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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태의 교훈: 황금만능주의

2010.5.11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황우석의 ‘논문 조작 사건’이 3년5개월만인 지난 2009년 10월 공판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는 처음부터 없었고 미즈메디 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를 ‘섞어심기’해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만들어진 것처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던 것이다. 그런데 재판정 밖에선 일부 황우석씨 열성팬들이 무죄를 외치고 있었다. 황우석씨 연구가 엉터리라는 사실이 연구자들 자백과 논문 검증을 통해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또한 이번 판결로 법적 심판까지 내려졌음에도 그들은 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MBC 피디수첩이 처음 황우석씨 연구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황우석씨에 대해 미련을 가진 집단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그래서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등 사회 유력인사들도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이번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으며, 극단적 발언을 자주 하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황우석씨와 공동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다.

물론 동물복제와 관련된 황우석씨의 기술에는 활용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을 조작한 과학자는 선진국이라면 더 이상 과학계에 설 땅이 없다. 앞으로 또다시 진실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아직도 황우석씨를 사이비교주처럼 떠받드는 종교적 현상이 지속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겠으나 여기선 소위 ‘진보적’이라고 말하는 측은 어떤지 한번 따져보기로 하자.

황우석 사태 당시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뿐만 아니라 그들과 원수 관계에 있는 <서프라이즈>같은 노빠 사이트나 김어준의 <딴지일보> 같은 진보성향의 사이트도 피디수첩을 공격하고 황우석씨를 옹호하는 비이성적 입장을 취했다. 이는 우리사회에선 보수파나 노빠나 진보 측 모두가 같이 공유하는 패러다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박정희 시대의 천민자본주의 가치관이다. ‘한강의 기적’처럼 난치병치료의 기적을 기대하고 줄기세포가 가져다준다는 수백조 원에 모두 눈이 어두워진 것이다. 과학의 기본자세가 진실추구임을 망각하고 연구업적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빠졌던 것이다. 사람들이 여전히 박정희시대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다 이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보수파는 ‘파이를 늘리는 성장’을 우선하고 진보파는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는 분배’를 우선하므로 양자의 패러다임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궁극목표가 ‘따뜻하고 활기찬 인간관계’라는 점을 망각하면 성장론자와 마찬가지로 분배론자도 무조건 ‘파이를 더 많이 가지려는 황금만능주의’에 눈이 멀 가능성이 크다.

인간생활에서 물질적 부분은 생존의 필요조건이지만 인간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런데 삶의 목적과 방향 없이 물질적 삶에만 집착하면 야수와 다를 바 없어진다. 작금에 자연의 생명을 파괴하고 삽질을 함부로 하는 이명박정권을 종교계에서 비난하고 중지를 요구하지만, 만약에 비난하는 종교계 분들의 마음 한 구석에 무조건 파이를 키우고자 하는 소위 ‘명박스러움’이 존재한다면 이명박 정권의 삽질에 대한 진정한 극복은 불가능하다. 황우석씨에 대한 좌·우파 모두의 열광 밑바닥엔 이러한 ‘명박스러움’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정권의 깃발은 성장이었고 반정부세력의 깃발은 분배였다. 양자는 정반대인 듯싶지만 미워하면서 닮기 쉽다. 이제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새로운 비전을 찾을 때다. 그 길은 물론 박정희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이명박 정권의 방식과는 다르다. 동시에 황우석 사태 때처럼 마찬가지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진보파라면 여전히 기대할 게 없다. 우리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추구하는 것은 파이를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생명의 파괴로 만들어지는 파이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게 황우석 사태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다.


김기원_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kwkim@knou.ac.kr

주요 논문으로〈세계금융위기와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제벌체제의 발전과 모순〉등이 있고, 주요 저서로 <<제벌개혁은

끝났는가>> , <<한국 산업의 이해>>,<<경제학 포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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