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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98호-죽기 연습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6. 8. 24. 17:40

 

 

죽기 연습



 

2015.12.29

 

 

2015라는 숫자가 전면에서 후퇴하고 있다. 다른 숫자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동지(冬至)는 지나갔다. 음(陰)의 기운이 바닥을 친 이후에는 양(陽)이 기운이 커진다고 해서 동지를 새로운 해의 시작으로 삼는 이들이 있다. 이렇듯 한 해의 종말과 또 한 해의 탄생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시간의 죽음과 삶이 섞여있는 과도기이다. 아마 이런 모호함이 설날까지는 지속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여느 해처럼 동지부터 시작하여 신정과 설날을 거치면서 세 번이나 시간의 끝과 새로운 시작을 느끼게 된다. 원숭이와 새해를 연결하는 덕담이 그치면 비로소 과도기가 끝나고 일상의 시간이 돌아온 것처럼 우리는 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2015와 2016, 을미년과 병신년 사이의 “틈”은 우리에게 어중간한 자세를 취하게 한다. 우리가 시간의 “나들목”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된 셈이다. 모호한 처지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안개 속처럼 몽롱하지는 않다. “나들목”에 서서 이미 들어온 것과 앞으로 나갈 것을 모두 보고 있지만, 한 해 동안 들어와 자신에게 스쳐간 것을 떠올리느라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안개 속의 헤맴이 아니라, 지나간 것에 대한 집착이다. “잊으라는” 말, “희망을 가지라는” 말은 그런 집착을 풀기 위해 내놓은 것이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오히려 역효과이기 십상이다. 잊으라고 하면 더욱 기억이 새로워지고, 희망을 말하면 저절로 절망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마치 자려고 하면 할수록 졸음이 멀리 달아나 짜증이 나는 것과 같다. 자신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하면 잠은 포기해야 옳다. 이른바 망년회의 소동은 이런 원리에서 벌어진다. 잊으려고 하면 잊을 수 없고, 희망을 가지라면 그런 말을 하는 자가 무책임해 보인다. 박근혜의 2015년을 어떻게 잊으라는 말인가, 이런 “지옥” 상황에서 어떻게 그리 쉽게 희망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망년회의 고주망태가 되지 않고 이 시간의 “틈”을 잘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저마다 각자가 찾아야 할 일이다. 모두에게 통용되는 방법은 있을 수 없으므로....하지만 이번에 행하고 있는 내 방법을 소개하면 이렇다. 바로 요가의 자세에서 배운 것으로 “죽어보는” 것이다.

 

 

 

나는 요가의 자세가 많은 지혜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인도여행에서도 요가를 생각했다. 길가에는 혼란이 극한이지만, 그건 보는 이의 관점일 뿐, 삶과 죽음의 질서가 나름 정연하다. 요가 자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시체(屍體)처럼 누워있는 것이다. 온 몸의 긴장을 모두 풀고, 또 풀어야 한다는 의식마저 없애고 바닥에 자신을 내놓는 것이다. 그동안 땀 흘리고 숨이 가빠지는 여러 가지 어려운 자세를 취했다면, 그것은 바로 자연스럽게 이런 시체 자세를 하기 위해서이다. 순조롭게 시체 자세를 하게 되면 곧바로 잠에 빠져들기 때문에 특히 불면증이 있는 이에게 권한다. 이런 점에 보면 시체 자세는 명상 및 선 수행과 접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수행의 깨달음을 위해서 졸음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 때, 수마(睡魔)라는 말이 등장한다. 절에 물고기의 뜬 눈이 등장하는 것도 여기다. 하지만 시간의 “틈바귀”에서 시체처럼 죽어보려는 이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것이다.

 

 

 

요가의 시체 자세와 비슷한 것이 또 있다. 바로 음악을 듣는 일이다. 이 때 건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의 감각을 다 열어놓고 음악의 흐름에 스며들어야 한다. 자신의 몸과 노래의 리듬이 섞여서 이른바 “원융회통”(圓融會通)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그러려면 노래를 듣는 마음가짐이나 주변 분위기 못지않게 자신에 맞는 좋은 노래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역시 각자의 취향에 달린 문제다. 클래식이든 뽕짝이든 상관이 없다. 이번에 내가 고른 것은 카빌리(Kabyle) 족의 노래 두 곡이다.

카빌리족은 북아프리카 원주민 가운데 하나로, 지금 알제리아의 북동부 지역인 카빌리아를 중심으로 거주한다. 약 7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카빌리어 사용자 가운데,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는 150만의 이주민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프랑스에 많이 거주하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영향인데, 유명한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과 매력적인 영화배우 마리옹 꼬띠야르(Marion Cotillard)도 카빌리족의 피를 이어받고 있다.

 

 

 

“아버지가 나에게”라는 뜻의 카빌리어 제목을 가진 “아 바바 이누바”(A vava inouva)는 이디르(Idir 혹은 Yidir: 본명은 amid Ceryat, 1949-)가 1976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그의 최고 히트작이다. 이디르 혼자 부른 것과 자흐라(Zahra)라는 여자 가수와 함께 부른 것이 있는데, 뒤편이 훨씬 낫다. “아 바바 이누바”(A vava inouva)는 딸과 아버지가 서로 말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자장가로, 가사에는 겨울철 밤의 동화 같은 분위기가 잘 녹아있으므로 가사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버지 이누바, 문을 열어 주세요/오, 나의 딸 그리바야, 팔찌를 흔들렴/아버지 이누바, 전 숲속의 괴물이 무서워요/오, 나의 딸 그리바야, 나도 무섭단다.
멀리 노인이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외투 속에 파묻혀 있고/그의 아들은 앞으로 빵값을 버는 일로 걱정하고 있어요/손녀는 쉬지 않고 옷을 짜고 있고요/할머니 주위의 아이들은 옛날이야기에서 가르침을 얻지요.
눈보라가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커다란 냄비에는 찌개가 끓고 있고요/어른들은 봄을 꿈꾸기 시작했어요/달과 별이 하늘에 걸려있고/참나무 너머의 풍경.../가족이 모두 모여 옛 이야기 에 귀를 모으죠.”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겨울의 삭풍이 부는 바깥 풍경과 더불어 난로 가에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따뜻한 방안이 떠오른다. 나의 몸은 이미 노래 선율과 하나가 되었고, 마치 방안의 데워진 공기가 된 것 같이 가볍게 움직인다.

 

 

 

또 하나의 노래는 “이야기꾼”이라는 뜻을 가진 “라우이”(Raoui)다. 이 곡은 수아드 마씨(Souad Massi, 1972-)가 2001년에 발표한 솔로 데뷔 앨범에 실렸다. 수아드 마씨는 1990년대 초기 아타코르라는 정치적 록밴드의 일원으로 데뷔했는데, 정치적인 견해로 알제리에서 살해 위협을 받자 1999년에 프랑스에 피신하였다. 알제리 알지에의 가난한 집 출신인 수아드 마씨는 식민지의 변방(邊方)성에다가 계급적, 젠더적 주변부의 요소까지 더하여 몇 겹의 주변부 성격을 간직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녀의 노래에는 심상치 않은 깊이의 복합적 분위기가 맴돈다. 그녀의 노래에서 애절함과 함께 굳건한 심지(心地)의 힘이 느껴지는 것도 그 까닭일 것이다. “라우이”의 가사 내용이다.


 

“오, 이야기꾼이여,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줘요/이야기를 들려줘요/나이 든 이에 대해 말해주고 /천일야화에 대해서도 말해줘요/괴물 고훌의 딸인 룬자에 대해서도/술탄의 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줘요.
이야기를 들려주겠네/그럼 이 세상에서 멀리 떠나게 되지/이야기를 들려주겠네/우리 누구나 자신의 가슴속에 이야기를 품고 있지.
우리가 어른이라는 걸 잊고 이야기해 봐요/당신의 마음속에서 우리는 젊어요/천당과 지옥에 대해서 말해주세요/평생 날아본 적이 없는 새에 대해서도 말해주세요/이 세상의 의미를 알려주세요.
오, 이야기꾼이여, 당신이 들은 대로 말해줘요/더 하거나 빼지 말고 그대로/우리가 당신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게/이 시간을 잊을 수 있게 이야기해줘요/우리가 옛날 옛적의 시간에 머무를 수 있도록.”


 

연말연시는 시간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때이다. 이때에는 우리의 삶이 지진대에 속하게 되어 흔들거린다. 이럴 때에는 버틸 필요가 없다. 시간을 따라 같이 죽는 것이 필요하다. 상투적인 빛과 어둠의 양분법이나 생명과 죽음의 이분법을 외치지 말라. 어느 한쪽만으로는 결코 우리의 인생이 이루어질 수 없지 않은가? 양쪽이 다 필요하다. 연말연시는 우리의 상투적 습관으로부터 벗어나기 좋은 기회이다. 특히 카빌리 전통에서 끌어올린 노래 두곡은 무의식의 광대하고 연속적인 흐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죽어야 산다... 그러면 최소한 망년회 고주망태는 되지 않는다.


 

* 2015년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 따뜻한 격려와 후원을 베풀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16년에도 변함없는 성원 부탁드립니다.


 

 

장석만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
논문으로 <‘종교’를 묻는 까닭과 그 질문의 역사: 그들의 물음은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던지는가?>, <인권담론의 성격과 종교적 연관성>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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