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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의 종교학>에 이어서 <물적 종교>로 
                                    


                              

2014.5.6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는 지난 해 말 <감각의 종교학>이라는 주제로 종교와 감각의 관계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러한 학문적 움직임은 여전히 종교학에서 종교의 핵심을 (체계화된) 교리로 상정하여 경전 내지 텍스트 중심의 연구가 중시되어 오면서 여러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특히 이러한 방식의 종교전통에 대한 규범적, 형이상학적 이해가 일반 대중들의 실질적인 종교 행위나 이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살아있는 종교경험과는 커다란 괴리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반면 서구 종교학계에서는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텍스트 중심의 종교연구를 극복하려는 모색이 꾸준히 이어졌으며, 이러한 종교학계의 변화는 90년대 이후 문화연구의 새로운 흐름 -물적 문화연구(material culture studies), 시각적 문화연구(visual culture studies), 감각의 인류학(anthropology of senses) 등이 연구분야로 정착- 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여기서 언급할 것은 <감각의 종교학>이란 명칭은 앞에서 언급한 학술대회의 발표자들이 보다 주변 학자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임의적으로 만든 것으로 정확한 용어는 ‘종교미학’(Religionsästhetik; religious aesthetics)이다. 해당 연구영역은 ‘감각적 지각’(sensory perception)을 핵심 개념으로 종교적 실천행위나 의미의 생성과정에서 감각과 육체의 역할을 중시한다. 그러나 <감각의 종교학>은 <물적 종교>(material religion)라는 또 다른 연구영역과 매우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물적 종교>는 종교에 있어 필연적인 물질적 조건/차원에 초점을 맞추고, 종교적 실천행위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이미지/물건/공간(장소)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개인들의 (육체적, 감각적, 인식론적) 상호관계를 연구한다. <물적 종교>에서는 특히 시각적 이미지와 이를 보는 행위를 종교적 실천행위의 기본적인 요소로 상정하여, 시각적 대상, 봄, 경험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하는데,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높은 학문적 관심은 근래 활발한 시각적 문화연구의 동향과도 맥을 같이 한다. 결국 ‘종교미학’과 ‘물적 종교’는 각각 ‘감각’과 ‘물질’이라는 렌즈를 통해 종교현상을 조명함으로써 종교를 추상적 아이디어나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살아있는 경험의 영역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비록 이 두 연구영역이 피상적으로 볼 때 각각 종교의 감각적(미학적), 물질적 차원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이 두 연구영역이 정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 두 연구자 그룹이 서로 활발하게 학문적 자극을 주고받음으로써 연구영역의 외연이 꾸준히 확장되고 있는데 큰 원인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이들이 하나의 동일한 전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매개되지 않은 종교나 종교적 경험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종교는 내재적으로 매체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연구영역은 ‘감각’, ‘육체’, ‘종교적 실천행위’, ‘물질적 대상’ 등을 공동 화두로 삼으며, 종교가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효력을 미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종교학계가 <물적 종교>의 학문적 접근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하여야하며 또 절실히 필요로 하는가를 한국불교의 사리신앙의 예를 들어 피력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교조나 성인들의 유해/유골은 여러 종교 -특히 불교와 천주교- 에서 신자들의 종교행위와 신앙심을 이끌어내는 매우 중요한 물적 대상이며, 한국 불교의 경우 부처의 진신사리(유골이나 결정체)가 가지는 종교적 권위나 이에 대한 숭배는 한국 불교문화의 한 축을 형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학계에서 사리신앙에 대한 연구는 종교학이 아닌 불교학에서 진행되면서 이 또한 문헌연구에 토대를 둔 사리신앙의 역사적 전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여기서 신앙의 물적 대상인 사리 자체를 중심 주제로 다루는 연구가 부재하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진신사리 친견법회(親見法會), 진신사리 이윤법회(移運法會)와 같이 사리를 핵심으로 하는 불교의례에 대한 연구가 발견되지 않으며, 특히 전자는 진신사리와 불자들과의 대면(encountering)을 위해서 특별히 고안된 의례로 ‘친견’이란 용어가 시사하듯 해당 의례에서 ‘보는 행위’는 핵심적 종교적 행위/경험으로 상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불교적 실천행위와 신심에서 사리의 구체적인 역할, 사리와 종교적 권위/권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또한 부재하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사리 자체에 대한 연구로는 사리용기(사리장엄구)가 ‘예술품’으로 분류되어 종교적 맥락으로부터 분리되어 예술사의 영역에서 별도로 다루어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진신)사리신앙과 같이 부처의 유골을 둘러싼 종교적 행위와 믿음이 한국 불교의 대중화에 지대한 역할을 수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종교학계의 관심을 받지 못한 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추정된다. 우선 불교학자들에게도 종종 발견되는 인식, 즉 사리신앙은 대중적 불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부처의 가르침과도 배치됨으로써 ‘진정한’ 불교의 모습 내지 ‘정법’(正法)이 아니라는 판단,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적 의례나 실천행위에 사용되는 물적 대상들을 단지 해당 종교의 교리를 전달하거나 의례진행을 돕는 물품으로 간주함으로써 이것들에게 보조적이고 이차적인 의미만을 부여하는 학문적 경향이 그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미학>과 더불어 <물적 종교>는 종교연구에서 종종 배제되는 종교행위의 주체를 다시 논의에 포함시키고, 이들의 행위와 경험을 주어진 물적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하는데 긍정적인 출발점을 제공할 것이다. 물론 ‘종교’라는 이름으로 초월적인 구원이 약속되고 진리의 절대성이 주장되며 계속 이상화되어 높은 권좌에 올려진 ‘종교’를 대중들 옆의 친숙한 자리로 끌어내리는 작업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학은 신학도 철학도 아니고 궁극적으로 ‘종교적인’ 인간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이라는 자기정체성을 담보받기 위해서는 종교를 기꺼이 낮은 자리로 끌어내려야하는 것은 아닐까?

 


 우혜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woohairan@hotmail.com
논문으로 〈'사이버 법당'의 의례적 구성과 감각의 배치에 관하여〉, 〈젠더화된 카리스마〉, 〈현 한국사회에서 합동천도재의 복합적 기능에 대하여〉등이 있고, 공저로는 <<Religion in Focus>>, <<죽음의례 죽음 한국사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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