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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생명 그리고 종교> 학술대회 후기

2010.5.4



지난 4월 17일 한국종교문화연구소와 원불교사상연구원의 공동주최로 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 “마음과 생명, 그리고 종교”라는 주제 아래 6명의 발표자가 준비된 글을 발표했으며 각 발표마다 한 명씩 배정된 총 6명의 논평자가 각각의 발표 내용을 더 풍성하게 할 질문과 의견을 제시하였다.

제1발표 <생명윤리와 마음공부>(김도공)는 원불교에서 생명과 마음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이러한 원불교적 시각이 생명윤리의 논쟁에 대안적 패러다임을 제시할 가능성을 살펴보는 글이었다. 제2발표 <일본인의 생명관: 계보적 일고찰>(박규태)은 일본의 신화, 신도, 불교, 유교, 신종교 등을 통해 생성, 무상, 욕망, 체념, 무사의 생명관 등을 계보화하고 그 문화사적 의의를 거시적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제3발표 <가톨릭교회와 생명 논의: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김항섭)는 생명관념과 생명운동이 다양한 차원의 세계상을 반영함을 상기시키고, 라틴아메리카 가톨릭교회의 신학과 실천을 통해 생명논의에 내포된 사회구조적 현실이 어떻게 다루어오고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제4발표 <철학과 마음의 치유: 철학실천의 지형도와 그 과제를 중심으로>(김정현)는 철학이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임상적 실천의 차원에서 논의되는 ‘철학실천’ 담론의 양상을 다양한 이론과 상황을 통해 검토하고 소개하고자 하였다. 제5발표 <한의학에서의 생명관>(손인철)은 한의학에서 인체생리와 생명작용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한의학 고전문헌들에 근거하여 되살펴보고 정리해주었다. 제6발표 <생명 개념에 대한 인지적 실험으로서의 종교>(이창익)은 생명을 범주화하는 인지적 과정과 그러한 과정을 통해 구성된 여러 겹의 생명 개념을 자원으로 삼는 인간의 상상력을 새로운 방식으로 검토하였으며, 그러한 틀에서 종교적 상상력을 논의하고자 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이처럼 풍성한 논의와 논평이 이루어졌다. 동일한 표제를 둘러싸고 얼마나 다양한 물음이 물어지고 있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이 학술대회를 통해 제시된 문제, 해답, 과제들은 여러 연구자들에게 생산적인 자극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후기를 쓰는 필자에게도 이번 학술대회는 산만한 생각을 정리할 뜻 깊은 기회가 되었다.

‘마음’, ‘생명’, ‘종교’ 등은 그것들을 주요한 논의대상으로 하는 전문분야들이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주제를 다루는 토론은 이른바 전문분야의 경계를 넘어선 범위에서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리는 마음, 생명, 종교 등이 근대적 분화의 산물로서 지니게 되었을 불가피한 범주 중첩의 문제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인간 일반의 사정과 밀접한 영역일수록 해당분야를 넘나드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연결되거나, 각 영역에 대한 전통적 해석 특히 종교적 해석의 가치를 재평가하자는 주장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좀 더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우리는 마음, 생명, 종교가 각각 단일한 실체적 범주이기보다는 서술의 범주이자 물음의 범주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마음, 생명, 종교 등의 개념이 포착하고자 하는 대상은 유동체처럼 항상 미끄러져 나간다. 근대적 분류가 그것들을 특정하는 경우에도 그러하고 전통시대의 관념들이 그것을 언급하는 경우에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범주가 유효한 것은 사람들이 이 범주를 통해 해답이 아니라 물음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둘째, 인간 일반의 사정과 밀접하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논의의 범위가 필연적으로 확대되거나 공유되는 것은 아니다. 유전, 질병, 약품의 영역처럼 인간의 삶과 밀접하지만 전문지식과 일반지식의 차이가 큰 경우 특정 전문가들에게 맡겨두는 것이 문제를 다루는 데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특정 영역에 대한 토론의 범위가 확대되는 경우는 다양한 영역의 지식을 통해 참여자가 지적 이익을 효과적으로 기대할 수 있을 때이다. 셋째, 과거의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은 현 상황에 대한 대안이 되기 어렵다. 특히 과거에 마음과 생명을 화두로 삼았던 특정 종교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낭만적일 수 있다. 문제의 범주는 계속해서 미끄러져 나가며 지식과 물음을 축적한다. 따라서 어떤 전문가들이라도 새로운 지식들을 통해 물음을 갱신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논쟁의 장에 낡은 참고서를 제공할 수는 있어도 능동적으로 동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공동 학술회의는 나름대로 충분한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논의된 내용도 풍성했으며 대부분의 발표자, 논평자, 참석자에게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정말로 욕망했던 것은 이번 학술회의의 주제였던 마음, 생명, 종교라는 범주들을 통한 공감적 사유가 아니라, 이러한 범주들이 어떻게 우리의 사유와 실천을 추동하는지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인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욕망했던 것을 이제 곧 우리 안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구형찬_

서울대학교koohc1@gmail.com

주요 논문으로〈\\'인간학적 종교연구 2.0\\'을 위한 시론 : \\'표상역학\\'의 인간학적 자연주의를 참고하며〉,〈다시 상상하

는 마나: 그 역학(力學)과 역학(疫學)〉,<종교연구에서 ‘유형론’과 ‘형태론’: 그 전략적 구분의 가능성과 의의>등이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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