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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과 과시,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2008.11.4

지난 봄,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서 연예인들과 영화 관계자들의 종교적인 발언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다. 사실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공개석상에서 신앙을 표출하는 모습은 보기 드문 일은 아니다. 사람들도 대개 그런 모습이 좀 불편하긴 해도 이미 식상하고 무덤덤해졌기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도가 좀 지나쳤다. 전례 없이 많은 연예인들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경쟁하듯이 신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리더니, 급기야 영화 관련 업체 부대표라는 사람이 수상자와 수여자로 두 번이나 무대에 올라 종교적 발언을 잔뜩 늘어놓았던 것이다. 이를 본 많은 시청자와 네티즌이 불쾌감을 넘어 분노를 표했다. 신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겸손하고 진지했는지 몰라도,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모습은 겸손과 진지함보다는 오만과 경박함으로만 보였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식의 무더기 종교적 발언이 전무후무한 드문 일이었다는 점이다. 전에도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답을 찾으려면 좀 더 넓게 보아야 한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달라졌기에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장로 대통령, 그것도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서울시를 자기 맘대로 하나님께 바친다고 했던 사람이 나라의 수장을 맡고 있는 지금 우리 현실이 바로 그 답이다. 개신교는 그 동안 신자수가 계속 감소해왔고, ‘개독’이니 ‘괴독’이니 하는 별명으로 불리며 종교 비판자들의 주된 공격 대상이 되어왔으며, 급기야 작년에는 선교단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로 공격적 선교방식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그 위상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던 차에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움츠린 어깨를 다시 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어깨를 펴는 정도를 넘어 거의 으스대기까지 하고 있다.

종교편향 인사와 정책을 서슴지 않는 대통령과 정부, 사회 양극화는 신앙심 부족 때문이라는 말로 물의를 빚었던 장관후보, 뉴라이트를 주도하며 촛불집회를 사탄의 책동으로 모는 우파 개신교 지도자들, 경찰 복음화 대회를 대놓고 지원하다가 온 불교계의 대대적인 비난과 반발을 초래한 경찰간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기도회 문제로 도마 위에 오른 교육감…. 이런 모습들은 개신교가 자성과 변화를 포기한 채 장로가 대통령을 하고 있는 지금 이때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세력을 만회하려는 오만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영화제 시상식에서 전례 없는 무더기 종교적 발언 사태가 벌어진 것은 개신교계의 이러한 오만과 무관하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과거 서울시 봉헌 발언에서 연예인들의 무더기 감사 발언까지 이 모두를 관통하는 것은, 고백과 과시 사이를, 열등감과 우월감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김윤성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jssanc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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