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大衆)의 시선으로 보는 수행(修行) news letter No.857 2024/11/19 우리나라에 단일한 ‘종교법’은 여전히 만들어지지 않고 있지만, 가톨릭의 「교회법」, 개신교의 「총회헌법」 그리고 조계종의 「조계종법」은 있다. 이들 종교계의 법률들은 종교계 내부의 조직, 제도, 규범 및 행위들을 규율하고 통치‧감시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면서 오늘날 국가의 법제 형식을 반영하면서 확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개별 종교의 자율성은 보장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할 점은 우리 주변의 교인(敎人)들이나 신도(信徒)들까지 종교법의 관할 아래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목회자, 성직자, 승려의 여러 비위(非違) 행위들이 소위 세간(世間)의 재판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
恨江은 흐른다 news letter No.856 2024/11/12 1986년 5월, 저는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생 몇 명과 함께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찾았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열사들에게 슬픔의 꽃을 바치며, 1980년 5월 희생된 한 초등학생의 무덤 앞에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듬해에는 학생과 농민, 노동자들이 신군부 정권에 맞서 거리로 나섰습니다. 저는 한국이 곧 민주적인 정치 체제를 갖춘 '동방의 등불'이 되어 세계무대에서 떳떳하게 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타고르는 “그 등불이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조선은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고 말했습니다. 타고르의 예언은 오늘날 전 세계의 젊은 층을 매료시키는 한류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 듯합니다. 2024년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이 예언..
폭력과 종교 news letter No.855 2024/11/05 어찌 보면 그 차원과 성격이 다른 용어를 맞붙이는 것이, 독자들 심경에 불편을 끼칠까 봐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근년에 빈번하게 내 생각 속을 헤집고 다니는, 저 어휘들의 의미를 솔직히 짚어보고 싶다.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간주하며 한 걸음 물러나서 본다고 하더라도,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레바논- 이란 등지에서 반복되고 있는 전쟁과 테러야말로 인간이 초래할 수 있는 폭력의 최극단이다. 그 폭력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꼬리표 즉, 민족 · 종교를 거듭 주목한다. 특정 종교의 신앙심에 투철한 성년의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다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런데 아직 아무것도..
종교, 문헌, 목록, 공구서 news letter No.854 2024/10/29 조선 천주교의 초기 신자들이 1811년 신미년에 로마 교황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처음에 서적을 읽고 천주교를 시작했습니다(初以書籍開敎).” 또 이런 말도 등장한다. “온 천하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간 곳 가운데 사제의 전교로 말미암지 않고 단지 글과 책에 의지하여 도를 구한 것은 우리 동국뿐입니다(普天下聖敎初入之地 不由司鐸傳敎 只憑文書訪道 惟有我東國).” 이처럼 조선 천주교는 책으로 시작된 종교였다. 그래서 중국에서 간행된 한문본 천주교 서적을 들여오는 데에도 열성적이었고, 또 이를 번역하여 언해 필사본으로 돌려 읽기도 하였다.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신자들을 이끄는 시대가 되어서도 천주교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