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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벌레 소리 혹은 풍요로움의 방문자

 

news letter No.815 2024/1/30

 

바코드를 찍어보세요. 음악이 흐릅니다.

 

 

 

어떤 노래나 선율이 하루 종일 사라지지 않고 귓가에 맴도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은 알아채지 못한 채 저절로 진행되기 때문에 내 뜻과는 상관이 없다. 이처럼 어떤 곡조가 계속 머리에 맴도는 것을 독일어에서는 오어부엄’(Ohrwurm)이라고 하고 영어에서는 이어웜’(Earworm)이라고 하는데, 모두 조그만 벌레가 귓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여겨서 만든 말이다. ‘귀벌레라는 말에는 약간의 귀찮음과 불편함의 느낌이 묻어 있다. 그래서인지 귓가를 맴도는 증상을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주는 논문이나 웹사이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70년대 새벽부터 밤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쉴새 없이 울려 퍼졌던 새마을 노래나 군대의 행진가가 사라지지 않고, 속수무책으로 귀와 입에 달라붙어 끔찍해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짜증은 금방 공감을 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전체주의의 병영을 탈출한 지금의 나는 다행스럽게도 지긋지긋한 곡조가 나를 접수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텔레비전 광고도 마찬가지다. 팔짝대는 노래가 내 안에 달라붙어 기생하려는 찰나, 재빨리 차단해버리고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다.

 

하지만 아침에 우연히 들었던 노래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선율이 나도 모르게 귓가를 떠나지 않는 경우라면 어찌할 방도가 없다. 특히 노래가 끝나지 않았는데, 더 들을 수 없게 된 때에 종종 이런 일이 찾아온다. 마치 잘린 부분을 채워서 띄엄띄엄 계속해서 돌아가는 레코드판을 심어놓은 것과도 같다. 하루 내내 노래 한 소절이 반복될 때도 있고, 통짜배기 노래가 그럴 때도 있다. 머무는 기간 동안 그 선율은 나를 휘감아서 두른 것 같지만, 성가시다거나 귀찮다는 느낌은 없다. 새마을 노래나 군가가 나를 흡반처럼 빨아들여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면, 하루 내내 맴도는 곡조는 내 주위에 성기고 부드러운 공기층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보통 그런 곡조의 방문은 하루가 지나면 사라지곤 한다. 하지만 며칠씩 머물다가 가는 것도 있고, 계절의 단위로 몇 번씩 찾아오는 것도 있다. 이제부터 소개할 노래가 바로 겨울철 요맘때 움직여 나를 방문하는 자이다. 그 매혹적인 선율은 다음의 사이트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그와 함께 다가오는 가사는 이렇다.

 

(https://www.youtube.com/watch?v=vXhBx_phjWM)

(https://www.youtube.com/watch?v=KSCMLdGK2B0)

 

 

Upon a darkened night

어두워진 밤

The flame of love was burning in my breast

사랑의 불꽃이 내 가슴속에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And by a lantern bright

호롱불을 들고

I fled my house while all in quiet rest

모두가 조용히 쉬는 동안, 난 집을 떠났습니다.

 

Shrouded by the night

밤은 수의(壽衣)처럼 나를 감싸주었고

And by the secret stair I quickly fled

비밀 계단으로 난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The veil concealed my eyes

베일이 내 눈을 가려주었고

While all within lay quiet as the dead

집안의 모든 이들은 죽은 것처럼 조용히 누워있었습니다.

 

Oh night thou was my guide

, 밤이여, 그대는 나의 안내자였습니다

Oh night more loving than the rising sun

오 밤이여, 떠오르는 해보다 더 사랑스러운 밤이여

Oh night that joined the lover

오 밤이여, 사랑하는 이를

To the beloved one

사랑받는 이에게 데려다주는 밤이여

Transforming each of them into the other

그들을 저마다 다른 이로 바꿔주는 밤이여

 

Upon that misty night

그 안개 낀 밤에

in secrecy, beyond such mortal sight

아무도 모르게,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을 넘어서

Without a guide or light

안내자나 불빛도 없이

 

than that which burned so deeply in my heart

오직 그토록 깊이 내 마음속에서 타오르던 것

That fire t’was led me on

그 불이 나를 이끌고

and shone more bright than of the midday sun

한낮의 태양보다 더 밝게 비추었습니다

To where he waited still

그가 여전히 기다리고 있던 그곳에

it was a place where no one else could come

다른 이는 올 수 없는 그곳에

 

Oh night thou was my guide

of night more loving than the rising sun

Oh night that joined the lover

to the beloved one

transforming each of them into the other

오 밤이여, 그대는 나의 안내자였습니다

오 밤이여, 떠오르는 해보다 더 사랑스러운 밤이여

오 밤이여, 사랑하는 이를

사랑받는 이에게 데려다주는 밤이여

그들을 저마다 다른 이로 바꿔주는 밤이여

 

Within my pounding heart

나의 두근거리는 심장 안에

Which kept itself entirely for him

그를 위해 모든 것을 간직해 두었고

He fell into his sleep

그는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Beneath the cedars all my love I gave

삼나무 밑에서, 내가 준 나의 모든 사랑으로.

 

From o’er the fortress walls

성벽(城壁) 위로 불어온 바람이

The wind would brush his hair against his brow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는

And with its smoothest hand

한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Caressed my every sense it would allow

나의 모든 감각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Oh night thou was my guide

of night more loving than the rising sun

Oh night that joined the lover

to the beloved one

transforming each of them into the other

오 밤이여, 그대는 나의 안내자였습니다

오 밤이여, 떠오르는 해보다 더 사랑스러운 밤이여

오 밤이여, 사랑하는 이를

사랑받는 이에게 데려다주는 밤이여

그들을 저마다 다른 이로 바꿔주는 밤이여

 

I lost myself to him

난 그에게 넋을 잃고

And laid my face upon my lovers breast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습니다.

And care and grief grew dim

그러자 걱정과 슬픔이 점점 희미해졌지요

As the morning’s mist became the light

마치 아침 안개가 따뜻한 빛이 되는 것 같았어요.

 

There they dimmed amongst the lilies fair

정말 그랬답니다. 백합꽃이 만발한 곳에서 걱정과 슬픔이 점점 희미하게 사라져 갔답니다.

There they dimmed amongst the lilies fair

백합꽃이 만발한 곳에서 걱정과 슬픔이 점점 희미하게 사라져 갔습니다.

There they dimmed amongst the lilies fair

백합꽃이 만발한 곳에서 걱정과 슬픔이 점점 희미하게 사라져 갔습니다.

 

이 노래는 캐나다의 음악가 로리나 맥커니트(Loreena McKennitt, 1957-)가 만들었는데, 1994년에 나온 그의 다섯 번째 앨범, 가면과 거울(The Mask and Mirror)에 실려 있다. 가사는 16세기 스페인의 수도사, 십자가의 성 요한(St. John of the Cross, 1542-1591)이 쓴 시 영혼의 어두운 밤(Dark Night of the Soul)을 바탕으로 하였고, 노래 제목도 이에 따라 정해졌다. 영어로 번역된 십자가 성 요한의 시는 이렇다.

 

Dark Night of the Soul 1)

 

On a dark night,

Kindled in love with yearnings

oh, happy chance!

I went forth without being observed,

My house being now at rest.

 

In darkness and secure,

By the secret ladder, disguised

oh, happy chance!

In darkness and in concealment,

My house being now at rest.

 

In the happy night,

In secret, when none saw me,

Nor I beheld aught,

Without light or guide, save that which burned in my heart.

 

This light guided me

More surely than the light of noonday

To the place where he (well I knew who!) was awaiting me

A place where none appeared.

 

Oh, night that guided me,

Oh, night more lovely than the dawn,

Oh, night that joined Beloved with lover,

Lover transformed in the Beloved!

 

Upon my flowery breast,

Kept wholly for himself alone,

There he stayed sleeping, and I caressed him,

And the fanning of the cedars made a breeze.

 

The breeze blew from the turret

As I parted his locks;

With his gentle hand he wounded my neck

And caused all my senses to be suspended.

 

I remained, lost in oblivion;

My face I reclined on the Beloved.

All ceased and I abandoned myself,

Leaving my cares forgotten among the lilies.

 

두 가지 자료의 내용을 살펴보면, 로리나 맥커니트의 가사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시가 지닌 분위기를 잘 옮기려고 애썼음을 알 수 있고,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가질 수 있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사나 시의 내용을 보기 전에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제목이 독자에게 주는 것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영혼, 혹독한 어둠의 시련을 극복해야 할 영혼의 모습이다. 하지만 내용은 그와 정반대로 우리를 부드럽고 감미롭게 품어주고, 어루만져 주는 밤의 시간이고, 그로부터 우리의 영혼이 위로를 받는 모습이다. 하지만 낮과 밤, 그리고 빛과 어둠의 이분법적 대결과 제로-섬 관계에 사로잡힌 이들은 어둠을 기필코 물리쳐야 할 적()으로 보면서 칼날을 벼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십자가 성 요한의 시에 관한 부지기수의 해석도 밤의 어둠을 무찌르기에 여념이 없다. 이들은 과연 로리나 맥커니트의 밤의 찬가를 들으면서도 상대의 경동맥(頸動脈)을 향한 증오의 살의(殺意)를 계속 불태울 수 있을 것인가!

 

요즘은 황진이(黃眞伊)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 저절로 입가에 맴도는 계절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얼온님 오신 날 밤이거든 굽이굽이 펴리라.” 따뜻하게 정든 임과 황진이를 덮어주었던 이불 같은 겨울밤과 로리나 맥커니트가 노래한 어두운 밤은 서로 잘 어울린다. 이 계절에 그의 노래가 찾아와 귓속에 맴도는 것은 황진이의 시조와 함께 겨울밤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축복의 방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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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t. John of the Cross, Dark Night of the Soul, translated by Edgar Allison Peers, Mineola, New York: Dover Publications, 2003. 이 시의 다른 번역은 다음을 볼 것.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157984/the-dark-night-of-the-soul

 

St. John of the Cross. The Dark Night of the Soul, Translated by David Lewis. London: Thomas Baker, 1908.

 

한국어 번역본은 두 가지가 있다. 십자가의 성 요한, 어둔 밤, 최민순 역, 서울: 바오로딸, 1993. 십자가의 성 요한, 어둔 밤, 방효익 역, 서울: 기쁜소식, 2005.

 

 

 

 

 

 

 

 

 

장석만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한국근대종교란 무엇인가?》, 《한국 종교학 - 성찰과 전망》(공저)의 책과 <두 가지 몸의 늙음: 한국 근대 노년 관점의 변화>, <식민지 조선에서 여자가 운다>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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