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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 카페 실부플레
2016.6.14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어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올해 연구주제가 한국에서 커피 수용의 역사와 변천에 대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분의 말씀. 고종이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요즘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퍼시벌 로웰이 쓴 조선 견문기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커피 이야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에 그 책에서 일본에서 쓰던 요일 명칭을 찾은 적이 있었다.
로웰은 일본을 여행하다가 1883년 조미수호통상사절단이 미국에 갈 때 일본에서부터 이들을 안내 하였다. 그 노고를 치하하려는 조선 왕실의 초청을 받아 1883년 겨울에 조선을 방문하여 몇 달간 머물렀다. 그는 1884년 1월의 어느 추운 날 고관의 초대를 받아 한강변에 있던 별장으로 유람을 갔다고 한다. 겨울 한강 풍경을 즐기면서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커피를 마셨다”는 것이다. 고종의 아관파천보다 12년 앞선 일이라고 한다.
입이 촉새 같은 나는 그보다 훨씬 앞서 1860년대에 이미 커피에 관한 이야기가 프랑스 선교사들의 서한에 나온다고 말씀드렸다. 당시 조선에서 베르뇌 주교가 홍콩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 리부아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러 종류의 물품과 더불어 커피와 설탕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을 읽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1861년 3월에는 커피 40리브르와 흑설탕 100리브르, 1861년 9월에는 커피 50리브르와 설탕 50리브르,1863년 11월에는 커피 50상자와 설탕 50상자, 1865년 12월에는 설탕과 커피 각 100리브르를 보내달라고 하였다. 1리브르(livre)라는 프랑스 단위는 500그램 또는 1파운드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100리브르라고 하면 50킬로라는 말이다. 상당한 양이다. 이 물건들이 제대로 조선에 들어왔을까? 분실되기도 했겠지만 잘 받았다는 소식을 전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마셨을까? 한 번 실험을 해보았다. 먼저 볶은 커피콩을 구해다가 물을 붓고 그냥 끓였다. 20분 정도 삶았더니 커피콩은 물러졌다. 하지만 끓인 물은 옅은 갈색을 띨 뿐 그다지 커피 맛이 나지 않았다. 이건 아냐.
이번에는 볶은 커피콩을 갈아서 뜨거운 물을 부었다. 제법 진한 갈색이고 삶았을 때보다는 맛이 진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커피 가루를 탈탈 털어 넣고 팔팔 끓였다. 거품이 올라올 때까지 끓인 뒤에 조금 식혔다. 끓이니까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보다 가루가 더 잘 가라앉았다. 맛도 더 풍부하고 커피향도 입안에 오래 감돌았다. 마지막 방법은 터키 유학생에게 들은 것이었다. 유럽에 커피를 전해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후예로서 자랑스럽게 자기네 커피 마시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래 이거 같다. 선교사들은 가마솥에 볶은 커피콩을 작은 절구에 찧어서 물을 붓고 끓인 뒤에 커피 가루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마셨을 거야.
설탕은? 커피에 타 마시려고 보내달라고 했을까? 실험은 여기까지. 끄윽. 배불러. 아이고, 오늘 잠은 다 잤다. 홀짝홀짝 맛을 보다가 커피를 세 사발이나!
선교사들이 자기네끼리만 마셨을까? 아니면 조선인 신자들에게도 맛보라며 주었을까? 최소한 선교사들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복사들은 한 번쯤 마셨을 것 같다. 왜 마셨을까? 성사여행 도중에는 평균 기상 시간이 새벽 2시 반이었으므로 잠을 쫓기 위해서? 감기에 걸렸을 때 약용으로 코냑(이것도 보내달라고 하였다)을 조금 섞어 마셨을까? 아득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왜 없었겠는가. 향수로 힘들때 시름을 달래려고?
각지의 두메산골에 살던 선교사들은 주교가 보내준 커피를 마시며 고향 프랑스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겠다. 파리 신학교 길 건너 카페에서 정담을 나누던 시절을. 그러면서 평소에는 쓸 일이 도무지 없던 모국어로 한 마디 했을 수도 있겠지. 무심코. 듣는 이는 없어도. “앵 카페, 실부플레.”
조현범_
논문으로 <한말 태양력과 요일주기의 도입에 관한 연구>, <디지털 니르바나>, <한국 종교학의 현재와 미래>, <선교와 번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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