어두운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샘 길의 진단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게 미국은 이상적인 종교학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마다 종교학과가 있고, 큰 대학에는 한국의 종교학과 교수들을 합친 것보다 큰 교수진이 있는 곳이다. 한국의 열악한 종교학 현실을 탓할 때, 그곳에서는 우리가 못하는 것을 한다는 막연한 부러움을 가지곤 했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대규모의 종교학을 운영해 온 미국 학계에서 우리가 겪는 것과 다르지 않은 어려움을 토로하는 게 놀라웠다. 물론 샘 길의 이야기 하나로 미국 종교학계를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짧은 경험에 비추어봐도 그러한 진단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는 감은 온다. 수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공유된 지적 관심의 결여는 그 학문의 위기이다. 그들의 그림자와 지금 우리의 그림자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방원일_
숭실대학교 HK연구교수
블로그: http://bhang813.egloos.com
주요 논문으로 〈원시유일신 이론의 전개와 영향〉, 〈한국 개신교계의 종교 개념 수용 과정〉 등이있으며, 지은 책으로 《메리 더글러스》, 옮긴 책으로 《자리 잡기》, 《자연 상징》 《(개신교 교사들이 본) 근대전환공간의 한국종교 I: 1879~19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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