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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샤를리”

 

      : 표현의 자유와 2015년 1월 11일 파리 시위

                               

                

                       
                              

 2015.2.3

 

 

 

        일요일인 지난 11일, 프랑스에서는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뿐 아니라 지방의 작은 도시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 7일 파리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 가해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를 규탄하기 위한 것이었다. 표현과 언론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폭력으로부터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시민 의식의 표출이었다. 시민들은 참을 수 없었고, 뭉쳤고, 시위를 통해 모두 하나가 되어 이러한 원칙을 지키고자 함을 확인하고는, 더할 나위없이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 풍자 >와 같은 예술적 표현은 법정에서의 판검사의 발언이나 선거 운동에서의 정치인의 공약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가정, 실험, 상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풍자는 사실과 거리를 취하면서, 사회적 규범이나 예절을 ‘고의’로 어김으로써, 그러한 사회적 장애물들이 얼마나 견고한지, 여전히 지킬 가치가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사회가 건전하고 유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우상을 파괴하는 자들, 권위를 부정하는 자들이 활동할 공간이 필요하고, 그들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관용은 수동성이나 연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떠한 사회적 가치들을 절대적으로 보는 것이나 세계를 선악과 같은 이분법으로 보는 것에 대한 신중함, 지혜로운 망설임, 판단 유보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서로 주고 받을, 서로 타협할, 서로에게 적응할 의향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늘 지니고 있어야 한다. 상호 양보, 상호 타협, 상호 적응은 자유 민주주의의 근본 속성이며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다.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를 통해 노리는 것은 그들의 적을 사라지게 하거나 겁을 주는 것뿐만이 아니다. 테러를 통해 극단적인 공포와 피해와 갈등을 야기시킴으로써 일반 사회로 하여금 反이슬람 정서를 부추겨서 일반 사회와 타협하며 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이슬람 평화주의자들에게까지 등을 돌리게 하고, 그래서 결국 이 평화주의자들마저도 그들의 ‘성전’에 끌어들이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학자 Ian Buruma는, 지난 주에 일어났던 파리 테러 사건으로 우리가 이슬람 세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순간,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 되며, 반면, 우리가 이슬람 평화주의자들을 우리와 같은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할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 강해진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관용은 무한정일 수도 절대적일 수 없다. 종교든 정치 이념이든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어떠한 민주 사회도 용납할 수 없다. 2015년 1월 11일 일요일, 파리에서는 최소한 120만이, 프랑스 전역에서는 370만이 “나도 샤를리”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Jean-Noel Jeanneney, Pascal Ory, Michel Winock 과 같은 프랑스 대표 현대사가들은 이날을 역사적인 날로 규정하며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대혁명, 1918년 11월 11일 1차 세계대전 종전, 1940년 6월 18일 드골의 항전 호소 때와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같은 슬로건을 외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적이 없었다. 프랑스의 도시에서 자주 시위를 볼 수 있지만, 대부분 자기 주장과 갈등의 표출이었고, 동지의식으로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며 거리를 누빈 적은 드물었다. 하지만 이번엔 하나의 타자에 대항하여 프랑스가 하나로 뭉친 것이다. 그래서 또 하나의 < 프랑스를 만든 날 >이 되었다.

 

 

        이 역사적인 날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것이다. 시위 참여 동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젊은이는 “우리가 여기 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답했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어느 기자나 정치인의 원칙이 아니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누릴 수 있고, 지켜야 하고, 책임져야 하는 원칙이다. 《르 몽드》지는 <어제 프랑스는 바스티유를 재점령했다>고 표현했다. 시민 개개인이 민주 국가의 정체성을 되찾아 준 것이다.

 

 

        그런데 어제 파리 거리에는 프랑스인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 귀중한 민주주의의 원칙을 재천명하기 위해서 44개국 국가 원수와 정부 수반들이 순식간에 파리에 모여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어깨를 맞대고 시민 군중 앞에서 행진했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같은 시각에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 또한 미증유의 사건이다. 그래서 역사가 Michel Winock은 이 날을 < 민주주의 국제주의 > (internationalisme dmocratique) 의 첫번째 기념일이라고 규정했다.

 

 

        이렇듯 이 날은 엄청난 날이었다. 그것은 집단 의식 속의 결정체로서, 공동 기억의 종합으로서 하나의 준거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어떤 정치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정치인들은 각자 자기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제까지 재정 적자나 신용 평가 하락과 같은 주제로 논쟁을 벌이는 동안 이 사회의 존재 형식과 관련된 근본적인 주제들을 잊고 있었다는 것, 이러한 주제들을 다시 논의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이 일깨워졌다는 것이다. 이 일요일이 역사적인 날로 남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테러의 트라우마와 그에 대한 사회의 반응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 사건을 잊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 앞으로 나아갈 때만이 역사가 이 일요일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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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2015년 1월 13일자 《르 몽드》지의 기사들을 읽으며 쓴 글이며, 많은 부분들이 인용되었다.)

 

 

 


 김대열_
Maître de Conférences (Associate Professor)

Institut National des Langues et Civilisations Orientales (INALCO)
dkim@inalc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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