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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8호- 타고 남은 재(전인철)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3:50

타고 남은 재

2008.9.2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한용운 ‘알 수 없어요’ 끝 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공직사회가 불교를 차별하고 무시하고 깔봤다는 이유로 지난달 27일 ‘2천만 불자들이 촛불의 현장 서울광장에 모여 이에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2008년 8월, 여름의 끝자락에서 이 땅의 불심은 타는 가슴에 재를 가득 안고 총궐기했다. 말 그대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이다. 대회 이름도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이하, 대회)’라고 명명하였다. 한국불교가 국가권력에 조직적이고도 집단적인 저항을 한 것은 1,600여년 한국불교사에서도 초유의 일이다.

대회 봉행위가 밝힌 ‘이명박 정부 공직자 종교차별 사례’가운데 굵은 항목들은 이렇다. ‘고소영’으로 대변되듯 정부 주요 인사 기독교 편중. 뉴라이트 김진홍 목사의 청와대 예배. 청와대 관례 깨고 부처님오신날 홀대. 국토해양부 교통정보 ‘알고가’에 사찰 전부 누락. 경기여고 교장 학내 불교문화재 훼손. 어청수경찰청장 종교편향 등. 일부 사안은 다소 지엽적이라 하더라도 적시한 항목이 모두 26개를 헤아린다. 이번 대회는 이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은 공직자의 종교차별 사태를 책임지고 공개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할 것 등 4개항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실, 새 정부 들어 불교를 폄훼하는 크고 작은 일들이 불거질 때도 조계종 중앙에서는 어른스럽게 대처한다는 면에서 이에 대한 공개적인 대처를 말리는 분위기였다. 정권과 정면 대치해야 한다는 부담에다, 자칫 ‘제 밥그릇 지키기’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안 자체도 불교 차별이지 박해는 아니다. 직접적 위해를 가한 일이 아니라서 대국민 설득력에도 한계가 있어보였다. 또 지금껏 불교는 정교분리라는 대원칙 아래 정권과 별 마찰 없이 지내왔다. 선거 때도 불자들의 표심을 힘있는 쪽으로 적당히 유도하고 대신 집권세력의 지원 내지 비호를 또 적당히 누려온 측면도 부정 못한다. 게다가 한국불교 뿌리인 임제 선풍은 본래 출세간적인 데다 사바의 시비분별은 망상이라고 여기는 탓도 있을 게다. 뿔을 내는 것은 탐진치 삼독 가운데 하나다. 많은 불자들은 나서기는 별로 탐탁찮아 한다. 범종단이 조직적 집단적으로 사회적 이슈를 제기해 본 경험도 별로 없다. 그런데 어쩌다 광장 한복판까지 나가게 됐을까.

발단은 아무래도 이명박 대통령이다. 서울시장 재직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느니 하는 따위의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다녔으니, 애시 당초 절집이 그냥 넘기지 못 할 일을 벌인 게다. 불교계는 대선 때도 생태계 파괴와 문화재 훼손 등을 이유로 한반도 대운하를 대놓고 반대하는 등 이명박 후보에게 우군이 아니었다. 이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힐 일이다. 가뜩이나 불교를 백안시할 개신교 근본주의 장로님으로서는 내놓고 구박하진 못해도 굳이 떡 줄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게 불교계 주변의 이야기들이다.

관료사회도 이에 거들었다. 이번 불교계의 항의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일부 공직자의 불찰이 빚은 오해’라 치부했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음을 자인한 꼴이다. 대통령이 불자였다면 ‘일부 공직자’가 이런 형국을 만들었을까. 그런데 이런 표면적 현상보다는 실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신교 근본주의자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번 대회결집의 기저에 깔린 본질적 문제이기도 하다. 인식기능상 이성보다 믿음이 우선한다는 독단이 문제가 된다. 촛불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불자들이 가장 많이 거론하는 단어가 이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이다. 불신자를 힘으로라도 천국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독선이다. 이번 대회에서 수경스님이 일갈한 “대통령 한 사람의 삐뚤어진 가치관”이라는 대목도, 또 ‘정부는 선교기관이 아니다’‘나라를 기독교국가로 만들 작정이냐’는 구호도 이를 지적하는 대목이다.

절집 주변에서는 이런 말들도 떠돌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미 촛불에 치명상을 입었다. 어차피 대선 때같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다시 얻을 수가 없다면 집토기라도 확보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국민들을 편 갈라 전선을 달리 형성해야 저항의 힘도 분산된다. 그 희생양이 바로 불교라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참 용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향후다. 공은 일단 청와대로 넘어갔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종교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공직자들이 종교차별을 하지않도록 조치하겠다는 원론은 밝혔다. 하지만 불교측 요구의 핵심에 대해서는 비켜간다. 대통령이 직접 사과할 내용도 잘못도 없고 어 청장을 해임할 이유도 없다고 강변한다. 바뀔 것 같지 않다. 앞으로가 문제다. 갈등이 불교와 기독교의 대립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다종교사회임에도 종교간 큰 갈등없이 평온을 유지해 왔다. 이번 대회에서도 ‘종교화합 국민통합’을 기치로 들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이 문제를 어찌풀어야 할까. 정권에 기대하기 보다는 깨어있는 개신교 측에 기대하고 싶다. ‘불교와 함께하는 목회자 모임’같은 조직을 만들어 종교계 스스로가 결자해지하는 방식이다. 우리 집안에 탕자가 저지른 분탕질은 그 집안에서 설거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당장 불심달래기가 필요하지만 종교분쟁만은 피해가야 한다. 대회에서 불교는 대결구도로 승리하자는 게 아니라 상생하자는 거라고 수차 강조했다. 권력을 떠나 불교와 기독교가 함께 하는 모습이라면 우리사회 한층 성숙된 종교문화가 꽃피게 될 것이며, 나아가 모든 국민들도 나서 환영할 일이다.

전인철(한국종교문화연구소, Kbulgy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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