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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2호-믿음이냐 깨달음이냐(오강남)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5. 14:27

믿음이냐 깨달음이냐

2009.7.14



서양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는 믿음을 강조한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는 요한복음 3장16절에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현재 기독교의 경우 “예수 믿고 구원을 얻으라” 하는 것이 일종의 기본 공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독교에서 믿으라는 것이 무엇인가? 일부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 그가 동정녀의 몸을 빌려 인간으로 태어나시고, 우리 죄를 위해 피를 흘렸다는 것 등을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이런 식 믿음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물론 믿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의 근원으로서의 궁극실재나 우주에 편만한 법리, 진리, 원칙을 믿고 거기에 우리를 턱 맡기는 믿음, ‘신뢰’ 로서의 믿음, 내면에서 오는 확신으로서의 믿음 등은 삶에 방향과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든가 동정녀 탄생을 했다든가 하는 식으로 자기와 상관이 없는 일을 남이 내게 말해 주어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 같은 믿음은 이른바 ‘한 다리 건넌 정보(second-hand information)’ 에 불과한 셈이 아닌가?

최근에 기독교에서도 초대교회에 ‘믿음’ 이 아니라 ‘깨달음’ 을 강조한 흐름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드러났다. 1945년 12월 어느 날 무함마드 알리라는 이집트 농부가 나일 강 상류 나그함마디(Nag Hammadi)라는 곳 부근 산기슭에서 땅을 파다가 땅 속에 토기 항아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문서가 들어 있는 그 항아리가 금으로 가득한 항아리보다 더 귀중하다는 사실 알 턱이 없던 그는 이 문서를 시장에 가지고 나가 오렌지, 담배, 설탕 등과 맞바꾸었다.

이것이 바로 ‘나그함마디 문서’ 의 발굴 경로다. 나그함마디 문서 뭉치들 속에는 지금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여러 가지 복음서를 포함하여 모두 52종의 문서가 들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이 바로 <<도마복음>> 이다. 앤드류 하비(Andrew Harvey) 교수 같은 이는 1945년 12월에 발견된 도마복음이 같은 해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버금가는 폭발력을 가진 문헌이라 평가했다.

<<도마복음>> 이 공관복음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공관복음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기적, 예언의 성취, 재림, 종말, 부활, 최후 심판, 대속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그 대신 내 속에 빛으로 계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깨달음’ 을 통해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도마복음이 세계 종교 전통 어디서나 심층 깊이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신비주의’ 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었던 복음서로 보아 무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한문으로 ‘영지(靈知)’ 라 번역하고 영어로 보통 ‘knowledge’ 라 옮기는 그리스어 ‘gnsis’ 란 말은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나(praj), 곧 반야(般若)에 해당하는 말로서, 통찰, 꿰뚫어 봄, 직관, 깨침과 같은 계열의 말이다. 불교에서 반야를 통해 성불과 해탈이 가능해짐을 말하듯, <<도마복음>> 도 이런 깨달음을 통해 참된 ‘쉼’ 이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강남_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과 명예교수 soft103@hotmail.com
주요저서로 <<예수는 없다>>, <<도덕경>>, <<또 다른 예수:도마복음 풀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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