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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불교: 전통으로의 복귀인가? “신“종교현상인가?
근대기 불교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 보다 활발히 학계에서 개진되고 있다. 우리가 위치한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서구에서의 불교수용에 따른 논의는 근대기 불교를 동아시아적 현상으로만 국한시키기 어렵게 한다. 근현대기에 우리가 겪는 경험을 불교 역시 고스란히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근대 불교 담론은 문화사영역의 한 부분으로 환원 처리되어 정작 불교 자체의 변화와 적응 과정을 미시적으로 고찰할 기회가 드물었다. 곧 사회, 문화, 정치영역의 변화에 따른 전통불교의 근대적 적응과 변용이라는 현상을 집중적으로 추구해 왔다. 그러나 불교의 사회, 문화 영역과의 상관관계나 그 속에서의 위상 못지않게 불교 자체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성을 느낀다. 이번 본 연구소 상반기 심포지엄에서는 종전의 이런 불교에 대한 접근을 재검토하며 ‘전통과의 연결과 단절’, 혹은 ‘과거의 면모를 띤 전혀 새로운 형태의 종교현상의 출현’이 오늘날 불교의 모습은 아닌가를 검토하려한다. 이 심포지엄의 전체 표제와 아이디어가 불교 현장의 원초적 소재들과는 큰 간격이 있음을 준비위원회는 깊이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 번의 학술대회로 그칠 과제가 아님도 숙지하고 있다.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닌 학자들이 각 분야에서 동참하여 각각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새로운 시안적 제안을 하려는 것이다.
송현주(이하 존칭생략)의 <근대 한국불교, 자아 정체성 모색과 ‘종파’의 성립>은 근대 불교 종단의 “탄생“이 근대적 제도의 요청과 학문적 개념 틀에 의한 정통수립의 창안임을 서술한다. 민순의의 <전환기 민간 불교경험의 양태와 유형>은 관변 역사서술에서 규정한 승직과 제도는 실제로 민간과 하층민에서 전혀 다른 불교 수용의 양태를 드러냄을 논증한다. 곧 역사기술에 나타난 불교 정통이란 하층 승직이나 하층민에게서는 주장된 적이 없고, 오히려 그들은 역승, 반승반속의 사당, 땡초로서 존재했다는 것이 불교의 현장이라고 반증한다. 조명제의 <일제시기 불교 근대화와 잡지 미디어>는 “근대불교의 정통/전통”의 허구성을 파헤치며 그것의 “재구성”을 주장한다. 근대 미디어를 통해 표출된 근대 불교 역시 전형적 재구성의 산물임을 논증한다. 이민용의 <이능화의 “백교회통(百敎會通)”: 근대적 종교론인가? 호교론인가?>는 근대기 최초의 종교론을 시도한 저술에 대해 분석한다. 이 저작은 전통적 불교학(호불론)을 주장하며, 서구종교지식체계에 대한 불교적 대응방안으로 근대적 교상판석을 제시한다고 논증한다. 최성규의<경산화파(京山畵派) 예운(禮雲) 상규(尙奎) 불화(佛畵)의 근대성 연구>는 드물게 근대적 불화의 탄생을 회화사적 입장에서 논증한다. 사찰에서 제작된 모든 불화들은 단순한 전통의 계속이 아니라 새로운 재료, 새로운 기법 등 오히려 근대회화에 앞서는 새로운 것의 창안임을 제시한다.
발표되는 논제들이 각기 전혀 다른 영역을 대표하지만 전통/정통과 근대와의 상관관계를 실증적이며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위와 같은 의도에서 본 연구소의 상반기 심포지엄에 초대하오니 동학의 관심과 동참을 제안합니다.
20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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