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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殉敎)와 시복(諡福)에 관한 짧은 생각
2014.5.13
2014년 8월 16일 서울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이 열린다고 한다. 장소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아마 그들 순교자를 처형한 가해자라 할 만한 전통 한국문화와 피해자 천주교의 새로운 만남, 상호 인정과 화해의 메시지를 담고 싶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아무튼 수십 년 만에 로마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여 시복식을 집전하게 되었다는 것과 더불어, 천주교라는 특정 종교에 국한된 행사이기는 하지만 약간 국제적인 성격을 띠는 바람에 이래저래 뉴스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조선 후기에 이단사설을 신봉한다는 죄목으로 처형된 천주교 신자들의 삶과 죽음을 대단히 세밀하게 기억하고, 나아가서 그들의 행적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리는 전승이 지금도 한국 천주교의 핵심적인 정체성으로 작동하고 있다. 물론 한국 천주교뿐만 아니라 세계 천주교는 역사적으로 ‘순교 전통’을 확립하는 일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박해와 관련지어 “참다운 애덕의 원형”(성 폴리카르푸스) 또는 “가장 영웅적인 행위”(성 치프리아누스)로 찬양하였고, 심지어 신에 대한 “사랑의 완성”(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이라는 말로 그 행위의 숭고한 가치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런 사정은 한국 천주교라고 다르지 않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국 천주교의 역사가 비롯하는 그루터기이자 이후 교세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가 아닌 평범한 한국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순교는 그렇게 당위적인 사건이 아니다. 유교라는 기성 종교에서 천주교라는 새로운 종교로 고개를 돌리는 회두(回頭), 다른 말로 개종(改宗)이라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 있었던 기이한 사건이 순교다. 아무리 고귀한 가르침이라고 해도 어떻게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까? 당시의 유교나 불교, 민간신앙의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행위였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치관의 측면에서 일종의 종교적 혁신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사고와 실천이 조선 후기 사회에서 갑자기 발생한 것을 어떤 개념으로 포착해야 할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대개 학문에서 신앙으로의 전회(轉回)라는 말로 설명하는데, 아직은 그 논리적 연결고리가 정교하게 갖추어져 있지 않은 설명 방식인 것 같다. 한국 종교문화사 속에서 순교 의식의 출현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 좀 더 탐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순교의 영광을 찬양하는 발언들로 점철된 한국 천주교에 들려주고 싶은 낯선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아는 정진홍 선생님의 발언이다. 몇 해 전에 우연히 서점에서 책을 읽다가 기억해 둔 것인데, 이번에 다시 찾아서 읽어보았다. 순교 이야기의 뒤안길이라고나 할까? 순교 이야기가 지닌 껄끄러움을 외부자의 시각에서 지적한 것이다. 꼼꼼히 읽으면서 음미해 볼 만하다.
“‘배타’와 ‘독선’은 그 언표가 지닌 문자적인 의미를 그대로 가진 채, 이미 그리스도교가 스스로 그리스도교이기 위해 지니고 있는 정체성의 기반입니다. 문제는 ‘나’와 ‘또 다른 나인 타자’와의 만남에서 야기되는 배타나 독선이 종국적으로 타자에 대한 정죄와 저주를 넘어, 마침내 타자의 ‘소멸’을 의도하는 데 이른다고 하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사는 그리스도교가 그 소멸의지를 어떻게 실천했는가 하는 것을 기술한 역사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 계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순교사’를 가장 감동스러운 전승내용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생존원리인 배타와 독선이 어떻게 현실화되는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순교는 타자의 소멸을 위한 장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교인의 지고한 덕목입니다. 순교는 자신에 대한 봉헌과 타자에 대한 증오를 전승하는 기제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래왔습니다. ‘나’를 살해한 ‘다른 자아’ 에 대한 증오가 증폭되도록 하는 일은 피살자를 기리는 일에서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순교를 기리는 ‘죽음 권면의 문화’를 규범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진홍, 《정직한 인식과 열린 상상력》, 청년사, 2010, 30~32쪽.)
위의 문장을 읽은 사람들 가운데 천주교 신자가 있다면 대단히 분노할지도 모르겠다. 순교가 배타와 독선에서 나왔고, 순교를 기리는 행위에는 가해자에 대한 증오를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이 들어 있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죽음을 권면하는 문화라고까지 하지 않는가! 물론 천주교 계통의 신학자나 교회사학자들이 순교의 고귀한 가치를 설명하기 위하여 오랜 세월 동안 노력해온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정진홍 선생님도 그럴 것이다. 다만 평소에 그리스도교 문화와 관련하여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정직하게 드러내려는 계기에서 그와 같은 용어와 개념들을 선택하였으리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내친 김에 한 가지만 더 추가하자. 최근 대학원 수업에서 학생들과 영미권에서 발간되는 종교학 학술지들을 읽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어떤 논문들이 학술지에 실리는지를 알아보고 종교 이론의 현 주소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다가 누멘(Numen) 제60집(2013)에 실린 〈유일신교(Monotheism) 개념에 관하여〉라는 글을 접하였다. 유일신교의 불관용성 내지 폭력성을 거론하면서 십자군 전쟁이나 지하드가 외향적이고 능동적인 불관용(intolerance)이라면, 단 하나의 참된 신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인 순교는 내향적이고 수동적인 불관용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하였다. 나는 순교와 불관용을 연결하는 사고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으며, 대번에 정진홍 선생님의 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국 천주교는 순교 이야기를 자신의 정체성과 직결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말해왔고, 또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순교와 불관용을 연결하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지역 문화와의 대화를 많이 강조해왔다. 그래서 신학상의 토착화 논의뿐만 아니라 문화적 토착화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국악미사를 거행한다거나 하는 등의 활동이 그러한 관심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이제는 순교의 전통을 강조하는 것과 지역 문화와의 대화를 모색하는 것 사이에서 묘한 괴리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내부적으로는 그러한 점들에 대해서 이미 많은 논의가 있었고, 논리적으로는 다 해결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공부의 연륜이 짧은 초심자라서 나는 아직 이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정진홍 선생님의 글이 여전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이렇게 문득문득 다른 글을 읽다가도 비슷한 부분만 나오면 마치 방아쇠를 건드린 것처럼 생각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언젠가는 종교학자의 입장에서 천주교 순교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할 때가 오리라고 본다.
짧은 지면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한 가지. 순교를 신학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조명하고 해석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천주교계에서는 이런 학술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다. 단순히 호교론이라고 치부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만 이와 더불어서 한국 종교문화사 속에서 순교라는 종교 형식의 출현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묻고, 그 외연과 내포를 점검하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을까?
조현범_
한국학중앙연구원
hbthomas@hanmail.net
최근 논문으로는 <한국 천주교의 조직적 특성>, <세계 교회의 흐름과 교계제도의 설정 동아시아 선교 정책의 변화를 중심으로>, <개항기 갓등이 본당의 성립과 지역사회의 복음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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