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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만신>과 TV 다큐멘터리 <신의 뇌>,
그리고 종교학 상념
2014.4.15
최근에, 종교적 소재를 다룬 대중문화 작품 두 편을 보게 되었다. 원로 무속인 김금화(1931년생)의 일대기를 다룬 재연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박찬경 감독, 2014년 3월 개봉), 그리고 뇌과학계의 종교 관련 연구성과를 곁들이면서 다양한 종교들의 모습을 살피고 종교의 현대적 의의를 모색한 TV 교양 다큐멘터리 <신의 뇌>(KBS, 2부작, 2014년 4월 방영).
<만신>은 박찬경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여러 해 동안 무속에 기울여온 관심과 애정의 깊이가 잘 녹아있는 작품이다. (박찬경 감독은 이전에 형인 박찬욱 감독과 함께 무속을 소재로 한 스마트폰 단편영화 <파란만장>[2010]을 만들기도 했다.) 영화는 역사 자료, 김금화와 주변인들과 학자들의 인터뷰, 아역부터 중년까지 세 명의 배우가 연기한 재연 드라마를 적절히 아우르며 대하서사를 펼쳐낸다. 어린나이에 시집가서 고생하다가 도망친 뒤 집안 내력이자 운명이었던 신 내림을 받고 무당이 된 일, 한국전쟁 때 남북 양쪽의 군인들로부터 혹세무민한다고, 적을 도왔다고 핍박받고 심지어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던 일, 새마을운동의 미신타파 열풍 속에서 도망 다니며 몰래 굿을 해야 했던 일, 굿판에 들이닥쳐 훼방하는 기독교인들을 엄히 타일러 돌려보낸 뒤 못내 씁쓸한 헛웃음을 지어야 했던 일, 민중운동과 독재정권 두 진영으로부터 갑자기 동시에 전통문화의 꽃으로 대접받게 된 일, 무형문화재가 되어 종합 예술인으로 인정받고 큰무당이 되어 지도적 종교인으로 인정받게 된 일, 그리고 개인들뿐 아니라 민족과 역사의 고통까지 보듬으며 벌여온 숱한 굿판들…. 이 영화는 미신에 대한 멸시와 전통에 대한 대접이라는 상반된 평가 속에서 무속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이자,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고군분투해온 한 여성의 험난한 투쟁기이고, 동시에 시대의 격변 속에서 무속이라는 종교가 겪어온 수난과 회복의 역사 이야기이자, 무속을 의지하든 멸시하든 어쨌거나 이 고유한 종교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흥행 면에서야 일반 상업영화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만신>은 다큐멘터리로서는 드물게 대중과 평단 모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상영관 수는 이제 많이 줄었지만, 전국 몇몇 영화관에서는 지금도 계속 상영 중이다.)
<신의 뇌>는 한 독일인 저널리스트가 세계의 다양한 종교들을 찾아다니며 의례에 참여하고, 신자들이나 학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뇌과학 등 현대과학의 종교 관련 연구 성과를 살피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 종교는 과연 어떤 위상과 의의를 지니는지를 모색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작진에게 발탁되어 종교 탐방객이자 이야기꾼 노릇을 한 위르겐 슈미더는 이미 여러 해 동안 이런 작업을 해왔고 그 결과를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는데(<구원확률 높이기 프로젝트>, 2013), 이번 TV 다큐멘터리는 이 책의 확장 심화된 영상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티베트와 인도 등 세계 각국 종교들의 때론 아름답고 때론 그렇지 못한 생생한 모습, 다양한 종교들이 제법 평화롭게 공존해왔다는 흥미로운 나라인 한국의 종교 현장에 대한 관찰과 참여와 신자 인터뷰, 종교 경험을 소재로 한 뇌과학 등 현대과학의 흥미롭고 상이한 연구성과들에 대한 소개와 평가, 종교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분야 국내외 석학들(제레드 다이아몬드, 정진홍 등)과의 인터뷰 등을 아우르며 다채롭게 펼쳐지는 내용은 (TV 프로그램의 속성상 다소 피상적인 감이 없지 않지만) 매우 흥미진진하고 유익하며, 역시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 무속인의 일대기를 통해 지금 여기 우리에게 무속이라는 종교는 과연 무엇인지를 묻는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세속화된 현대사회 속에서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의미의 샘물을 제공하고 있는 종교에 관한 다채로운 담론과 이미지를 통해 종교의 유용성과 유의미성 쪽에 판돈을 거는 파스칼의 내기를 해봄 직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TV 프로그램. 두 작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종교에 대해 깊은 공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내용의 깊이에 대한 평가는 일단 접어두고, 두 작품을 보며 얻은 감동의 느낌은 종교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부럽기까지 하다.
학문분야나 학과로서 종교학의 입지가 좁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특히 입시경쟁, 취업전쟁,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끌려 다녀야 하는 대학에서 종교학은 그야말로 ‘존폐’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둘러보면, 학문으로서 종교학은 늘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초라하지만, 종교에 ‘관한’ 담론을 기대하는 대중의 바람은 생각보다 두터운 것 같다. 한편에선 분야를 막론한 인문사회 학계의 내로라하는 학자들과 글쟁이들이 저마다 종교에 대해 이런저런 담론을 쏟아내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선 영화감독과 저널리스트 같은 대중문화 생산자들이 종교를 소재로 재밌고 감동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쪽은 냉정한 접근을 통해 사람들의 머리를 움직이고, 한쪽은 공감적 접근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냉정과 공감, 또는 종교학에서 흔히 하는 말로 판단중지와 감정이입. 이 상반된 두 가지 태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하고 싶은) 종교학도로서 과연 내가, 우리가 그 줄타기를 잘해 왔는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고, 머리만 분주하든지 가슴만 벅차든지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우리는 열심히 종교에 ‘관한’ 담론을 생산하고 있는데 대중이, 여타학계가 몰라준다고 혼자 푸념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종교학도의 종교 관련 ‘담론’은 그래도 다르다고, 달라야만 한다고 스스로 자족하며 우물 위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며 주저앉아 있지는 않은지. 도대체 나에게, 우리에게, 지금 여기서 종교학을 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이런저런 상념들이 잠 못 들게 하는 밤이다.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jssance@hanmail.net
논문으로 <자살과 종교: 금기와 자유의 아포리아>, <인지적 종교연구 그 한계와 전망>, 공저로 <종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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