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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과 페르소나,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의 얼굴





2015.12.22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가면을 벗고 자신의 민낯, 맨얼굴을 보여줄 용기가 필요하다는 어느 철학자의 돌직구부터, <복면가왕>같은 프로의 인기, 최근 정부의 복면테러 비판과 이를 조롱하고 저항하는 복면시위까지 ‘가면’이라는 코드는 올해 한국 사회를 관통했다.

 

엇갈린 주장들이나 만평, 세평 등을 보면 가면이나 복면을 바라보는 시선의 초점도 약점이나 잘못을 숨기기 위한 위장술, 사회적 자아의 메타포, 편견을 배제하고 소리에만 집중시키는 장치, 무책임한 폭력과 테러의 수단, 동일화의 폭력, 단순한 획일적 규정에 발랄하게 맞서는 교란의 방식 등 시차가 있다. ‘가면을 벗으면 또 다른 가면이 있다. 우리는 결코 가면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맨얼굴과 이면의 신화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런데 언뜻 상반된 가면의 개념도 구조적으로는 얽혀있다. 가면 자체가 겉모습과 이면, 은폐와 폭로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가면은 약자의 방어막 역할도 하지만 강자의 무기도 되며, 가면을 벗고 자신을 드러내라며 진실을 강조하면서 또 다른 가면 뒤에서 폭력을 일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또한 누군가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역으로 가면을 쓴다.

 

 

 

나아가 가면은 이처럼 진면과 표면의 양면성이나 단순한 대비보다 더 복합적이고 구성적인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로 보이기도 한다. 초월적 혹은 비일상적인 것이 드러나고 인간과 소통한 방식으로 종교사에 익숙한 가면의 다양한 쓰임새를 떠올려 볼 수도 있지만, 특히 가면과 인격의 뉘앙스를 공유하며, 기독교의 삼위일체교리에서는 위격 개념으로도 쓰인 서구의 ‘페르소나’ 개념이 그렇다. 그래서 마르셀 모스는 인간의 개별적 자아와 인격 개념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고찰하면서 가면, 페르소나에 주목했던 것이다.


 

 

한나 아렌트도 가면에서 말과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존재 양식과 법적 인격을 보호하는 가면의 인간학적 의미를 강조했다. 우리말의 가면(假面)과 복면(覆面)은 어감차가 있지만 얼굴과 가면에 두루 쓰는 영어 mask는 가면과 인격(person)을 뜻하는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에서 유래한다. 아렌트가 착안한 것은 고대의 배우들이 무대에서 연기할 때 쓰던 가면이 배우 자신의 얼굴과 표정을 은폐하며 동시에 배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무엇인가를 숨기면서 드러내는 이중적 메타포가 되었다는 것 뿐아니라, ‘충분히 들리다’는 의미의 라틴어 ‘per-sonare’의 의미로 고대 로마의 공적 영역에서 역할을 하는 ‘법적 인격’의 의미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진정한 자기를 위장하고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떠맡는 수동적인 가면, 시장의 요구에 맞추어 끊임없이 자신을 변모시켜야 하는 생존수단으로의 슬픈 가면, 다양한 가면(역할)을 통해 자신을 억압하는 기존의 획일적 역할을 거부하는 저항의 가면 뿐 아니라, 말과 행위를 통해 타인과 연대하고 공적 영역을 구성하는 인간성을 드러내고 보장하는 방식으로서 가면의 인간학적 의미를 발견했던 것이다.(양창아, 「한나 아렌트의 행위개념-가면과 퍼포먼스의 은유를 중심으로」, 『코기토』 74호, 2013, 127-157)


 

 

타인과 함께 살기 위해 관계 속에서 자신이 드러나는 사회적 얼굴로서의 페르소나 없이 우리는 결코 사람답게 살 수 없다. 그래서 가면을 벗고 맨얼굴이나 민낯을 드러내라는 투의 조언은 뭔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무수한 외양들을 수습하면서 어떻게 또렷해지는 자신의 얼굴을 만들어갈 것인가가 문제가 아닐까. 물론 그러한 얼굴을 끝내 그려내지 못한다면, 어떤 가면은 우리를 해칠 수 있을 테지만.

 

 

 


안연희_
선문대학교 연구교수
논문으로 <아우구스티누스 원죄론의 형성과 그 종교사적 의미>, <“섹스 앤 더 시티”: 섹슈얼리티, 몸, 쾌락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 다시 읽기> 등이 있고, 저서로 <<문명 밖으로>>(공저), <<문명의 교류와 충돌>>(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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