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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69호-종교간 대화와 토마스 머튼(문영석)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8. 9. 17:10

종교간 대화와 토마스 머튼

2011.8.2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은 20세기 가장 걸출한 가톨릭 사상가중의 하나이다. 머튼은 그의 삶 자체가 세계인이다. 아버지는 뉴질랜드인, 어머니는 미국인이지만 프랑스에서 출생하였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를 거쳐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를 졸업한 수재이면서도 화가인 아버지를 따라 세상 이곳저곳을 유랑했던 인생역정만큼이나 정신적으로도 극심한 방황을 했던 그가 결국은 가장 엄격한 수도원중의 하나인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안착하기까지의 그의 구도 행각을 기술한 “칠층산” (Seven Storey Mountain)은 1949년 타임지가 선정한 논픽션 분야의 베스트셀러 이었으며 20세기 논픽션 분야 100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국제 토마스 머튼 학회(International Thomas Merton Society)는 1987년 결성되었고 현재 전 세계 19개국에 지회들이 결성되어 있으며 한국도 2년 전부터 연구모임이 결성되어 매월 강독 모임을 갖고 있다. 매2년마다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있으며 올해는 6월 9일-12일까지 시카고 로욜라 대학교에서 12차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신본주의적인 중세 사회에서 인본주의적인 근세로 접어들면서 서구의 그리스도교는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서구사회에서 그리스도교는 지난 500년간 계속 코너로 몰렸고 게토화, 공동화 현상을 일으키면서 이러다가 “그리스도교의 증발” 현상이 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리스도교의 모태인 유럽에서 현실화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신학의 진정한 과제는 시대적 상황이 제기하는 질문에 “응답하는 신학”이 되어야 했는데 그리스도교는 그 동안 시대가 제기하는 첨예한 질문들에 적절하게 응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때문에 사회와의 “소통”의 부재도 겪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황 요한 23세는 오늘의 교회는 너무나 답답하다면서 “창문을 열어야겠다”고 추진한 것이 바로 가톨릭교회의 총체적 현대화 작업을 추진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이었다. 현대 그리스도교는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 중에서도 종교와 과학 그리고 타종교와의 만남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양대 도전이다. 근대의 과학혁명은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가설들을 꾸미는 형이상학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자연과학자들이 보따리를 싸가지고 나감으로서 형이상학에 기반을 둔 그리스도교는 뒷방 차지가 되어버렸고 다문화주의 정책의 쇄도와 함께 그리스도교는 서구사회에서조차 이제 여러 종교 중의 하나로 전락했다. 떼이야르 드 샤르뗑 (Teihard de Chardin)이 멀어져버린 종교와 과학간의 만남을 시도했다면 토마스 머튼은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만남을 추진했던 선각자들이다.

토마스 머튼이 살았던 미국 켄터키 주에 있는 겟세마니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작년 한국에서도 “위대한 침묵“이란 영화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카르투시안 수도원과 더불어 가톨릭교회 안에서 가장 엄격한 수행을 하는 수도원들이다. 수도원 제도는 2000년 동안 가톨릭교회를 지탱해 온 영적 원천이었으며 16세기 종교개혁의 열풍도 거뜬하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각 지역에 건재했던 수도원 덕분이었다. 사실 현대 가톨릭교회의 최대 위기는 다름 아닌 수도승의 격감으로 인해 생긴 수도원의 조락현상이다. 지난 6월 겟세마니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머튼이 살았던 1960년대까지만 해도 270여명의 수도승들이 있었지만 현재 50명 정도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대부분이 60대 이상의 연로한 노인수도승들이었다. 수도원은 외부 사목활동 (병원. 학교. 사회복지단체)을 하는 활동 수도회와 기도. 명상. 단순노동을 하는 관상(觀想)수도회로 분류되는데 머튼이 택한 수도원은 관상수도원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수행을 하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이었다. 이 수도원은 평생 동안 특별한 일이 없는 한(예, 치료 및 투표) 외출할 수 없으며 침묵과 단순노동 그리고 명상 속에서 묵언 정진해야 하고 육식도하지 않는다. 일반 의사소통은 수화로 하고 꼭 이야기해야 할 일이 있으면 ‘말하는 방’(speaking booth)으로 가야한다. 새벽 3시에 기상하고 9시에 취침하는 것도 불교 선방과 매우 흡사하다.

머튼은 동양의 종교 중에서도 힌두교나 장자를 깊게 이해하였고 특히 스즈키의 선불교 서적에 깊게 심취되었다. 스즈키와는 지속적으로 서신교환을 하다가 1964년 뉴욕에서 둘은 만나게 되었는데 스즈키는 이후 머튼을 선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한 서양인으로 평한바있다. 체험은 공소한 이론을 뛰어넘는다. 머튼은 관상(contemplation)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비가 들의 '부정의 길' (Apophatic 혹은 via negativa)과 선승들의 체험방식이 본질적으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튼은 「명상의 씨」, 「선과 맹금」,「장자의 길」등 동. 서양 종교를 아우르는 수많은 저서를 출간했고 한국에서도 그의 저서나 그에 관한 평전 등 10 여종이 번역되어 있다. 1968년 그는 태국에서 열린 수도원장상 회의에 참석차 들린 길에 달라이 라마를 만났으며 이때 달라이 라마는 3일간이나 모든 공식일정을 취소하고 머튼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주위의 티베트 불교도들은 생불이 왔다고 칭송했다고 한다. 머튼은 말년에는 자신이 살았던 수도원 근처에 암자를 짓고 은수자로 살았지만 끝임 없이 세상을 향해 외친 인권과 반전문제 등은 미국 가톨릭교회 주교단과 당시 월남 참전 문제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1968년 12월10일 방콕에서 목욕 후 전기 감전으로 갑자기 사망 했을 때 그의 사회적 발언 때문에 CIA가 암살했을 것이라는 루머가 떠돌았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종교 간의 밀접한 조우와 대화는 서로의 성장을 도와준다. 종교간 대화는 궁극적 실재의 근원이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된다는 점과 인간내면의 가장 깊은 곳, 즉 인간의 심층에서는 공통의 실존이해에로 인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서로의 종교내용이 풍부해질 뿐만 아니라 무차별적인 혼합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통찰과 갱신이 제각기 위대한 종교전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열려진다는 점이다. 종교적 근본주의가 가져다 준 독선과 폐쇄성 때문에 종교간 긴장과 분쟁이 첨예한 대치상태에 있는 한국사회에서 특히 토마스 머튼을 눈여겨보아야 할 소이가 여기에 있다.

문영석_

강남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교수

smoon@kangnam.ac.kr


주요저서로 《Korean and American Monastic Practices》와 최근 주요논문으로 〈Sociological Implications of

the Roman Catholic Conversion Boom in Korea〉,〈Neither Monk Nor Layman: Comparative Analysis of

Shinran and Wonhyo’s Popularized Buddhism〉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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