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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68호-제헌절에 생각해 보는 종교헌법(민경식)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8. 9. 17:09

제헌절에 생각해 보는 종교헌법

2011.7.26



1.
우리나라에는 법과 관련이 있는 국가적 축일(祝日)이 이틀이나 있다. 4월 25일의 “법의 날”과 7월 17일의 “제헌절”이 바로 그날이다. 제헌절은 5대 국경일 중의 하나로서, 기념일에 지나지 않는 법의 날과 구별된다. 사람이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듯이 국가를 세우려면 먼저 헌법을 제정하게 된다. 그 결과 모든 국가는 고유한 역사와 내용을 담은 나름의 헌법을 가지고 있고, 헌법 제정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이를 굳게 지키기를 다짐하는 날을 정하여 경축하고 있다.

우리들이 헌법이라 할 때, 그것은 일반적으로 국가적 공동체의 조직 원리와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의무 등에 관하여 규정하는 국가헌법을 말한다. 그러나 원래 헌법이라는 것은 국가만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다. 국가를 포함하여 크고 작은 여러 단계의 사회에는 그 사회의 정체성과 그 구성원의 기본적 지위 등에 관하여 규정하는 최고규범이 있게 마련인데, 이들도 모두 헌법이라고 칭한다. 예컨대, 가정의 가헌, 정당의 당헌 그리고 종교단체의 종헌 등이 그 예이다. 이와 같이 종교도 예수교 장로교 헌법과 같이 헌법이라는 용어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국가 헌법은 역사적으로나 내용면에서 종교와 관련이 없는 헌법은 찾기 힘들다. 종교에 관한 규정이 없으면, 이상하다고 할 정도로 종교는 헌법의 필수적인 규율 대상이다. 이같이 우리는 각국의 헌법전에 담겨있는 종교 관련규정을 총칭하여 종교헌법(宗敎憲法)이라 한다. 이런 종교헌법의 내용은 국가마다 그 역사성과 민족성에 따라 다양할 수 있지만, 정교, 즉 정치와 종교의 관계와 종교의 자유에 관한 사항은 대부분의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다. 더 나아가 종교헌법을 넘어 헌법 그 자체가 사실상 종교적 경전(經典)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국가도 없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의 우방인 미국의 연방헌법과 또 다른 우리의 반쪽인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2.
흔히들 미국의 연방헌법을 시민종교의 경전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시민종교(civil religion) 내지 공민종교(public religion)는 국가의 존립과 사회적 결속을 위한 구성원 공통의 신조 내지 생활방식이다. 이러한 의미의 시민종교는 공적인 종교로서, 개개 종교인이 갖는 사적인 종교신앙과는 구별된다. 일찍이 장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 제4권 제8장에서 사회와의 관련하에서 종교를 인간의 종교와 시민의 종교로 양분하면서, 국가의 존립과 사회의 결속을 위해서는 어떤 신성한 상징체계로서 사회 공통의 종교, 다시 말해 시민종교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로버트 벨라는 1967년 “미국의 시민종교”(Civil Religion in America)라는 책에서 미국인의 종교적 역사와 전통에 입각하여 미국인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미국적인 시민종교를 역설한 바 있다. 이같이 미국에서는 유대-기독교 전통에 기초를 두는 자유와 평등 등의 가치가 그대로 현세에서 제도화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독립선언서나 연방헌법전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한다면, 미국 기독교는 기독교 신자들에게 종교적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일종의 국가공동체적 가치와 방향을 구체화해 주는 기능을 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미국의 정치문화나 미국인들의 일상생활에 있어 기독교적 가치가 광범위에 걸쳐 나타나만, 일반시민들은 이에 대해 개의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미국인들은 헌법제정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을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로 존경하면서, 동시에 연방헌법에 대해서도 과히 경전숭배라고 할 정도로 헌법을 존중한다. 연방헌법이 시민종교의 경전임이 2011년 1월 6일 미국 하원 개원식에서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제112회 미국 하원이 개원한 다음 날인 1월 6일 의회사상 처음으로 하원 의원들이 헌법전문을 낭독하는 의식을 가졌던 것이다. 하원 의원 135명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4543 단어로 된 헌법 전문을 80여분에 걸쳐 낭독하였다. 222년 하원 역사상 처음 있었던 초당적 헌법낭독은 의원들로 하여금 헌법을 존중하고, 헌법을 수호한다는 의식을 되새기게 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고 한다.

또한 헌법이 종교적 경전의 기능을 하고 있는 국가로 북한, 공식적으로 표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들 수 있다. 북한 헌법 역시 공민의 신앙의 자유를 위시하여 공민의 기본 권리를 여타의 국가와 같이 별도의 장에서 규정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대단히 형식적인 것이다. 다만, 북한헌법 서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체사상이 바로 북한사회에서 현대종교의 기능을 가진다. 즉, 김일성 수령과 그 사상을 유일 절대화하는 배타적 유일신교로서, 현대의 종교로서는 특이한 예이다. 정대일 박사는 한국종교학회 주체 2011년도 학술대회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은 “교리적으로 수령사상 중심의 절대적 배타적 체제로, 수령을 운명의 구원자 내지 영생부여자로 숭배하고, 전체주의적 국가체제를 통해 교리학습을 정기화하여 실천할 것을 강요하는 종교적 체계”라고 규정하였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미국과 북한에서 헌법이 종교적 경전과 같은 성전(聖典)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비교헌법학의 관점에서 양국 헌법은 전혀 다르게 평가된다. 법에 대한 존중의식과 애국심은 법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미국헌법이 국민의 자발적 믿음에 바탕하여 존경받고 준수되는 규범적 헌법이라면, 북한 헌법은 국가권력의 강제와 감시에 의해 지키지 않을 수 없는 장식적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역시 12월 27일을 헌법절로 제정하여 8대 휴무일의 하루로 쉬면서 주체헌법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으나, 신권천황제의 메이지 헌법보다 더 가식적인 김일성 헌법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주민이 얼마나 될까.

3.
우리 헌법에서 미국에서와 같은 시민종교의 경전적 기능이나 북한에서와 같은 유일신교의 경전적 근거를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현행헌법은 대다수 문명국가의 헌법과 같이 종교관련 규정을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제20조 제1항에서 종교의 자유를, 동조 제2항에서 국교의 부인과 정교분리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보충적 규정으로 제11조 제1항의 일반적 평등원칙과 특별한 차별금지의 원칙, 제10조 제2문의 국가의 기본권보장의무, 제37조 제2항의 기본권제한의 일반적 법률유보 등을 들 수 있다. 우리의 현행 종교헌법에 대한 평가는 논자의 관점에 따라 사뭇 다르겠지만, 1987년에 개정된 헌법임을 감안하면 대체로 무난한 종교헌법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현실은 현재 헌법이 제정된 23년 전과 비교하여 크게 다르다. 국론은 좌파와 우파로, 보수와 진보로 크게 분열되어 있고, 여야를 불문하고 정당들도 계파간 이해득실에 따라 끊임없이 이합집산하고 있다. 또한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 급속히 변해가면서, 정부의 종교편향, 종교와 종교간의 대립, 종교단체 내부의 갈등 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그 결과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국민의 통합을 통한 국정의 안정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인 국민적 통합과 사회적 결속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헌법과 종교라고 본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헌법과 종교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이 땅에는 헌법이 없다”거나 “현행헌법은 코미디헌법이다”라는 자조적인 소리조차 들린다. 이러한 분위기아래 우리는 금년의 63번째 제헌절 경축식도 말 그대로 연례행사처럼 무덤덤하게 치르고 말았다. 종교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있어 제헌헌법의 실제적 제안자라고 할 수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신생 대한민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고 하였다는 사실로부터 양자관계를 조화롭게 보려고 하지 않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종교계에서도 특히 개신교는 종교적 관용의 자세가 결여되어 종교 간에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헌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하고 국민통합과 사회결속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종교헌법을 통해서도 다각적으로 그리고 부단히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있을 제10차 헌법개정시에는 다양한 종교의 개념과 화합적인 정치이념을 규정하면서, 종교적,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종교간의 화합과 공존 그리고 소통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국가목적규정’을 신설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선과 관용의 미덕을 존중하고 실천하며, 헌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 말이다.

민경식_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ksmin@cau.ac.kr


주요 논문으로 <서독기본법에 있어서의 사회화에 관한 연구>,<헌법제정권력이론의 역사적 발전>,<헌법과 노동인격의

실현>,<일본헌법에 있어서의 정교분리>등이 있고, 저서로 <<헌법판례연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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