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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의 행위주체성 개념에 따른 새로운 신화읽기

 

 

news letter No.757 2022/12/13

        

 




     우리 사회에서 마스크가 필수품이 된지 만 3년이 되어간다. 당장 마스크 사용상의 답답함보다는 폐(廢)마스크로 인해 닥쳐올 환경오염 문제를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2020년 3월, 코로나바이러스19 확진자 급증으로 마스크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면서 정부는 보건용 마스크에 대한 공적 공급제도를 시행했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마스크 구매 횟수와 수량을 제한했었는데, 이 제도가 시행되었던 137일 동안 조달청에서 무려 10억 장의 마스크를 공급했다고 한다. 그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손쉽게 다양한 마스크를 소비하고 있다. 곧 마스크에서 해방될 날이 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마스크로 인한 문제들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기후 변화의 위기,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한 전염병의 창궐 등 일련의 사태에 직면하여 그 원인으로 수렴되는 것은 휴머니즘이라는 근대신화의 자장(磁場) 안에 있는 인간이다. 최근의 지구 환경의 위기는 이러한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중심적 사유를 반성하게 하고, 인간만이 유일한 행위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통감하는 계기로 작용한 점이 있다. 이제 인간은 문제를 해결하고 관리하는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야기하는 비판적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그 대안적 시각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인도 작가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가 간파한 바와 같이 작금의 상황은 비인간의 힘이 인간 사고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암시하거나 증명하는 것일 수 있다. 그는 “미지의 존재들이 실제로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우리의 논의를 형성하는데 모종의 역할을 해왔을지 모른다. 만약 그럴 가능성이 실제로 있다면 우리는 늘 스스로가 비활성으로 보이는 사물들에 관해 ‘생각하고’ 있다고 여기는 내내 다른 독립체에 의해 ‘생각되고’ 있었던 셈이다”라고 지적하였다.1)

     최근 학계에서는 인간 중심적 시각을 탈중심화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모든 생명의 본질적 가치를 주장하는 심층생태학, 세계의 물질성과 물체의 활력에 주목하는 새로운 유물론, 비인간의 행위주체성에 주목하는 새로운 애니미즘 그리고 장소에 기반하는 유물론적 영성이라는 역설적 조합을 내세우는 철학적 애니미즘 등이 있다.2)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의 관계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애니미즘에서는 기존의 원주민 문화의 원시성을 드러내기 위해 강조되어온 영혼이나 정령에 대한 믿음이라는 개념보다는 생명의 의미를 강조한다. 또한 살아있는 존재들이 서로 관계 맺으며 공존하는 삶의 방식을 중요하게 여기며, 비인간-사람(nonhuman-pers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신화학 분야에서도 비인간 타자의 행위주체성 개념을 신화 읽기에 적용하는 사례가 있다. 조심스런 접근이지만 한국의 ‘근대적 고전’으로 평가되는 《삼국유사》의 138조항 가운데 신이성(神異性)을 갖지않는 위만조선조를 비롯한 29조항을 제외한 나머지가 이러한 분석의 범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삼국유사》에서 ‘유사(遺事)’라는 말은 《삼국사기》에 대한 ‘유사’로서, 삼국과 관련해서 남겨진 일들, 빠뜨린 일들 그리고 기록의 문헌에 언급하지 않은 것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 저술 당시에 《삼국사기》의 역사서술 기준에 맞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최근 연구자들이 소환하여 비인간의 행위주체성 개념에 따라 분석하면 그 의미가 더 풍부하게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서구 휴머니즘의 영향 아래 태동한 신화학의 관점하에서 연구자들은 《삼국유사》 이야기들 중에서 일부 기사만 선별하여 신화로 범주화하였다. 다음 기사는 신화의 범주에 들지는 않지만, 비인간의 행위주체성 개념에 따른 신화 읽기의 사례가 된다는 판단하에 옮겨 적어 본다.

 “제54대 경명왕때인 정명 5년 무인(戊寅 918년)에 사천왕사 벽화속의 개가 짖으므로, 3일 동안 불경을 강설하여 이를 물리쳤더니, 반나절이 지나서 또 짖었다. 7년 경진(庚辰, 920) 2월에는 황룡사탑의 그림자가 금모(今毛) 사지(舍知)의 집 뜰 안에 한 달 동안이나 거꾸로 서 비쳤다. 또 10월에 사천왕사 오방신의 활줄이 모두 끊어졌으며 벽화 속의 개가 뜰의 복판으로 달려나왔다가 다시 벽 속으로 들어갔다.”(기이 제2 경명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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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미타브 고시, 김홍옥역, 《대혼란의 시대-기후 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다》, 에코리브르, 2021, p.48
2) 유기쁨, 〈발 플럼우드의 철학적 애니미즘 연구: 장소에 기반한 유물론적 영성 개념을 중심으로〉, 《종교문화비평》 통권42호,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

 

 

 

 

 



 


하정현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1920-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 개념의 형성과 전개>,  <근대 단군 담론에서 신화 개념의 형성과 파생문제>,〈신화와 신이, 그리고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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