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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4호-유교 테마파크를 다녀오다(방원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5. 14:31

유교 테마파크를 다녀오다

2009.7.28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賜額)서원”이라는 짧은 지식만을 가진 채 소수서원을 방문하였다. 퇴계 이황의 제자 대부분이 이곳 출신이라는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서원에 들어설 때 입구에서 만난 것은 뜻밖에도 소수서원이 숙수사(宿水寺) 터 위에 세워진 것임을 알리는 당간지주였다. 서원 경내에서도 뜻밖의 유물들을 만났는데, 그것은 제관들이 손을 씻는 그릇이 놓였던 관세대(洗臺), 해시계를 놓았던 일영대(日影臺) 등이었다. 이것들이 눈에 들어온 것은 여느 서원에서도 보지 못했던 아기자기한 아이템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눈에 보아도 이들이 절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석재(石材)들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비들을 서원 구석구석에서 절에서 사용되던 석재들을 유교적인 용도로 재활용하였던 것이다. 내 관점에서 볼 때 이곳은 판데르 레이우(Van der Leeuw)가 강조한 자리물림(transposition)으로서의 혼합현상이, 최화선 선배가 선호하는 용어로는 성지의 팔림세스트의 의미를 풍부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다만 지금 이곳을 안내하는 분들은 유교적 의미를 강조하고 불교의 흔적을 지우려 하기 때문에 그 풍부한 의미가 감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수서원의 의외의 깊이를 맛본 후, 선비문화수련원으로 향하면서 현재 소수서원이 확장되고 있는 넓이를 볼 수 있었다. 영주시의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서, 현재 소수서원 일대에는 우리가 점심식사를 했던 ‘저잣거리’, 선비문화를 주제로 전시하고 있는 ‘소수박물관’, 양반 가옥들을 모아놓은 ‘선비촌’, 그리고 청소년들의 전통문화 교육공간인 ‘선비문화수련원’이 널찍하게 들어서 있다. 저잣거리에서 짧은 드레스 차림의 아가씨들이 퓨전 국악공연을 하고 있는 옆을 지나가면서, 나는 “유교 테마파크”를 거닐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작년에 문을 연 선비문화수련원은 수백 명을 교육할 설비를 갖춘 큰 규모의 한옥 건물군이다. ‘선비’를 지자체의 브랜드로 삼은 영주시의 지원으로 지은 건물에 청학동에 뺏긴 전통문화 전수라는 이미지를 되찾아오려는 성균관이 위탁경영이 결합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안내문에서 전통놀이, 떡메치기, 다도 등이 포함된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는데, 정작 유교의 가치는 아이들이 꾸벅꾸벅 졸 것임에 틀림없는 ‘인성교육/예절교육’ 시간에나 가르쳐지는 것으로 보였다. 아이들에게 유교적 가치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의 고민은 아직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마침 교육이 없어 조용했던 수련원의 명덕관에서 연구소의 선비 두 분, 이욱 선생님과 박종천 선생님의 발표가 있었다. 이욱 선생님은 학문공동체이자 제향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던 서원의 이중적 성격을 설명해 주셨다. 서원의 향사(享祀) 기능에 대한 설명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서원에서 모시는 인물들이 중앙의 문묘와는 달리 지역에서 중요시하는 인물이나 지역과 관련성을 가진 성현을 모시는 토착성, 혹은 지역성을 지닌다는 내용이었다. 발표후 서원의 ‘당파성’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는데, 나는 이것을 들으며 향교보다는 서원이 지자체의 사업과 친연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박종천 선생님은 현대 유교의 현황에 대한 것을 발표하였는데, 참석자들은 유교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놓고 토론을 이어갔다. 내가 듣기에 이 토론은 “지금까지 알아왔던 모습의 유교에 대한 죽음”을 말하는 발표자와 “알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로의 유교의 모습”을 열망하는 참석자들의 견해가 평행선을 달렸던 것 같다.

유교를 전승하기 위해 새로 건축된 시설에서 벌어진, 유교의 생명에 대한 열띤 토의는 오늘 우리가 보고들은 것에 대한 훌륭한 정리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이 논쟁은 “종교가 아니라 영적인 것”(not religion, but spiritual)을 이야기하는 서구의 논쟁과도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교의 위기라는 유교전통 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새로운 종교 형태의 출현이라는 종교계 새로운 문제의 연장선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오늘 본 것에 따르면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유교는 ‘선비’라는 브랜드를 사용하여 전국의 학생을 불러들일 수 있는 가치를 갖고 있었다. 과연 이러한 유교의 ‘브랜드 가치’란 세속화된 형태 속에 잔존하고 있는 유교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문화 형태로의 생명력을 가리키는 지표인가? 아직 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내가 이번 답사에서 얻게 된 소중한 질문이었다.


방원일_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박사과정 bhang813@empal.com
주요논문으로 혼합현상을 이론화하기: 한국 개신교 의례의 정착과정을 중심으로, 한국 크리스마스 전사前史, 1884~1945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자리 잡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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