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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68호-동아시아 근대의 ‘神話’ 구축의 일면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6. 8. 19. 17:41

 

동아시아 근대의 ‘神話’ 구축의 일면




                                                                                  newsletter No.368 2015/5/26

 

 

올해는 한일수교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최근 양국간의 외교에 냉기류가 흐르는 탓인지 필자는 새삼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로서 체감하게 된다. 식민지배와 침략으로 점철된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된 문제들은 수교한지 반(半)세기가 된 지금에도 한일간에는 물론 동아시아에 여전히 매듭지어지지 못하는 현안으로 남아있다. 한일 근대사의 첨예한 문제들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일본 근대의 구심점인 천황제와 만나게 된다. 일본신화 연구자들이 지적했던바, 일본 근대사의 동력은 천황제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1868년 일본 막부가 멸망하고 메이지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새 정부의 취약한 정권기반을 극복하기 위해 천황을 동원하였다. 즉 메이지 정부는 정권수호와 국민통합을 위해 천황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았는데, 이를 계기로 천황은 전통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일본 근대화의 상징으로 만들어졌다. 아울러 천황의 계보와 기원에 관한 이야기들을 수록하고 있는 문헌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묶어서 부르기를 기기신화((記紀神話)라고 하였다.


 

여기서 필자가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神話라는 용어이다. 일본인들이 근대라는 격변의 상황에서 고대로부터 전해온 천황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들을 계승하면서 전승을 재편하고 그 가치를 재창조하여 역사의 원동력으로 삼았는데, 그 이야기들을 ‘神話しんわ’라고 명명했다. 기기신화라고 집약되는 일본의 신화는 카미(かみ 神)와 미코토(みこと 尊, 命)로 명명되는 신들의 계보, 초대 천황(신무천황)으로부터 황족(皇族)의 계보, 그리고 국가 및 왕권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들에 관한 내용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 색채를 띤 神話라는 말은 동아시아 근대에 한국(조선)을 비롯한 중국에도 그 용어와 함께 일본식의 개념이 전해졌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신화 = 神話 = myth\' 라는 상식이 통용되고 있지만, 서양어 myth와 神話를 그냥 등치하기에는 곤란한 두 용어간의 엄연한 차이가 있음을 일본의 근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일본 내에서조차 일부에서는《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이미 존재하는 단일한 신화로 간주해왔다. 하지만 사실상 그 텍스트들은 서로 다른 신화체계가 천황가와 그 국가체제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다방면에서 정당화한 하나의 체계를 표상하게 편집되었으며, 특히 근대에 이르러서는 국체의 개념과 연관되어 재구성, 재생산되면서 근대 천황제를 지탱하는 신화적 근거로 기능하였다. 19세기말 일본관학자들은 천황을 구심점으로 하는 근대신화 만들기에 이어 조선의 고조선과 단군을 부정하여, 그 사적에 대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식민사학자들이 우리의 상고사를 연구하면서 단군을 역사로 간주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렇다고 그것을 신화라고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일본유학을 통해서 근대적 학술용어로서 신화 개념을 학습했던 국내학자가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신화 구축을 시도하면서 단군신화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즉 20세기 초에 국내 민족주의 계열의 일부 학자들이 우리민족의 구심점을 갈망하면서, 근대사의 동력으로 삼고자 단군을 ‘근대신화’로 거듭나게 하려고 신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정황이 역사를 통해 확인된다. 하지만 근대과학의 부상과 함께 유물론자들의 신화관은 민족주의자들의 신화 개념과 대립하게 되었다. 즉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과학적 신화관을 내세워 단군신화를 한국사의 기원으로 보는 것은 극복되어야할 특수사관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더 이상 민족적 위기를 극복할 동력으로 논하기는 어렵게 되어버렸다. 결국 단군이야기는 서양에 뿌리를 둔 myth의 개념과 번역과정에서 굴절을 거친 神話 개념의 혼란 속에서 근대신화로서 ‘거듭’ 나지 못했으며, 오히려 ‘신화인가 (아니면) 역사인가’ 라는 논쟁 속에 휩싸이게 되었다.


 

동아시아 근대의 격변기에 서구열강에 합류하고자 제국주의적 팽창에 필사적 도약을 꾀했던 일본, 자성의 각오로 혁명에 매진한 중국, 그리고 제국주의 열강들의 쓰나미 앞에서 민족생존을 위해 그 구심점을 찾고자 투쟁했던 한국, 이러한 삼국은 그 주체 및 맥락 그리고 결과는 상이했지만 공통적으로 근대국가로의 전환기를 맞이하여 공동체의 구심점 확보를 위해 근대신화만들기에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요한 고전으로 간주되는 텍스트도 자연발생적으로 가치 있는 고전이 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텍스트의 창조와 더불어 텍스트의 가치창조, 유통, 재생산, 재편성 등 끊임없는

 

담론 조직화의 과정이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매우 정치적인 것이다.

 

《創造 된 古典》 서문 중에서

 

 

 


하정현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jhha797@naver.com
논문으로 <1920년대-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개념의 형성과 전개>, <근대 단군 담론에서 신화 개념의 형성과 파생문제>,〈신화와 신이, 그리고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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