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새해 아침마다 내가 찾는 글
2014.1.14
새해 아침이면 내가 항시 찾는 글이 있다. 조선 중기 대표적인 문신인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원조오잠(元朝五箴)〉이다. 그는 1513년(중종 8) 23세 때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다음해 별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간다. 그의 정치적 여정은 평탄하지 않았지만 무극태극의 논의를 통해 조선 성리학의 선구가 되었다. 그는 《중용》 제20장의 ‘구경(九經)*’을 주석(註釋)한 책인 《중용구경연의(中庸九經衍義)》를 통하여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학적 경세관을 보여주었고, 주자(朱子)의 《가례》 및 기타 예설과 우리나라의 속례(俗禮)를 참작하여 제사의식과 절차 등을 서술한 책인 봉선잡의(奉先雜儀) 역시 조선 예학사(禮學史)에서 빠뜨릴 수 없는 저술이다.
그러나 내가 새해 아침이면 그를 찾는 까닭은 그가 지은 〈원조오잠〉때문이다. 번역하면 ‘새해 아침에 스스로를 경계하는 다섯 편의 글’이라고 할까! ‘잠(箴)’이란 ‘침(鍼)’이란 단어에서 온 것으로 잘못을 깨우치고 경계하기 위해 지은 글을 가리킨다. 조선 유학이 지닌 수양론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잠이다. 퇴계의 《성합십도(聖學十圖)》에 포함된 〈경재잠(敬齋箴)〉이나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과 같이 잘 알려진 외에도 유학자들의 문집에는 각자가 지어 스스로를 경계한 잠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언적은 왜 새해 아침부터 이 잠을 지었을까?
옛 성현들은 덕德을 진척시킬 때엔 하루라도 자신을 새롭게 하지 않은 적이 없고, 한 해라도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음이 없어, 날마다 부지런히 힘쓰고 죽은 이후 에야 그만두었다고 들었 다.이는 사람 된 도리를 다하여 하늘이 부여한 것을 저버 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지 27년이나 되었다. 행실이 법규에 맞지 않고 언어가 법도에 자주 어긋나 배우기를 애써나 도는 이루어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져도 덕은 진척되지 않았다. 성현의 단계에 나아가지 못하 고 마침내 일반 사람들의 귀결과 같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아! 오늘은 새해 아침이다. 한 해가 또 바뀌었는데 나 홀로 옛 것에 의지하여 자신을 새롭게 하지 못하는가? 다섯 편의 잠을 지어 평생의 근심 으로 삼고자 한다.
당시에 27세 적지 않은 나이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익히 잘 알고 있을 때이다. 그럼에도 자기에게 한계를 긋지 않으려는 이언적을 볼 수 있다. 그는 무엇으로 평생의 걱정거리를 삼았을까? 외천(畏天), 양심(養心), 경신(敬身), 개과(改過), 독지(篤志)의 5가지 주제를 통해 이언적은 하늘을 바라보고, 마음과 몸을 살피고, 허물을 고치고, 뜻을 도탑게 하고자 하였다. 그의 모든 것에 공감할 순 없어도 그 역시 허물과 나약함 속에 자신을 다독거린 같은 인간이었다는 점에 위안을 느끼며 또 한 해를 살아갈 묘약, ‘독지잠’을 되씹어본다.
사람에게는 본성本性이 있으니 천리天理에 뿌리를 두었다. 애초부터 선하지 않은
이가 없으 니 누가 어리석고 누가 지혜롭겠는가? 성현이 나와 같은 인간임을 알아
이를 추구하면 얻을 것이지만 구하지 않으면 잃어버릴 것이다. 그 기미는 나에게 있을
뿐이니 감히 스스로를 권면하지 않겠는가? 탕 임금이 매일 자신을 새롭게 하였으며,
공자께선 먹는 것도 잊어버렸 다. 문왕께선 미미하게 부지런하셨고, 백우伯禹께선
자자孜孜히 부지런하셨다. 하물며 나 같은 후학들이야 뜻은 크지만 힘은 미비하니 한번
게으름에 빠지면 도道에 이르기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우물이 샘에 미치지 않으면 9인의
깊이라도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학문하는 데 성인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이것은
스스로를 한정限定하는 것이다. 그만두려 해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안자의 진력盡力함이요,
임무는 중하고 갈 길은 멀다고 한 것이 증자曾子의 독실篤實함이다. 옛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서 죽은 후에야 그만 둘 것이다. 저들이 어떤 사람인가? 실행하면 될 것이다.
(《晦齋集》 권 6, 〈元朝五箴〉 중 ‘篤志箴’)
----------------------------------------------------------------------------------------------------
*공자가 주창한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데 긴요한 아홉 가지 법도: 첫째 몸을 닦을 것(修身), 둘째 어진 이를 존경할 것(尊賢), 셋째 친척을 사랑할 것(親親), 넷째 대신을 공경할 것(敬大臣), 다섯째 여러 신하를 자신의 몸같이 보살필 것(體群臣), 여섯째 백성을 제 자식처럼 대할 것(子庶民), 일곱째 각 분야의 기능인을 모이게 할 것(來百工), 여덟째 원방인(遠方人)을 관대히 대우할 것(柔遠人), 아홉째 제후를 위로하여줄 것(懷諸侯) 등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몸을 닦으면 길(道)이 생기고, 어진 이를 존경하면 의혹되지 않고, 친척을 사랑하면 제부(諸父)와 형제가 원망하지 않고, 대신을 공경하면 현혹되지 않고, 여러 신하를 자신의 몸같이 보살피면 선비들이 예(禮)로써 보답함을 귀중하게 여기고, 백성을 제 자식처럼 사랑하면 백성들이 부지런하게 되고, 여러 기술자를 불러들이면 재용(財用)이 풍족하고, 먼 지방 사람을 관대히 대접하면 사방에서 민심을 얻으며, 제후를 위로하면 천하가 두려워하게 된다고 그 효과를 지적하였다.
이욱_
한국학중앙연구원
leewk99@daum.net
주요 저서로는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가 있으며, 〈조선후기 전쟁의 기억과 대보단(大報壇) 제향〉,
〈조선
후기 종묘 증축과 제향의 변화〉 등의 논문이 있다.
'뉴스 레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99호-청마타령의 세태를 보며(진철승) (0) | 2014.04.25 |
---|---|
298호-제7대 소장에 취임하며(장석만) (0) | 2014.04.25 |
296호-한국사회의 인간화와 문화 창달을 지향하며(윤승용) (0) | 2014.04.25 |
295호-2014년, 새해 인사드립니다(정진홍) (0) | 2014.04.25 |
294호-종교 연구자가 癸巳年을 돌이켜 보며(이민용) (0) | 2013.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