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370호-돈황의 하늘을 꿈꾸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6. 8. 19. 18:07

 

 돈황의 하늘을 꿈꾸다

- 한국 돈황학 학술회의를 다녀와서-


 

 



                                                                                     newsletter No.370 2015/6/9

 

 

처음 그 곳에 발을 내디뎠던 건 석사과정을 막 마치고 들떠있던 1994년이었다. 중국어도 전혀 못하던 선후배 세 명이 의기투합해 떠났던 꽤 긴 여행길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도시가 돈황이었다. 당시 서안에서 내륙으로 돌아 나오려던 원래 계획을 수정하게 만든 게 뭐였을까? 되짚어 보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바람 부는 먼 땅으로 펼쳐진 길을 계속 가보고 싶었던 욕구 뭐 이런 거다.

 

돈황은 그야말로 길 위의 도시다. 햇살이 쏟아지고 누런 흙바람이 불고 하얗게 칠한 흙벽이 푸른 하늘을 더욱 눈부시게 만들고 당나귀가 돌아다니고 가무잡잡하게 탄 얼굴들이 흰 옷으로 햇빛을 가리는 곳, 익숙한 한족의 얼굴이 아닌 이국적인 얼굴들과 낯선 물건들, 여러 곳에서 출발한 다양한 습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곳이다.

 

사실 변방의 작은 도시였던 돈황이 돈황학이라는 독자적인 학문 분야가 생길 정도로 유명해진 것은 전적으로 돈황석굴과 그곳에서 발굴된 돈황문서에서 시작되었다. 석굴의 벽면을 채우고 있는 벽화의 화려한 색채와 선, 수많은 불상과 보살상, 공양인상, 쏟아져 나오는 필사본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 것이다. 1900년 돈황 장경동의 문헌들이 발견된 이래로, 누군가에게는 발굴이지만 현지인에게는 약탈일 뿐이며 연구자 스스로는 문화재 보존이라는 뿌듯한 변명이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는, 탐사와 발굴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결과 프랑스, 영국, 일본, 러시아가 돈황학의 1차 자료들을 상당수 소장하고 있으며, 중국 측에도 남아있는 자료들이 적지 않다. 자료 자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자료 소장국들의 돈황학 연구가 앞서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지난 5월 22일에 고려대학교에서 한국 돈황학 학술회의가 열렸다. “한국 돈황학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주제로 한국 돈황학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자리였다. 미술, 음악, 역사학, 종교, 문학의 다섯 분야에서 이루어진 돈황학 연구성과를 점검하였다. 한국 돈황학회가 창립된 것은 1987년이며, 대략 1980년대부터 돈황과 관련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연구사를 검토해 보았을 때 가장 많은 연구 성과를 보이는 분야는 문학계였다. 돈황 변문(變文)과 강창(講唱)문학의 연구가 가장 활발하며 그 외 돈황 민간가요, 시가에 대한 연구도 적지 않다. 또한 돈황 강창문학과 한국 불교고사의 관계, 판소리와 강창문학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역사학 분야의 연구는 대체로 중국 당대사(唐代史) 연구에 기초를 두고 그 바탕 위에서 돈황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예컨대 돈황문서에 남아있는 법제문서의 원본을 이용한 당대 법제사의 재구성이라든지, 계약문서나 사원문서 등을 통한 해당시기 경제사에 대한 이해, 호적문서를 중심으로 한 균전제의 실시 여부나 구체적인 실시 과정에 대한 검토를 들 수 있다.

 

종교 분야의 연구는 돈황 사본의 90%가 불교와 관련된 것인 만큼 단연코 불교 관련 연구의 비중이 가장 컸다. 미술, 건축, 문학, 서지학의 연구 성과와 겹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도 불교 분야였다. 경전해석과 사상 연구의 경우 돈황본 『육조단경』과 선 사상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불교인의 종교적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주는 수많은 돈황 자료들, 예컨대 사원 경제나 출가자의 삶, 학교 역할을 담당했던 돈황 사원의 교육체제, 석굴을 조성하고 불상을 만들고 경전을 필사하는 불교인들의 구체적인 바람 같은 생생한 삶의 모습이 드러난 자료들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한 형편이다. 또한 도교와 민간전통에 대한 자료들도 상당한데 이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빈약하다. 특히 도교 수련전통과 관련된 수많은 흥미로운 자료들이 있으나, 도교사 전반에 대한 관심, 다양한 도교문화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국내 연구 경향 때문인지 관련 연구가 눈에 띄지 않는다. 돈황의 경교와 마니교 관련 자료 역시 상당히 중요한데 국내 연구자의 관심은 부족한 편이다.


미술계의 연구는 전반적으로 회화에 비해 조각 부문은 열세이며, 돈황 석굴 건축과 돈황화에 표현된 건축적 요소를 한국 건축과 비교하는 관점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돈황 석굴이 드러내 보인 놀랄만한 벽화와 조각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록이 아닌 실제 벽화와 조각이 연구자에게 닫혀있기에 많은 한계가 있는 셈이다.

 

음악계의 연구는 미약한 형편이지만 돈황 악기와 악보에 대한 연구, 한국음악과의 연계성에 대한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악기의 전파는 음악의 전파를 수반한다는데, 음악은 가장 섬세한 감수성을 표현하며 문화적 변화를 예민하게 드러내기에 상당히 흥미로운 연구분야이다.

이어지는 토론 자리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다른 분야의 연구사에서 흥미로운 자극을 받았고, 각 분야의 공동연구가 필요함을 언급했다. 사실 돈황 연구와는 별 관련이 없던 필자가 종교연구를 검토하게 된 것은 올해 발간될 『돈황학대사전』의 번역진으로 참여하게 된 인연으로 해서였다. 불교 사원과 석굴 분야, 도교 경전과 마니교, 경교 관련 항목을 번역하면서 자료들이 지니는 광채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공부에 제대로 힘을 쏟고 있지 않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료들이 펼쳐 보이는 세계에 제대로 자극받고 있는 셈이다.


‘바람부는 먼 땅으로 펼쳐진 길을 계속 가보고 싶었던’ 예전의 욕구가 여전히 내 속에 꿈틀대고 있었음을 확인하며 스스로 조금 놀라게 된다.

 

 


차은정_
한신대학교 강사
jungscha@daum.ne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