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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 만해, 무능에 얽힌 무시기 이야기

-제6차 종교문화탐방을 마치고-


2011.7.19


본 연구소는 7월 17일-18일 양일간 백담사, 만해마을로 종교문화탐방을 다녀왔다. 7월 들어 계속 장마 비가 내렸고, 출근하는 월요일(18일)이 끼여서 그런지 당초 같이 가고자 한 연구원들이 바쁜 일로 한둘씩 빠지고 나니 결국 10여명만이 1시30분정도에 사당동을 출발했다. 장마 뒤 처음 게인 날씨라 산천은 더욱 푸르고, 여울이 사니 계곡과 못들은 신명이 나 넘치고, 산천 구경하는 인간들도 갑작 한 소식하여 도인이 된 듯하다. 오래 만에 풍광에 젖어 세속의 짐을 던져 버리고 고담준론을 즐겨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잔득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주위 풍광을 즐길 틈도 없이 일정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만해마을에 5시 정도 도착하자 안내원이 반갑게 맞아주면서 불쑥 백담사 아침예불 참례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당초 계획은 저녁에 같은 시대를 살면서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린 <<불교유신론>>을 쓴 만해선사와 <<한국불교통사>>를 쓴 무능거사의 일대기를 조명하고 무능거사를 중심으로 논의를 좀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새벽예불 참례하고 백담사 둘레 길을 살펴보려 하였으나 현장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설악산입구인 국립공단 관리사무소에서 백담사까지는 무려 7키로 이상이나 되는 거리이고, 길이 험하여 차로도 한 30분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담사 예불을 가려면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운행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한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알아들었는지 몰라도 와서 현장에서 해결하자는 촌장님의 말씀과는 사뭇 다르다. 짧은 일정을 계획한 우리로서는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새벽 예불을 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백담사를 들어가는 입구를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차량 통과는 관리공단과 협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새벽 예불을 가려면 공단 당직자를 새벽 3시 깨우기도 미안하고 또 그런 전례도 없다며, 비온 뒤라 길이 위험하여 한 밤중에 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 차량을 운행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고, 가끔 멧돼지도 출현해서 한 밤중에 걸어서 백담사를 간다는 것도 문제라고 한다. 일행은 어쩔 수없이 일정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백담사 저녁 예불에만 잠깐 참례하기로 하고 이후 만해마을로 돌아와 오늘 예정된 세미나까지 하는 것으로 하고, 다음날은 좀 편한 일정으로 만해마을 옆에 있는 십이선녀탕계곡의 응암폭포를 들러보고 시간이 남으면 한 두 곳을 더 찾기로 하였다.

전체 일정을 변경하고 보니 우리 일행은 저녁예불 참석을 위해서도 서둘러야 했다. 백담사 저녁 예불은 백담사내 템플스테이 참석자가 많아 저녁 식사 이후 7시에 봉행한다고 한다. 현재시간 5시 반. 일행이 저녁식사를 하면 6시까지 운행되는 셔틀버스를 도저히 이용할 수 없는 상황. 우리는 저녁 예불시간을 맞추기 위해 백담사 종무소에 다시 연락해서 우리가 가져온 차량이 6시 20분경에 국립공원 입구를 통과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일행이라는 사실을 여러 번 강조했다.

백담사 종무소는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협의해 본다더니 바로 연락이 왔다. 셔틀 버스운행 시간을 지나면 외부 차량의 통과는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사찰 내부 차량으로 위장해서 입구를 통과할 수 있는 비상대처 방안을 가르쳐 주었다. 첫째, 만해마을에 계시는 스님이 인솔하고 오는 방안, 둘째는 사찰내부 사람이 위급하다며 구조요청에 응하는 방안, 셋째는 사찰에 필요한 공양물 특히, 당일 저녁 예불 공양물을 싣고 오는 방안 등을 제시하였다.

우리는 저녁예불에 필요한 공양물을 가져가는 차량으로 위장하기로 하고 가는 길에 공양물을 구입해 가기로 약속했다. 미역과 쌀 등의 공양물을 구입해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모든 문이 잠겨 있는 것이 아닌가. 못가는 것이 아닌가하고 걱정을 하던 차에 사무소 안에서 한 사람이 불쑥 나타나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 저녁 공양을 구입해 간다고 대답하자 어렵게 산 공양물 확인도 없이 바로 통과시켜주었다, 아마 백담사 종무소에서 차량번호를 알려준 모양이다.

어떻든 차량은 30여분 동안 백담계곡을 끼고 백담사까지 달렸다. 큰 비가 온 뒤라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백담의 계곡의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한 물줄기가 굴러가다 한 곳에 머물고, 다시 솟구쳐 비룡이 되고, 다시 바위 속에 잠룡으로 변했다가 바위 틈새로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용오름은 마치 살아 있는 용이 마음껏 재주를 부리는 듯했다. 그리고 저녁 예불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백담사 앞 계곡의 장관을 보고는 돌아 갈 생각조차 잊어버리고 모두가 얼이 빠진 사람처럼 서성거렸다. 내가 갈 길을 재촉했으나 풍광에 취한 일행 누구하나 반응이 없다.

이렇게 도착 당일 일정을 급하게 치루고 나니 다음날 일정은 좀 여유가 생겼다. 전체적으로 일정을 잘 끝내고 설악산 응암폭포를 본 후 안개가 낀 한계령을 돌아서 오색 약수터를 찾았다. 탁 쏘는 탄산수 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 이 지역 별미라고 할 수 있는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그날 7시경에 무사히 귀경하였다.

한편, 본 연구소는 지금껏 연구소의 회원을 대상으로 종교문화에 대한 이해와 종교적 감성을 함양하기 위해 분기별로 ‘종교문화 체험행사’와 더불어 관련 종교의 ‘대중 강좌’를 겸하여 ‘한국종교문화 탐방행사’를 시행해 왔다. 이런 행사를 통하여 한종연 회원들에게 한국 종교문화체험은 물론, 회원 간의 교류의 장을 제공하고, ‘각 종교의 신앙생활’과 ‘그 종교의 현황과 향후 전망’을 점검해 보는 계기로 삼고자 하였다.

그래서 2009년 7월 1차로 소수서원을 필두로 하여 10월 2차로 해남 대흥사를 방문하였으며, 그리고 2010년 2월 3차로 천주교문화탐방을 위해 강원도 인제에 있는 다물 피정의 집을 방문하였으며, 4차로 종교문화탐방으로 파주에 있는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을 방문하였다. 마지막으로 2010년 10월 5차로 천도교수도원을 탐방한 이후에 관련 탐방행사가 한 동안 뜸했다. 그 이유는 짧은 일정에 종교문화 체험행사와 대중강좌를 동시에 추진하다보니 잘 이루어지지 않고, 행사 추진에 소요되는 경비와 노력에 비해 사업성과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핵심 연구원들의 참여가 부족하여 관련 주제의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그래서 다른 해결책을 마련해 보느라고 탐방행사를 뒤로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 연구소가 학진 지원으로 이능화선생의 <<조선불교통사>>와 <<조선기독교급외교사>>를 강독하는 소모임을 만들게 되자 회원들과 함께 최초의 한국종교학자이신 이능화선생의 연보와 학문세계를 살펴보는 이번 탐방행사를 다시 기획하게 되었다. 그래서 동 강좌에 만해선사와 무능거사의 행적, 그 삶의 궤적에 대한 발표와 토론을 하게 되었다. 사실은 진선생의 발표는 토론을 위한 기초 자료를 마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 선생은 두 양반이 10년(이능화선생이 앞인가) 터이나 교류한 흔적이 없다며, 아마 삶의 과정이 너무 다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1870-80년대 나시고 격변의 세상을 도시에서 향촌에서 다르게 겪고, 성인으로서의 행적도 너무 다르기에 둘을 묶어 무슨 얘기를 한다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다만 일본제국주의 시기 피식민 민족, 지성인의 삶을 학자와 운동가라는 양 측면에서 더듬어 본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탐방행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의 많은 협조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의 준비 부족으로 소기의 성과를 얻지는 못한 것이 아쉽다. 혹자의 말대로 동 행사가 대중적인 성격도 갖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소모임의 계기도 만들어 내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 연구소 차원에서 다시 의견을 수렴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단지 밤늦게 황선명 선생(자호가 주책바가지, 主冊博學志)이 혼자서 찾아와서 이번 행사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감사를 드린다. 자칭 천재를 넘어 만재라는 선생의 동서고금 종교를 넘나드는 훌륭한 말씀 듣느라 모두가 대책 없이 밤을 지새고 말았다. 또 다른 주책바가지(主冊博學志)인 진철승 선생은 새벽녘에 지쳐 모두 잠이 들자 혼자서 남은 술병을 들고 개울에 나가 자기말로는 밤새 물소리를 즐겼다나요. 글쎄. 결국 다음날 진짜 주책바가지가 누군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자기가 그렇게 된 데는 소장의 책임이라나.. 그래 알았다. 이 소장이 죄가 많다.

윤승용_

한종연 소장

seyoyun@yahoo.co.kr


주요 논문으로〈한국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 연구〉,〈근대 종교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방안〉등이 있고,

저서로《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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