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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59호-구름과 함께 머문 절, 운주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 12. 27. 19:26

구름과 함께 머문 절, 운주사

 

 news letter No.759 2022/12/27


          
           




     애초 계획은 강진의 다산초당이었다. 2022년 한 해 동안 어딜 가 보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인 휴가 일수를 며칠이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에 급하게 남도 끝자락 강진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그곳에 내려가기 전 하룻밤 묵기로 한 운주사에 마음과 몸을 빼앗기고 말았다. 동행의 아내가 꼭 가 보고 싶은 절이라며 운주사에 템플스테이를 신청한 것이다.

 


     구름이 머무는 절, 운주사로 가는 길엔 흐린 날씨 탓인지 구름이 많았다. 예정 시간보다 늦어 미안한 마음에 급하게 운주사로 들어갔다. 그런데 템플스테이에 참석자가 나와 아내 두 명이란다. 이건 뭐지? 다행히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동안 자유롭게 안식할 수 있는 휴식형 템플스테이란다. 덕분에 우리는 천불천탑의 부처님 사랑과 더불어 일하시는 보살님의 애정을 듬뿍 받았다. 두 사람만을 위한 채식, 누룽지 조식, 동지 특식 팥죽 등 종류를 달리하며 산사의 음식을 맛보았다. 동짓날 긴 밤 뒤척거리다 예불엔 빠져도 팥죽 공양을 놓치진 않았다. 그리고 친정에 간 것인양 묵, 누룽지, 팥죽, 떡도 받아왔다.

     골짜기를 메운 부처님과도 정감을 나누었다. 절보다 부처님과 탑이 먼저 보이는 곳, 스님과 신자의 수보다 부처님과 석탑이 많은 곳, 천불천탑의 골짜기이다.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다음날 하루종일 날리며 돌 위에 자취를 남겼다. 하얀 눈은 부처님 머리를 덮고, 몸을 감싸고, 회색빛 부처님 얼굴을 백색으로 바꾸고, 차가운 돌에 온기를 더하였다. 세월에 닳아진 손가락 윤곽을 뚜렷하게, 가사의 주름을 깊게 만들었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신앙을 돌에 새겼다. 상처 나기 쉬운 몸이 못 미더워 강한 바위를 택한 것일까? 화려하지만 철 지나 시드는 꽃에 마음을 둘 수 없었는지 100세를 넘기기 어려운 인생은 돌에 의지하여 영생을 꿈꾸었다. 영원의 부처님이기에 더욱더 돌에 새겼다. 이곳 부처님의 형상은 투박하고 거칠다. 몸에 비해 얼굴이 유난히 큰 비대칭 불상이 많다. 반면 굴곡 없이 길쭉한 부처님도 서 있다.

      비바람에 노출되어 몇백 년을 지내 온 이곳 돌부처님은 조금씩 마모되어갔다. 석공의 손으로 다듬어졌지만 자연의 흐름에 맡길 수밖에 없는 노천의 석불이다. 오랜 시간에 눈과 입의 윤곽이 사라진 것도 많다. 그나마 남아있는 코의 모양을 통해 얼굴임을 알아내기도 하지만 그것마저도 보이지 않는 것은 신심이 있는 사람에게만 나타난다. 석상의 박물관은 자연사 박물관이 되어간다.

 


     그럼에도 이곳 불상에 뚜렷이 남아있는 것은 양손을 잡고있는 손의 형상이다. 항마촉지인이나 두 손을 아래위로 모은 지권인(智拳印) 수인과 같이 잘 알려진 수인도 있다. 그러나 대개 두 손을 같은 높이에서 잡고 있다. 합장의 모습 같기도 하지만 두 손을 맞잡은 공수(拱手)의 형상이다. 가사로 손을 덮어 손가락의 섬세함을 생략하였다. 부처님 얼굴에 공손한 신도의 자세라고 할까. 천상천하유아독족(天上天下唯我獨尊)의 모습과 거리가 먼 공손한 두 손의 곡선에 마음을 다잡는다. 한 몸에서 신앙의 대상과 신자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부조화, 이러한 부조화의 미학을 찾는 것이 운주사의 즐거움이다.

     이곳에서 제일 유명한 와불(臥佛)을 찾아 올라가는 길에 만나는 부처님이 있다. 널씬한 키에 얼굴의 눈, 코, 입이 희미하게 비친다. 눈은 감은 듯하고 입술에 미소를 머금은 듯 온화하면서도 초연한 모습이다. 상투를 튼 것처럼 도드라진 육계와 머리에 하얀 눈이 앉아 모자를 쓴 것 같다. 이 부처님은 ‘시위불’이라고도 하며 ‘머슴 부처’라고도 하였다. 부처님의 이름에 ‘머슴’을 덧붙인 것이 참으로 독특하다. 머슴들이 붙였을까? 존귀함과 비천함, 고상함과 투박함이 어우러져 있다.

     얼굴의 형상 중에서 도드라진 것이 코다. 서양 중세 기사의 투구처럼 코 부분이 뚜렷하여 얼굴임을 표시하였다. 도드라진 만큼 마모도 심하였다. 자연의 비바람만이 아니라 인간의 손이 우뚝 솟은 코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대개의 경우 자식을 얻기 위해 부처님 코를 매만지고 훼손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임신한 처녀가 낙태를 위해 코를 매만졌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역시 운주사의 석불은 정형화의 틀을 벗어버린다.


     운주사 석불과 석탑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수식어는 ‘미완의 불사(佛事)’이다. 운주사를 상징하는 와불은 나지막한 산 정상에 누워있다. 널직한 바위에 좌상과 입상의 두 부처님을 조각한 후 암반에서 불상을 떼어내는 작업을 마치지 못하여 지금처럼 누워있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천불천탑의 많은 돌이 왜,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니 미완의 의미 속에 갇혀있다. 때론 이러한 불완전함에 우리는 공감을 느낀다. 내 삶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끝날 것 같고, 내가 한 공부가 변두리의 부질없는 메아리로 외치다가 사라질 것 같던 두려움이 이 낯선 골짜기에서 안식을 처한다. 미완의 불사가 언제부터인가 일어나길 기대하는 염원의 불사로 바뀐 것처럼 내 미완의 꿈도 완성의 그 날을 기대한다. 모든 것 다 사라지더라도 꼭 잡은 손은 놓치 않으리라. 2022년 끝자락에 핀 온기를 기억하며 내일을 맞이한다.



참고문헌: 이태호, 천득염, 황호균 글/유남해, 황호균 사진, 『운주사』(빛깔있는 책들 157), 대원사, 1994.

 

 

 

 

 

 

 



 

 

 

 

 


이욱_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주요 저서로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조선왕실의 제향 공간 –정제와 속제의 변용>>, <<조선시대 국왕의 죽음과 상장례 -애통・존숭・기억의 의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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