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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54호-핵, 고통의 ‘고리’를 찾아서(유기쁨)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5. 2. 27. 14:26

                       핵, 고통의 ‘고리’를 찾아서

 

 

 

 

 

2015.2.17

 

현지조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가끔 장소가 주는 힘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다. 내 경우에는 어떤 장소에 직접 찾아가서 사전에 형성된 지식이나 견해를 넘어서는 ‘커다란’ 복합적인 경험을 하게 될 때, 소위 ‘장소의 아우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 나는 장소 자체가 독자적으로 혹은 본질적으로 가지는 힘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흔히 어떤 장소가 특별한 까닭은 특별한 기억이 얽힌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장소를 방문했을 때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억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유된 기억일 경우 그 장소는 더욱 특별해지며, 사람들에게 일종의 아우라를 띤 장소로 경험되기도 한다. 그리고 보통 ‘답사’는 장소에 묻힌 숱한 기억의 층위들과 집중적으로 만나도록 의도된 기획이게 마련이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상반기에 개최할 예정인 <핵과 종교>(가칭) 심포지엄 준비팀에서는 지난 2월 9일에서 10일까지 1박 2일 동안 경남 합천, 밀양, 고리 일대로 핵과 연관된 위험 경관의 답사를 다녀왔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부터 시작된 한국인의 핵 경험을 더듬어본 이번 답사는 실은 핵의 고리, 고통의 고리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이른 아침부터 차를 달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합천에 위치한 한국원폭피해자복지회관과 원폭피해자 위령각이었다.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기도 하는 경남 합천은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상공에 원자폭탄이 투하됨으로써 피폭된 7만 여명의 한국인 피폭자들 가운데 상당수의 고향이었고, 원폭에서 살아남은 한국인 생존자들 및 그 2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위령각에서 참배를 마친 후, 우리는 실무자의 호의로 복지회관 내부를 둘러보며 원폭피해 당사자이신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의 생활상을 잠시 엿볼 수 있었고, 원폭피해의 실상과 현황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수차례 원폭피해자 실태조사가 이루어졌고 원폭피해자들의 핵 경험과 기억이 간혹 다큐멘터리나 증언집의 형태로 기록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들의 고통의 기억이 우리 사회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절감한 시간이었다.

 

        바쁜 일정 탓에 아쉬운 발걸음을 떼고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에서는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대도시로 송전하기 위해 세워진 거대한 765kV 고압송전탑 일대를 둘러보았다. 특히 115번 송전탑 아래 지어진 자그마한 움막을 방문해서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머니들이 끝도 없이 부쳐주시는 부침개를 먹으면서 긴긴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친해서 삼총사로 불리던 세 친구가 송전탑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갈라져서 원수처럼 지내게 된 이야기를 비롯한 갖가지 사연은 오늘날 개발의 풍경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보상금을 통한 분열과 지역공동체의 파괴는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지는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그 일대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언덕에 올랐다. 감나무가 많은 마을이란다. 작년 늦가을에 감이 빨갛게 익은 아름다운 풍경 위로 높이 솟은 송전탑들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미칠 것 같았다고 되풀이해서 이야기하시는 아주머니의 눈과 거대한 송전탑들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교차되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고리원전으로 향했다. 고리에는 1978년 한국의 첫 상업용 원자로인 고리1호기가 가동을 시작한 이래 현재 총 6기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으며,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으로 한국의 중추적인 핵발전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안전성 문제, 잦은 고장 등으로 인한 주민 불안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른바 친핵과 탈핵의 대립이 가시화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에는 고리원전 인근 주민들이 피폭으로 인해 입은 건강상의 피해를 공론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리원전 주변을 답사하면서, ‘원자력 마을’이란 문구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원자력 마을’(原子力ムラ)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언론에서 회자된 주요 용어 가운데 하나인데, 원전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에너지사업을 운영하는 정치관료, 기업가 뿐 아니라 학자, 언론 등을 포괄하는 지배엘리트들 사이에서 이익을 둘러싼 거대한 유착관계가 형성된 것을 빗대어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정반대의 의미에서 고리 일대는 실제로 원자력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니, 마을에 원전이 들어선 것 같은 풍경이었다. 원전 바로 옆에서 사람들은 낚시를 하고, 해녀들은 물질을 하고, 미역을 따서 말리고 있었다. 어촌의 평화로운 일상처럼 보이지만, 고리에서 우리가 본 것은 엄청난 잠재적 위험을 품고 있는 핵 위험의 경관이었다. 복잡한 생각들을 가슴에 품고, 서둘러 부산시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때마침 열린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의 발족식 및 대표자회의까지 참관하고서 1박 2일의 빡빡한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답사에서 우리는 핵과 관련된 숱한 기억의 장소들을 방문했다. 물론 기억의 사회적 전수 또는 전파는 결코 평등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택과 배제의 메커니즘은 핵과 연관된 기억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이번에 우리가 핵의 고리를 더듬어간 장소들은 사회적으로 기념되지 않는, 배제된 기억의 현장이었다. 우리는 핵과 연관된 고통의 기억, 그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았다.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기억을 만들며 돌아왔다.

 

        내게는 각별한 답사였다. 관심이 가는 이른바 ‘현장’에 찾아간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렇게 팀을 이루어서 함께 찾아간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답사는 숱한 대화에서 시작되어 대화로 마무리되었다. 뒤얽힌 한 뭉치의 경험과 느낌들을 정돈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덧붙이자면, 개성 강한 연구소 팀원들과 1박 2일을 빡빡하게 지내면서, 그들과도 실없는 이야기부터 진지한 주제까지 아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다시 이런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 싶다. 이렇게 답사 팀을 꾸려서 고통의 현장으로 '함께' 가서 '함께' 이야기하고 느낀 그 경험은 그냥 흩어지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생한 팀원들에게 감사를...

 


 유기쁨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ntolose@hanmail.net
저서로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등이 있고, 논문으로 <생태의례와 감각의 정치>,<인간과 종교,그리고 생태 -더 큰‘이야기’속으로 걸어가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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