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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 밟고 다니라고? 어떻게?
2015.12.15
일이 있어서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5년도 하반기 심포지엄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에 자료집을 구해서 읽었다. ‘종교 가르치기’를 주제로 내걸었다. 중고등학교든 대학이든 교양교육의 틀 속에서 종교를 또는 종교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읽을 수 있었다. 아,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 혹은 나만 그런 과정을 겪는 게 아니었구나. 이런 느낌이 먼저 떠올랐다.
종교라는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학생들이 졸지 않고 내 강의에 집중할까. 강의실을 들어설 때마다 늘 하게 되는 고민이다. 내가 무슨 광대도 아니고. 하지만 강사료를 받는 입장에서는 무언가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나는 그들의 인생에 빛을 던져줄 구루가 아니다. 알아들을 귀를 가진 자는 새겨들으라고 말할 처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나 하나 때문에 종교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게 될까 두려울 뿐이다.
강의를 하다보면 온갖 개념들이 난무한다. 종교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경전, 신화, 의례, 상징, 주술 등등. 무교(巫敎), 무속(巫俗), 민속종교 등 따지기 난감한 경우도 있다. 신종교, 민족종교, 세계종교에 이르면 범주 문제를 설명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게 된다. 강의실을 나서는 내 모습도 허전하고, 남아 있는 학생들도 허탈하고.
그나마 ‘종교와 예술’이나 ‘종교와 영화’, ‘종교와 대중문화’, 이런 강의들은 친숙한 소재와 결부지어 종교를 설명하기 때문에 더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이나 그림, 영화 등 시각 매체를 사용하여 종교에 대한 상식적인 앎에 파열구를 내보겠다는 야심만만한 기획도 요즘 유행하는 것들에 대한 어지간한 감수성 없이는 실패로 끝나기 일쑤다.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와 <솔라리스>를 설명하다가 강의를 완전히 망친 기억은 지금도 쓰리다.
가장 어려울 것 같은데 정작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강의는 세계종교사와 종교 현장연구다. 내가 학부 과정에서 들었던 과목 가운데 일반종교사라는 것이 있었다. 학원에서 하듯이 암기 위주로 배웠다. 세계종교의 주요 사건, 인물, 용어들을 빼곡하게 적은 복사물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인류의 종교적 삶이 걸어온 궤적들을 종교사라는 틀 속에서 이해하려면 기초적인 지식들을 머릿속에 넣어 두는 것이 편리한 때가 많다. 문제는 그런 세부사항들을 꿰는 안목을 얻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종교사 수업에서 학생들이 역사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종교라는 문화 현상의 다채로움을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나는 종교 가르치기에서 가장 역점을 두어 고민해야 할 과목이 종교사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시도해 보고 싶다.
요즘 들어 부쩍 관심을 많이 갖게 되는 강의는 종교 현장연구 과목이다. 인류학이나 민족지학에서 현장연구 또는 현지조사를 어떻게 실시하는지 찾아보기도 했고, 실제로 학생들과 함께 답사를 다니면서 생생한 종교의 현장을 느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특별히 종교라는 특이한 문화현상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현장연구 방법론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잠긴 문 앞에 머리를 들이미는 심정으로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학생들과 함께 종교학적 현장연구의 매뉴얼을 한 번 만들어보자고 하였다.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종교 현장에 직접 가 보아야만 인간의 꿈이 서린 땅이니 살살 밟고 다니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얼마 전 통일교 청평성지에 갔을 때 경거망동을 한 적이 있었다. 주변에 있던 선생님들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문헌만 들여다보면서 종교를 공부한 책상물림의 한계였다. 예절도 몰랐고, 상대방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감각이 부족했던 것이다. 역시 종교 현장에 가야만 옷깃을 여미는 법을 배우게 되는 모양이다.
이 글을 끝내고 나면 강의를 하러 가야 한다. 오늘은 종강하는 날이다. 근처에 있는 태국 식당에서 밥 먹으며 이야기하기로 하였다. 종교 가르치기에 ‘낯설기 하기’의 항목도 포함되어 있다면, 낯선 음식을 친숙한 양 먹어 보는 것도 종교 연구에 필요하다고 눙치며 학생들을 꼬드겼다. 선생의 뒷주머니는 이럴 때 쓰라고 달려 있는 것이다.
조현범_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
논문으로 <한말 태양력과 요일주기의 도입에 관한 연구>, <디지털 니르바나>, <한국 종교학의 현재와 미래>, <선교와 번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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