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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37호-민주화, 시장화, 그리고 한국종교(이진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26. 16:30

민주화, 시장화, 그리고 한국종교

2010.12.21


지난 20여 년간 우리사회가 걸어온 길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용어를 뽑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민주화, 후기산업사회, 소비사회, 시장화, 포스트모던 사회, 정보화 사회, 탈냉전, 시민사회 등등,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용어가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이중에서 ‘민주화’와 ‘시장화’를 두 키워드로 뽑는다면 어떨까?

<<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제체를 채택하고 있고 우리사회가 ‘시장질서’에 근거한 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은 기본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왜 ‘민주화’와 ‘시장화’라는 용어에 새삼 주목해야 하는가? 우리사회가 본격적 의미의 민주화와 시장화를 경험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한국사회는 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군사정권으로부터 벗어났고 90년대 후반부터 세계화의 물결 속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1987년 6월 ‘시민항쟁’이 30여 년간 지속된 군사정권 시대를 종식시키고 민주화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면, 1997년 ‘IMF사태’는 한국경제를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 편입시키는 시장화의 신호탄 역할을 하였다. 87년 6월항쟁이 2000년 6.15선언의 모태가 되고 97년 IMF사태가 2007년 미국과의 FTA 협상으로 귀결된 것은 아닐까?

<< 이처럼 민주화와 시장화는 최근 한국사회의 성격과 방향을 규정한 두 축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민주화를 둘러싸고 이른바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간에 치열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면 시장화를 둘러싸고 사회 세력 간에 심각한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화는 정치 영역에서 먼저 물꼬를 텄지만 그 영역이 점차 확장되어 갔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그 동안 억압되어 있던 시민사회 담론이 수면 위로 부상하였으며 이에 힘입어 시민운동은 르네상스를 맞이하였다. 시민사회 담론 및 시민운동은 개발독재 시대의 권위주의를 무력화시키면서 탈권위주의를 확산시켰을뿐만 아니라 군사정권 시대의 냉전 이데올로기도 약화시켰다. 동구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는 국내의 탈냉전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였다. 이렇듯 87년 이후에는 탈권위주의와 탈냉전으로 대변되는 민주화의 기류가 대세를 이루어 갔다.

<<탈권위주의와 탈냉전의 분위기는 ‘참여정부’에 들어와 절정에 달했다.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여러 개혁입법은 탈권위주의와 탈냉전에 근거한 민주화의 구체적 몸짓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거센 반발에 직면하였다. 권위주의 문화와 냉전 이데올로기에 깊게 침윤되어 있는 보수진영이 ‘뉴라이트’라는 이름하에 새롭게 결집하여 참여정부를 좌경, 반미, 친북정권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뉴라이트 진영은 좌경정부에 의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확산시키는 한편, 구체적으로는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면서 정권탈환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뉴라이트 운동에 힘입어 탄생한 정권은 새로운 권위주의와 냉전 이데올로기를 기초로 하는 ‘신보수주의’ 노선을 취함으로써 우리사회의 민주화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이처럼 민주화를 둘러싸고 우리사회가 갈등을 빚고 있는 와중에 시장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 세계화의 이름하에 진행되고 있는 시장화는 다른 말로 하면 ‘신자유주의’의 확산이다.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는 전통적인 복지국가 모델의 비효율성을 공격하면서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예찬하는 경제 이념이다. 서구에서는 198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등장한 반면, 한국에서는 IMF 사태를 통해 신자유주의 담론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구조조정. 워크아웃, 자본시장의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아웃소싱과 같은 신자유주의를 특징짓는 용어들이 이때부터 유행하였다.

<< 신자유주의는 경제 이념에서 출발하였지만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면서 시장의 논리에 종속시킨다. 적자생존과 우승열패의 구호에서 잘 나타나듯이 신자유주의는 무한경쟁을 미덕으로 삼는 승자독식의 체제이다. IMF 이후 수많은 기업의 도산과 수많은 직장인의 퇴출은 시장 지상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고개 숙인 아버지’, ‘홈리스’, ‘88만원 세대’, ‘청년 백수’ 등의 용어, 그리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이혼증가율 1위, 출산율 꼴찌 등과 같은 한국사회의 지표 역시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효과이다.

<< 신자유주의는 출판계의 풍속도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나 <아침형 인간>과 같은 서적들이 스테디셀러나 베스트셀러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성공학’이나 ‘자기계발류’로 분류되는 서적들은 서점에서 당당하게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생들 역시 가속화되는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우리사회의 경제구조 재편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문화적 풍속도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 그러면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저항하거나 도전하는 움직임은 전혀 없는가? 신자유주의가 초래하는 빈부격차의 심화, 실업률의 증가, 가족의 해체, 자살률의 급증과 같은 사회적 폐해와 부작용이 너무나 명백하고 심각한 현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적 담론과 운동이 등장하고 있다. 즉 사회적 ‘무능력자’를 배제하고 ‘능력’만을 숭상하는 능력주의, 무엇이든지 상품화시키는 시장 근본주의, 경쟁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극단적 경쟁주의 등을 기본 속성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점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몸짓들이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을 막으면서 어떠한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처럼 민주화와 시장화를 둘러싸고 우리사회가 열띤 논쟁에 휩싸여 있을 때 한국의 종교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한국 종교계는 민주화와 시장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 과정에 어떻게 개입하였으며 민주화와 시장화가 한국 종교계에 미친 효과는 무엇인가?

<<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집필되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한국종교의 주류는 ‘종교권력’의 형태로 민주화에 역행하면서 신자유주의의 논리에는 ‘편승’하는 모습을 취한 반면, 소수의 세력이 민주화를 심화시키고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총 8편의 글로 구성된 이 책의 전반부 4편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종교계의 인식과 대응을 주로 다루었고, 후반부 4편은 민주화에 대한 종교계의 대응을 종교의 권력화 및 반권력화의 관점에서 주로 다루었다. 우리사회가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민주화를 어떻게 심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와 ‘신자유주의적 시장화가 초래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이 그러한 고민의 과정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교를 묻는다>(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엮음)라는 제목으로 청년사에서 곧 출간될 책의 서문을 편집자의 요청에 따라 요약한 것이다.


이진구_

본 연구소 연구실장 , 호남신학대 초빙교수 jilee80@dreamwiz.com

최근논문으로 <최근 한국사회의 종교정당 출현과 그 의미>, <현대 한국종교의 정치참여 형태와 그 특성>등이 있고,

주요저서로 <<현대사회에서 종교권력,무엇이 문제인가>>,<<아메리카나이제이션>>(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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