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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에 관한 단상
: 라이트룸 서울의 데이비드 호크니 전과 더 문워커스 전을 관람하고
news letter No.842 2024/8/6
올해 들어 ‘라이트룸 서울’이라는 전시관을 두 번 다녀왔다. 라이트룸(Lightroom)은 “몰입형 예술 체험”과 “아티스트가 이끄는 스토리텔링”을 표방하는 대형 전시관으로, 런던과 서울 두 곳에 있다. (다른 나라에도 더 생길 것으로 전망하지만, 일단 현재까지는 두 곳이다). 런던관은 작년 6월에 개관하였고, 서울관은 한 국내 전시기획사의 독점 라이센스 계약으로 작년 11월에 개관하였다. 두 전시관의 입지는 사뭇 달라서, 런던관은 런던 시내 중심부 킹스크로스 구역에 있고 (킹스크로스역에서 도보 8분), 서울관은 서울 동쪽 끝 한강변 산기슭에 있다 (천호역에서 셔틀버스 10분, 고덕역에서 평지와 산길 도보 30분). 라이센스 관계인 만큼, 전시실 규모 (너비 18.5m, 깊이 26m, 높이 12m), 대형 미디어아트를 위한 빔 프로젝터와 음향 등의 첨단 장비, 사방 벽과 바닥까지 5개 면을 꽉 채워 활용하는 전시-상영 방식 (천장은 사용되지 않는다), 바닥에 듬성듬성 큐브를 놓고 뒤편 한쪽 구석에 계단형 스탠드를 설치한 좌석 구조 등 시설 전반은 물론 전시콘텐츠의 내용까지 거의 전체가 동일하다. (라이트룸 서울 설립자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앞으로는 런던관 전시콘텐츠를 그대로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국내외 현역 작가들의 대형 설치미술과 미디어아트 창작 전시도 기획할 예정이라고 한다.)
라이트룸 서울을 처음 찾은 것은 지난겨울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크게 더 가까이’(David Hockney: Bigger and Closer [not smaller and further away], 2023.11.1.~2024.5.31.)라는 전시회 때였다. 호크니를 주제로 한 이 미디어아트 전시회는 새로 세워진 몰입형 콘텐츠 전용 대형 전시관의 데뷔 기획전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었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현시대의 가장 중요한 세계적 작가 중 한 사람이자 여전히 왕성히 활동 중인 현역 원로 작가 호크니가 (그는 1937년 영국 요크셔 태생이다.) 이 미디어아트 전시의 기획에 직접 참여하고 낭독까지 직접 녹음했다는 점에서 특히 큰 관심을 받았다.
이 전시는 새롭게 작업한 미디어아트 창작물이 아니라 기존 작품과 개인 자료를 엮은 영상 편집물 성격이 크다. 따라서 비평가 중에는 지루한 다큐멘터리 같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다. (일부 영국 언론에서 이런 비평이 보인다. 국내에서는 언론의 소개 기사와 개인 블로그의 소개나 소감 포스팅만 보일 뿐, 전시-공연 예술계의 본격 비평은 아직 못 보았다.) 그래도, 친숙한 수영장 시리즈를 비롯해 풍경화, 사진 콜라주, 무대미술, 스테인드글라스 등 잘 몰랐던 것들까지 호크니의 다양한 작품을 다채로운 사운드와 함께 사방 가득 거대한 화면으로 접하고, 호크니의 현재 육성은 물론 과거 인터뷰 녹음과 작업 현장 촬영 영상까지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일말의 아쉬움을 상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상적인 경험이기는 했다.
얼마 전 반년 만에 또다시 라이트룸 서울을 찾았다. ‘더 문워커스: 톰 행크스와 함께하는 여정’(The Moonwalkers: A Journey with Tom Hanks, 2024.6.29.~9.30)이라는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 전시는 아폴로 유인 달 착륙 탐사를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 상영으로서, 미국 NASA의 아폴로 프로젝트와 관련된 다양한 사진, 영상, 녹음, 문서 자료를 엮어서 만든 것이다. 예술 작품이 아닌 과학영상물이라 해야 하겠지만, 그 이미지의 아름다움과 압도감 때문에 굳이 예술과 과학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내레이션은 아폴로 13호의 탐사 포기와 귀환을 다룬 실화 소재 영화의 주연배우이기도 했고, 실제 우주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진 톰 행크스가 맡았다. (아폴로 13호는 1970년 4월에 출발한 세 번째 유인 달 착륙 탐사선으로, 5일째 되던 날 기기 결함으로 탐사도 포기하고 귀환도 힘들어진 상황에서 무사히 귀환하는 데 극적으로 성공했다. 아폴로 13호는 아폴로 11호부터 17호까지 달 착륙 탐사선 중 유일하게 미션에 실패했지만, 귀환 성공 덕분에 아폴로 11호 못지않게 유명한 탐사선이 되었다.)
이 전시는 런던관에서 작년 12월 초부터 진행되기 시작했기에 (2023.12.6.~2024.10.13)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서울관에서도 지난 6월 말에 전시회가 시작되었고 마침 딱 종강도 한 참이었지만, 광역버스, 지하철, 셔틀버스를 갈아타면서 가는 데만 거의 3시간이 걸려 하루를 꼬박 바쳐야 하는 일정이기에 엄두를 못 내다가, 성적 입력을 마치고 나서 비로소 관람 길에 오를 수 있었다. 호크니 전 때는 상영 시간대와 상관없는 자유 입장 방식이라 자리가 뒤쪽밖에 없어서 스탠드 앞 땅바닥에 앉아 관람했지만, 이번에는 시간대별 대기 입장 방식이고 마침 대기 줄 앞쪽에 섰던 터라 바닥 중앙의 큐브 좌석에 앉아 관람했다.
상영이 시작되면 달에 관한 과거 동서양의 신화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그림들이 지나간다. 이어서 인류의 두 번째 유인 달 탐사 기획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우주비행사 4명의 모습과 달 탐사에 관한 기대와 각오를 담은 육성 인터뷰가 소개된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은 2017년 말에 시작되었으며, 2025년 달 착륙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NASA]이 주도하고, 유럽[ESA], 캐나다[CSA], 일본[JAXA]이 주요 협력국으로 참여하며, 한국 등 30여 개 나라가 협약 협력국으로 참여하는 국제적 프로젝트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최초 달 착륙 이후 1972년 아폴로 17호의 여섯 번째 달 착륙을 끝으로 유인 달 탐사가 종료되었으니, 이번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달 착륙 탐사는 57년 만의 일이자 인류의 일곱 번째 달 착륙이 될 예정이다. 우주비행사 최종 후보는 백인 남성 2명과 여성 1명, 흑인 남성 1명 등 4명이 선발되어 있다.)
이어서 케네디 대통령의 유명한 유인 달 탐사 공표 연설 영상이 나오고, 아폴로 11호의 제작 과정, 카운트다운과 이륙, 구름 같은 현장 참관 인파의 탄성, 긴장감 속에 분주히 돌아가는 관제센터, 전 세계로 송출되는 텔레비전 방송, 달을 향한 접근과 도착, 착륙선 분리와 착륙, 닐 암스트롱의 인류 최초 달 표면 신발 자국, 탐사 임무 종료 후의 착륙선 이륙과 사령선 도킹, 지구를 향한 출발과 귀환 등 전체 탐사 과정의 다양한 사진과 영상이 이어진다. 이어서 후속 아폴로 탐사선들의 이륙과 비행 모습, 아폴로 15호부터 등장한 월면차들의 활약, 다양한 행동과 실험들, 달 표면에 놓인 한 우주비행사의 가족사진, 그동안 축적된 달 전체, 세부, 지질구조의 정밀한 이미지들, 월석의 현미경 이미지 등 무수한 사진과 영상과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워낙 시간이 금세 지나서 50분이 매우 짧게 느껴진다. 그런데 호크니 전 때보다 기대가 더 컸던 탓인지, 아쉬움과 감동 사이의 틈새도 조금은 더 큰 것 같다. 세간에는 가족용 멀티미디어 콘텐츠라거나 미래의 가상 수학여행의 시험판이라고 혹평하는 이들도 있다. (역시 일부 영국 언론에서 이런 비평을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양한 자료 사진과 영상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한 듯한 느낌 때문인지, 또는 사방을 둘러보기 위해서나, 높이 있는 이미지를 보기 위해서나, 천장 모서리에서 높이 흘러가는 자막을 보기 위해서 내내 고개를 돌리고 젖히고 하느라 목이 뻐근했던 때문인지, 관람이 끝난 뒤 기억에 남아 있는 이미지가 별로 없는 느낌이다. 특히, 아폴로 11호의 웅장한 이륙 장면에서 기획자들은 이미지와 사운드로 강렬한 압도감을 주고 싶었을 것 같은데, 아이맥스 영화관 같은 압도적 영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륙 장면이 주는 압도감의 강도가 좀 약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벅차도록 압도적인 순간들도 더러 있었다. 하나는 전시관 바닥과 사방 벽면을 거대하게 가득 채운 달 위의 전경이다. 마치 내가 지금 달 표면 위에 두 발로 딛고 서서 사방을 둘러보는 듯 달의 평원과 언덕이 거대한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깊고 거대한 크레이터의 어둠이 나를 집어삼키듯 응시한다. 아득한 지평선 언덕 너머로 저 멀리 우리의 고향 지구가 연약하면서도 선명한 모습으로 투명하고 파랗게 빛난다. 다른 하나는 월석 결정의 경이로운 현미경 이미지다. 45억 년 전 원시행성 테이아가 지구와 충돌할 때 생긴 파편들이 모여서 생겨난 달은, 이후 무수한 운석 충돌을 겪고, 표면의 대기와 물이 모두 우주로 날아가 버린 뒤 무려 35억 년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적막하고 고요하게 본래 상태를 고스란히 간직해왔다. 월석 결정 현미경 이미지의 현란하고 영롱한 색채와 광채 그리고 거기에 담긴 장구한 시간의 깊이는 형언하기 힘든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이런 벅차고 감동적인 순간들이 많거나 길지는 않지만, 그 드물고 짧은 몇몇 순간들만으로도 비싼 관람료가 조금도 아깝지 않다.
오늘날 몰입형 전시와 상영은 점점 더 시각문화의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 영화는 OTT용, 일반상영관용, 특수상영관용으로 관람 행태가 뚜렷이 다변화되는 가운데, IMAX, 4DX(3D에 더하여 좌석 진동과 간혹 바람, 물, 냄새까지 다양한 실감 장치를 활용), ScreenX(전방 스크린 외에 좌우 벽까지 화면으로 사용) 같은 몰입형 특수상영관의 매출이 크게 늘고 있다. (코로나 이후에도 영화관 관객 수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지만 매출액은 많이 회복되었는데, 이는 주로 비싼 특수상영관 관람 비중이 늘어난 덕분이다.)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영상 콘텐츠에서는 3D, 360°, VR, AR 등의 몰입형 특수영상들이 점점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미술관과 박물관 등의 전시 시설들에서도 대형화면, 특수영상, 미디어아트, 상호작용 인터페이스를 활용한 몰입형 전시나 체험형 전시가 늘어나는 추세다. 게다가 이제는 생성형 AI까지 가세해 영상 콘텐츠 제작이 폭증하고 이미지의 진짜-가짜 구분이 더 모호해지면서 몰입형 콘텐츠 시대로의 전환이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이런 몰입형 콘텐츠의 시대는 종교학도에게 어떤 숙제를 안겨줄까. 고맙게도 우리에게는 몰입 경험과 상태 변화를 설명하는 많은 도구가 있다. 고전적으로는 아르놀트 반 헤넵의 리미널리티 개념도 있고, 이를 세속적 사회와 문화 영역으로까지 확장 적용한 빅터 터너의 리미노이드 개념도 있다. 또 좀 더 최근의 도구로는 미하일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 개념도 있다. 이미지와 관련해서는 복제된 이미지와 동영상의 시대를 일찍이 예견했던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도 있고, 실제와 가상의 붕괴하는 경계를 파고들 수 있게 해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개념도 있다. 더 있다. 그야말로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 이미지가 우리를 더 자주 또 더 강하게 몰입 경험 속으로 몰아넣게 될 시대를 제대로 읽어내려면 질 들뢰즈도 읽고, 자크 라캉도 읽고, 자크 랑시에르도 읽고, 조르주 디디-위베르만도 읽어야 한다. 물론 이는 토대일 뿐이다. 종교적 몰입의 기회가 점점 더 드물어지고 약해져 가는 이 시대를 읽어내려면 (과연 약해졌을까 하는 세속화 논쟁은 일단 접어두겠다), 아니, 종교적이건 세속적이건 몰입과 변화를 특별하고 강렬한 무엇으로 여기는 생각 자체가 과연 타당한지, 그런 특별함이나 강렬함은 어쩌면 우리의 학문적 상상력이 가공했거나 과장한 것은 아닌지, 이런 의심을 풀어내려면 (짐작하시다시피, 방금 한 말은 조너선 Z. 스미스에 대한 오마주다), 이 모든 공부를 넘나들고 뒤섞으며 넘어서야 한다. 물론, 다양한 현상을 관찰하고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부지런히 살피고 다녀야 하는 건 기본이다. 공부할 거리, 경험할 거리는 넘쳐나는데, 나는 너무 바쁘거나 너무 게으르다. 일단은, 조금은 덜 바빠지고 조금은 더 부지런해지자고 다짐부터 해본다.
김윤성
한신대 디지털영상문화콘텐츠학전공 교수
공저로 <종교전쟁: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 역서로 <신화 이론화하기>, 논문으로 <종교학과 문화비평의 관계에 대한 성찰과 전망>, <브루스 링컨의 방법 테제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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