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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지역 신종교 현지조사를 다녀와서 

                

                       
                              

 2015.1.27

 

 

 

        얼마 전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에서 하는 제주지역 신종교 현지조사에 참여했다. 현지조사를 통해 느낀 것은 제주도에서 자생한 신종교이거나 육지에서 건너와 뿌리를 내린 신종교이거나, 모두 제주도인들의 삶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삼천도(三天道)는 증산계 신종교로 알려져 있으나, 연주(蓮主)[본명 고대오(高大五, 女, 1923-2005)]에 의해 제주에서 시작된 자생 신종교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고대오는 19세에 결혼, 24세에 신병을 앓고 ‘太上老君’만 부르면서 수련을 하던 중 병이 다 나았고, 28세부터 노자(老子)의 계시(啓示)를 받기 시작하여 2005년 83세에 세상을 떠날때 까지 계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지인의 조화를 내세우는데, 천상은 노자, 지상은 서왕모, 인은 연주를 중심으로 구제창생 활인구제 환자치유를 내세운다.

 

 

        삼천도에서는 노자가 ‘후천 5만년 동해바다 남쪽 청룡을 불러 타고 하늘로 등천하여, 등천한 첫 코스가 三十六궁 태청경 태극궁 태을궁이며, 태을궁은 동양중앙...만성당이며, 만성당은 만만세계 지상중앙 五十土궁이며, 그 중앙은 제주도, 제주도 중앙은 백록담, 우주개벽 열린 하늘에 중앙은 황천, 지상중앙은 바다 중심 우뚝 솟은 제주도, 제주도는 세계중앙 배 뜨는 항구...’ 라고 노래한다.

 

 

        동도법종금강도(東道法宗金剛道, 증산계)를 방문하여 만난 98세의 강정순 할머니는 또렷한 기억력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지만 제주 본토말을 다 알아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보천교의 차천자, 보천교를 믿다가 수산교(水山敎)를 세운 강상백, 강상백이 죽은 후 동도법종금강도를 세운 김승례의 이름들이 거론되었다. 할머니는 김승례의 예언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제주도에 그것도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동흥동 서흥에 아기씨(만민을 구제할)가 온다고...” 그리고 그 아기씨를 기다린다고 했다.

 

 

        단군성주교(증산계) 월정 강봉옥선생도 개벽정신문화 후천 건곤성지는 제주도 한라산이란다. 이러한 제주도 중심의 신화가 양산되는 배경에는 지리적, 역사적, 정치적 요인에 의한 제주도만의 사회문화적 특수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도는 오랜 세월 중앙으로부터 끊임없는 수탈과 왜구의 외침에 시달려왔다. 여기에 제주도민들은 조선 후기 250여 년간 출륙 금지령에 묶여 육지로의 출입을 제한받았다. 이들은 관청의 허가 없는 배를 탈 수가 없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제약과 수탈이 조선조 말에는 제주를 육지 정부로부터 독립시키자는 분리주의적 민란이 일어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방성칠의 난, 1898년 등) 그밖에 6.25를 거쳐 4.3사태에 이르기까지 제주민들의 고단한 삶과 깊은 상처가 제주 중심의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싶다.

 

 

        신화는 해당 문화의 무의식적인 심층을 구성한다. 때문에 신화적 상상력은 곧 문화적 집단표상과 많은 부분 일치하게 된다. 제주 신종교 전통에서 보여주는 신화의 내용에는 제주민 개인 내면의 심리 작용뿐 아니라 개인을 초월한 집단 전체의 심리 작용도 내포되어 있으며, 의식과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염원의 세계를 극적으로 재창조하고 집약적으로 표현한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수운교(水雲敎)를 창립한 이상룡(李象龍)[(호는 出龍子, 1822~1938)]은 1920년 충남 청양군 전곡면에 있는 도성암(道成庵)에서 수도하던 중 "수운교를 포덕하라"는 상제의 지시를 받고 通靈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수운의 영이 이상룡에게 옮겨왔다고 한다 이상룡은 1923년 朴性昊의 도움을 받아 서울 서대문에서 수운교를 설립했다. 수운교(水雲敎)의 신앙의 대상은 [한울님]이다. 기본교리 강령은 유불선의 원리를 합일하여 布德天下 廣濟蒼生 補國安民함으로써 동서양이 합덕되는 융화세계 지상천국을 건설하자는 佛天心一圓을 종지로 한다.

 

 

       그러나 조사팀이 방문한 수운교에서 수운의 흔적은 벽에 있는 궁 을기 마크를 제외하고는 찾을 수 없었다. 제단에는 중앙에 삼신불을 모셔 놓고 공자, 노자, 석가, 단군 신위, 그리고 양 옆에 교조 이상룡과 고려 말 나옹선사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제단을 보면 불교사찰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은 수운교의 불교화는 일제 강점기 신종교탄압 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상룡이 수운교를 일본 불교화하여 교단을 유지했던 것처럼 제주도에서 뿌리내려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인지도 모른다.

 

 

       수운교뿐만 아니라 육지에서 들어온 종교들은 제주민들의 토착신앙과 습합된 양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불교가 그러하다. 제주도라는 절해고도(絶海孤島)의 지리적 제한, 척박한 풍토, 조악한 기후 등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발생된 원시종교인 무(巫)는 제주인에게는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또한 무(巫)는 오랜 제주의 전통과 문화의 저변을 형성해 온 지배적 사상이다. 제주인들은 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巫)에 대한 신앙을 생활화하였으며, 그들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종교의례와 관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오래 전에 내가 대담한 해녀는 “종교는 불교이다. 그러나 당에도 간다. 해녀들은 영등굿, 용왕제에는 모두 참여한다. 마을에 당굿이 정초에 있고 그 다음에 영등굿을 한다. 영등굿은 작업을 모든 중단하고 해녀들이 2일 동안 크게 지낸다. 해녀들은 불교와 당을 함께 다닌다. 나도 용왕제에도 충실하게 나가고 시어머니를 이어서 당에도 다닌다. 우리 마을에 80프로 정도는 당에도 다니고 절에도 다닌다. 절이나 당에 가면 나는 자식들, 동생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바다에서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기원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특정한 종교에 귀의하고 있다고 해도 그들에게 당 신앙은 일상적인 삶의 일부가 되어있다. 삶의 공간인 바다나 밭은 제주여성들에게는 노동공간인 일터가 되기도 하고 인생의 절박함과 모순된 삶의 고통들을 토로하고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는 곳이자, 신들이 거처하는 의지처인 신성공간이 되기도 한다.

 

 

       내가 찾아간 신성공간들은 화려하지도 그다지 인위적이지도 않은 자연공간들이었다. 텃밭 옆 움푹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는, 아름다운 팽나무가 가지를 늘어트리고 있어 이름 모를 새들이 울고 있는 고즈넉한 공간, 안내자가 없으면 찾기 힘든, 그런 곳에 위치해 있을 것 같지 않은 텃밭 옆에, 자연 그대로 바위가 움푹 들어가 있어 일을 하다가 비가 쏟아지면 비를 피할 정도로 들어가 있는 깊지 않은 바위굴, 아무도 찾지 않은 듯한 바위굴 앞에는 이름 모를 풀꽃들이 피어 있었다. 바다가 멀리 보이는 곳에 위치한 신성공간 등등 아픈 삶을 살아간 여인들이 쉽게 찾아들 수 있는 자연공간이었다.

 

 

       바로 이 신성공간에서 여인들은 신과의 대면을 통해서 또는 홀로 조용히 앉아, 멀리 바다를 바라보면서 자신과의 대면 속에서 아픔과 고통을 삭이면서 살아갔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삶의 문제이고 생명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살아야 하는 것, 살아내야 하는 것, 살아가는 것의 문제라는 것을. 그 삶과 생명 한가운데서 지금도 신화들이 살아 있고, 또 새로운 신화가 생산되기도 하는 곳, 그곳이 제주도이다.

 

 


 차옥숭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oksoong@hanmail.net
논문으로는 <소래 김중건의 삶의 여정과 사회 개혁 사상>, <동서 교섭의 관점에서 본 몸과 마음 이해-동학과 스피노자를 중심으로> 등이 있고, 저서로 《동아시아 여신신화와 여성정체성》(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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