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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종교적 유물들: 새로운 의미화, 혹은 ‘세속화profanation’의 가능성
news letter No.841 2024/7/30
전 세계 어느 박물관을 가든 거의 대부분 우리는 과거 실제 종교 의례에 사용되었던 물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고대의 무덤 흔적, 관, 부장품, 봉헌물로부터 부적의 역할을 한 다양한 물건들, 기도 용품들, 나아가 여러 종교 건축물의 제단, 벽, 천장을 장식했던 그림들, 조각들, 이 모든 것들은 오늘날 박물관의 주요 수집품이자 전시물이다. 한때 종교적 의미로 충만했던 이들은 박물관이라는 장소에 놓이면서 역사적, 고고학적, 인류학적, 예술적 유산이자 자료로 재의미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재의미화가 곧바로 종교적 맥락의 상실을 의미하진 않는다.
상반기 서점가 베스트셀러 중 하나이기도 했던,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는 저자가 이슬람교 예술 전시실에서 근무하던 때, 한 무슬림 방문객이 전시실의 미흐라브(Mihrab,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모스크 내의 벽감)가 실제 메카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확인한 후 여기서 기도해도 되냐고 묻고 그 앞에서 잠시 기도 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이 일화는 박물관의 전시물이 된 종교적 물품들이 여전히 살아있는 종교적 대상으로 인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88년 미국 볼티모어 월터스 미술관에서 열린 “거룩한 이미지, 거룩한 공간(Holy Image, Holy Space)” 전시 기간 중 엘 그레코의 <성흔을 받는 성 프란체스코> 앞 보호 유리에는 매일 수많은 입술 자국이 남았다고 한다. 이 그림이 예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시를 위한 예술 작품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성인/성물에게 하듯이 그림 속 성 프란체스코의 손에 입 맞추려 한 사람들이 많았던 까닭이다(전시의 기획자였던 중세 미술사가 게리 비칸Gary Vikan은 그림 앞에 보호 유리를 씌우기로 한 결정이 참으로 현명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아프리카 전시관이나 뉴욕 아프리카 미술관에서는 종교적 유물 앞에 관람객들이 남기고 간 봉헌물들이 종종 발견되며, 어떤 이들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직접 또 다른 성물을 가지고 와서 전시물 앞에서 그것을 꺼내어 기도하기도 한다.
전시물에 대한 관람객들의 이같은 종교적 행위는 박물관의 정체성 및 유물의 보전과 관련된 문제를 야기한다. 미국 뉴욕의 루빈 미술관(Rubin Museum of Art) 4층 <티베트 불교 사원> 전시실 안내문은 이와 관련된 박물관의 입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즉 안내문은 “실제 염주를 들고 사원에서 기도하는 행위를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도 그렇지만 “스카프, 돈 등 봉헌물을 바치는 행위는 삼가” 달라고 분명히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빈 미술관은 불교미술 및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고 또 여러 미디어 장치들을 통해 관람객들이 불교 물질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을 의도하는 장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적 공간으로서의 박물관의 정체성, 그리고 아마 더 중요하게는 소장품의 보존에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되는 노골적 종교적 행위는 분명히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박물관에서의 종교적 행위는 역설적 의미에서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세속화profanation’이기도 하다. 원래 희생제의에 의해 신의 영역, 종교의 질서에 속하게 되게끔 구분된 것을 의도적으로 더럽혀 인간 모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다시 되돌리는 행위를 의미하는 말 ‘세속화profanation’는, 아감벤에게 기존의 고정된 질서와 분류에 저항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박물관이라는 특정 이념적 장소에 배치되어 역사적 인류학적 예술적 유산으로 분류되고 규정된 것들을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종교적 예배 대상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기존의 질서와 분류 및 규율에 균열을 일으키는 저항으로도 해석될 수 있고 이럴 경우 이는 역설적으로 ‘성별(聖別), 신성화 consecration’가 아니라 ‘세속화profanation’인 것이다.
박물관의 유물 수집과 보존 정책 자체를 작품의 소재로 삼는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 갈라 포라스-김(Gala Porras-Kim)의 작업들은 박물관이라는 공간에 새로운 ‘성스러움’의 층위를 쌓는 작업이 역설적으로 아감벤적 의미의 ‘’세속화’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또 다른 예다. 그녀의 작품은 미술관에 들어와 소장품, 전시품이 된 과거 종교적 유물들의 성격을 탐구하고 이를 전시장의 맥락 속에서 재탄생시킨다. <영국 박물관의 이집트 제 5왕조 기자 석관을 위한 일출> 전시에는 그녀가 영국 박물관 관리자에게 보낸 편지(여기서 그녀는 박물관에 소장된 이집트 기자 제5 왕조 석관 창문이 고대 이집트 종교의 관습대로 동쪽을 향해 재배치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와 더불어, 석관 복제물, 그리고 석관이 놓인 방향에서 원래의 종교적 관습에 맞게 놓이기 위해 회전되어야 할 거리를 나타낸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다. 박물관 소장품인 고대 석비를 드로잉한 작품 위로 신비스런 고대의 악기와 찬가 소리가 울려 펴지는 가운데 이 공간을 더 흥미롭게 혹은 ‘성스럽게’ 만드는 것은, 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된 곰팡이 포자를 번식시킨 감자즙배지(<만기의 순간 나타난 영원한 흔적>)다. 그녀의 작품이 만들어낸 전시실 안의 이 독특한 ‘성스러운 공간’은, 종교적 오브제가 박물관에 들어오게 된 맥락(박물관 관리자에게 보낸 편지), 그 이전의 먼 과거(석관 복제물과 동쪽을 가리키는 화살표), 그리고 그 위에 더해진 이후의 많은 해석과 재해석의 시간(소장품의 드로잉, 고대 악기 및 찬가의 재현), 나아가 미술관이라는 공간, 수장고에서 이어져 간 또 다른 시간의 층위(미술관에서 생겨난 곰팡이 포자의 번식)를 드러내는 다층적, 팔림세스트적공간이다.
갈라 포라스-김의 작업은 종교적 유산의 보존, 연구, 전시 공간으로서의 미술관/박물관에 놓인 유물들 위에 겹겹이 쌓인 복잡하고 이질적인 맥락의 층위들을 하나하나 드러내며, 이 공간을 단지 과거 고대 무덤의 흔적을 보존한 공간이 아닌, 지금 현재,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종교적 공간으로 탄생시킨다. 박물관에 놓인 종교적 물건은 단순히 과거의 석화된 유물이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는 문화적 매개체이며, 동시에 새로운 의미 생성의 장(場)이다. 이러한 다층성, 복잡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해석과 체험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 될 때 박물관, 미술관은 단순히 과거의 봉인된 무덤이 아니라, 계속 현재에 살아있으면서 새로운 의미화와 사유, 저항을 가능하게 하는, 모두를 위해 열려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최화선_
서울대학교
논문으로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기”: 점술의 사유와 이미지 사유>, <이미지와 응시:고대 그리스도교의 시각적 신심(visual piety)>, <후기 고대 그리스도교 남장여자 수도자들과 젠더 지형>, <기억과 감각: 후기 고대 그리스도교의 순례와 전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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