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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56호-3월의 봄, 입학식을 기억하며(이욱)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5. 3. 27. 17:21

            

                          3월의 봄, 입학식을 기억하며

 

     

                                                                                  2015.3.3                        

        

    
                               

 

        노란 개나리와 붉은 진달래보다 봄을 먼저 알려주는 전령사들이 있다. 겨울의 찬 공기가 아직은 가시지 않았지만 3월의 봄은 입학식과 더불어 찾아온다. 벗지 않은 겨울 외투 사이로 조심스럽게 멋을 낸 화사한 칼라는 올해의 봄이 신입생의 것임을 알려준다. 그 풋풋한 청춘이 봄이었음을, 시간이 멀리 지나고 나서야 알기에 3월이면 학교가 그립다.

 

 

        1817년(순조 17) 3월에 많은 사람들이 성균관에 모여들었다. 9세인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입학례(入學禮)를 거행하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단아한 모습, 법도에 맞는 행동, 가락에 맞는 낭랑한 목소리, 사부(師傅)격인 노인 남공철(南公轍, 1760~1840)과의 예리하고도 성숙된 문답 등 효명세자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수많은 신하와 백성들의 시신이 집중되었다. 실록에서는 이날 성균관 반궁의 다리를 에워싸고 목을 내밀어 구경하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었다고 전한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에도 입학식이 있었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왕세자의 입학식이다. 비록 단체 입학식은 아니지만, 그리고 봄에 거행하는 것도 아니지만 학교를 찾는 왕세자의 모습에서 훗날을 기약하는 봄기운을 느꼈을 것이다.

 

 

        왕세자 입학식은 크게 대성전(大成殿)에서 거행하는 작헌례(酌獻禮)와 명륜당(明倫堂)에서 거행하는 입학례(入學禮)로 구분된다. 전자의 작헌례는 대성전에 모셔진 공자에게 술을 올려 예를 표하는 의식이다. 이를 마치면 강당인 명륜당에 나아가 스승을 찾아뵙는다. 이 과정은 다시 왕복의(往復儀), 수폐의(脩幣儀), 입학의(入學儀)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왕복의는 명륜당 대문 밖에서 가르침을 청하는 왕세자와 명륜당 동계에서 부덕(不德)하여 가르칠 수 없다는 사부(師傅) 사이에 오가는 간청과 사양의 의식이다. 왕세자의 세 번째 청에 스승은 가르침을 수락한다. 이에 왕세자가 들어와 폐백을 바치는 의식이 수폐의이다. 그리고 마침내 입학의를 거행하였다. 스승이 강당의 동쪽 편에서 서쪽을 향하여 앉으면 세자가 서쪽 계단으로 당에 올라와 박사 앞에 앉아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 사이에 책상과 책이 놓여있다.

 

 

        효명세자의 입학식에 스승 남공철이 가르친 첫 수업은 《소학(小學)》의 첫 부분에 나오는 제사(題辭)였다. 이 부분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天道)의 상도(常道)이며,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人性)의 벼리이다”라고 시작한다. 세자가 다 읽은 후 남공철이 세자에게 한 첫 질문은 ‘원형이정이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세자의 첫 질문은 ‘성품(性)이 무엇입니까’였다. 이제 학문에 갓 들어온 초입자 치고는 너무도 심오한 질문이다. 그럼에도 이를 통해 학교에서 무얼 가르치고 배울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남공철은, 사람들이 물욕(物慾)에 가리워 쉽게 포기하기 때문에 성인(聖人)이 학교를 세웠으며, 스승은 선각자(先覺者)로서 후각자(後覺者)를 깨우치는 사람이라 설명하였다.

 

 

        효명세자의 입학식에 스승 남공철이 가르친 첫 수업은 《소학(小學)》의 첫 부분에 나오는 제사(題辭)였다. 이 부분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天道)의 상도(常道)이며,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人性)의 벼리이다”라고 시작한다. 세자가 다 읽은 후 남공철이 세자에게 한 첫 질문은 ‘원형이정이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세자의 첫 질문은 ‘성품(性)이 무엇입니까’였다. 이제 학문에 갓 들어온 초입자 치고는 너무도 심오한 질문이다. 그럼에도 이를 통해 학교에서 무얼 가르치고 배울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남공철은, 사람들이 물욕(物慾)에 가리워 쉽게 포기하기 때문에 성인(聖人)이 학교를 세웠으며, 스승은 선각자(先覺者)로서 후각자(後覺者)를 깨우치는 사람이라 설명하였다.

 

 

 


 이욱_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leewk99@daum.net
논문으로〈조선시대 왕실 제사와 제물의 상징: 혈식(血食)·소식(素食)·상식(常食)의 이념〉,〈조상제사의 의미와 기억의 의례화〉등이 있고, 저서로《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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