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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843호-헝가리 가톨릭교회의 어제와 오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4. 8. 13. 18:47

헝가리 가톨릭교회의 어제와 오늘

 

 

 news letter No.843 2024/8/13

 

 

 

헝가리의 말썽 많은 수상 오르반 빅토르는 20219월 헝가리를 방문한 프란체스코 교황과의 만남에서 기독교 국가인 헝가리가 사라지지 않게 해달라고 교황에게 청했다. 헝가리가 시리아 난민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 등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헝가리의 입장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신교 신자인 오르반 수상의 이러한 언급은 헝가리에서 가톨릭(기독교)이 갖는 위상을 잘 보여준다. 가톨릭은 헝가리의 국가적 종교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헝가리는 유럽에서 독특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민족의 기원은 우랄산맥 근처의 아시아 지역이다. 스스로를 마자르족이라고 부르는 헝가리 민족은 이곳으로부터 수 세기에 걸쳐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며 오늘날 헝가리가 위치한 중앙 유럽에 정착하게 된다. 이들이 지나온 거리는 수천 킬로미터에 이른다. 따라서 헝가리(마자르족)인이 이동한 도상에 존재하던 언어, 문화, 관습이 헝가리인의 삶 속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따라서 헝가리인은 자신들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민족이며, 그에 따라 자신들의 이동 경로 상에 존재하던 여러 민족의 언어, 문화, 그리고 종교적 관습 -샤머니즘, 이슬람,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등- 이 혼합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힘주어 언급하곤 한다.

 

서기 896년 마자르족이 카르파티아 분지에 정착하여 자신의 나라를 세웠을 때 이들은 샤머니즘을 신봉하고 있었다. 당연히 가톨릭은 헝가리인에게 있어서 이방의 종교였다. 그러나 유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유럽의 주() 종교인 가톨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성 이슈트반 왕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10세기 말 가톨릭을 국교로 받아들이고, 왕 자신은 성인의 품에 오른다. 이때부터 헝가리의 가톨릭교회는 급격히 성장하여, 중세에는 12개의 교구를 가진 유럽의 주요 가톨릭 국가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때 독일 지역에서 선교차 헝가리에 진출한 베네딕토 수도회가 헝가리 가톨릭교회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후 가톨릭이 정착한 13세기 중반(1241~1242)에 동쪽으로부터 침공해 들어온 몽골(타타르)의 침략을 막아내어 유럽의 기독교 수호자라는 명예로운 칭송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541년 오스만 투르크에게 헝가리와 부다가 점령을 당하여, 이후 약 150년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이때 가톨릭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수많은 수도원과 교회가 파괴되었거나, 이슬람의 모스크로 바뀌었다. 이러는 와중에서도 오스만의 통치에서 벗어나 있던 헝가리 서부 지역은 가톨릭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고, 특이하게도 헝가리 왕이 통치하던 동부 지역은 유럽의 가톨릭으로부터 핍박받던 칼빈파, 루터파 신자들이 이주해 정착하게 되었다. 물론 합스부르크 가문이 통치하던 헝가리 서부 지역은 오스트리아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견고한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이후 가톨릭교회는 다른 유럽의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헝가리인의 삶과 신앙에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중세와 근대를 차치하고라도 현대 헝가리의 중요한 사건 중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톨릭교회의 역할과 간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부정적인 측면의 대표적인 사례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전간기 시기의 유대인 박해, 극단주의와 결합한 종교 민족주의의 횡행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전간기에 헝가리의 가톨릭교회는 프로하스커 주교의 열정적인 지휘하에 유대인 탄압의 선봉에 서, 극단적 민족주의, 파시스트와의 협업을 통한 신정국가의 수립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는 헝가리 가톨릭교회사의 역사적 멍에이다. 그러나 1949년부터 헝가리가 공산주의 치하로 들어가면서 이러한 질곡은 수면 아래로 잠기게 하였다. 1949년부터 40여 년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시기에 헝가리의 가톨릭교회는 주변의 동유럽 국가들처럼 침체기를 겪었다.

 

헝가리 현대사의 비극인 1956반소반공혁명시기에 가톨릭교회가 보여준 모습은 오늘날의 헝가리 가톨릭교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헝가리 가톨릭교회는 19561023일 부다페스트의 젊은 대학생들의 궐기로 시작된 반소반공혁명에서 헝가리 민중의 편에서 헝가리 민중과 함께하는 희생자적 태도를 보였다. 1956114일 탱크를 앞세운 소련군에 의해 헝가리 혁명이 유혈이 낭자한 채 진압되던 바로 그날 헝가리 가톨릭의 수장인 민젠티 요제프 추기경이 보여준 태도는 이후 헝가리 공산당 정부의 폭정을 완화시키는 주요 기제로 작동하였다. 민젠티 추기경은 서방으로 탈출하라는 교황청의 명령도 거부한 채 부다페스트 주재 미국대사관으로 들어가 헝가리를 떠나지 않고 1971년까지 15년간 헝가리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추기경은 부다페스트의 미국대사관에서 기거하며, 편지와 단파 방송을 통하여 공산 치하의 헝가리인들에게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러한 눈엣가시 같은 민젠티 추기경의 활동이 헝가리 공산당의 교회 탄압을 누그러트린 측면이 있다. 따라서 1989년 체제 전환 이후 조직을 정비한 헝가리의 가톨릭교회가 최우선적인 과제로 민젠티 추기경의 시성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헝가리의 가톨릭교회는 1989년 헝가리의 정치적 체제 전환 즉,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을 통하여 과거 공산주의 시절 공산당에게 압수당한 재산과 시설(특히 교회가 운영하던 교육기관) 등을 되돌려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금 헝가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기능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공산주의 치하에서 교회를 떠났던 헝가리의 신자들이 다시 교회로 되돌아오고 있는 모습은 헝가리 가톨릭교회의 앞날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특히 사제나 수도자를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끊이지 않는 점이 헝가리 가톨릭교회의 희망이다.

 

현재 헝가리 정부는 가톨릭교회에 우호적이다. 전통적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헝가리 지식사회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헝가리 교회는 헝가리 정부와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헝가리에서 반이민 정서, 반이슬람 정서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가톨릭교회가 이에 편승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부다페스트 교외에 위치한 가톨릭 대학이 부다페스트 시내 중심부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헝가리 정부가 적극 협력하여 서울의 종로나 명동쯤에 해당하는 시내 중심부에 거대한 부지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준 점이 이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이 최근 헝가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적 경향에 가톨릭교회가 일부 동조하고, 옹호하는 자세를 보이는 현상과 맞물려 우려를 자아내는 부분이다. 특히 시리아 난민 사태 등으로 촉발된 반 이슬람 정서가 가톨릭 성향이 강한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헝가리에서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뿌리 깊은 불편함이 있다. 오스만 제국 시대 가톨릭교회에 대한 오스만의 가혹한 통치 방식을 기억하고 있는 헝가리에서 반이슬람, 반이민 정서는 정치적 이슈와 맞물리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종교의 정치적 이용은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교묘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AI가 세상을 바꾸는 이 시점에서 종교와 정치의 결합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식상하고 지루하지만, 그러한 현상이 그만큼 일상적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헝가리 수상 오르반 빅토르는 최근 유럽의 정치판에서 극우주의와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며, 러시아의 푸틴과 튀르키예의 에르도안의 친구임을 자처하고 있다. 이런 성향을 보이는 헝가리의 현 정부가 가족민족의 메타포를 내세우는 포퓰리즘적 정치 행태에 소위 가톨릭교회의 역할과 소명을 중요한 화두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간기 유대인을 탄압하던 가톨릭교회와 기시감을 느끼는 것이 헝가리 현대사를 전공하는 필자의 과도한 우려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지영_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논문으로 〈미국과 영국의 트란실바니아 문제 해결 방안: 1941-1947〉, 〈헝가리의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기억 논쟁〉, 〈헝가리 백과사전에 나타난 한국에 대한 서술: 1833-1930〉등이 있고, 저서로 《메타모포시스의 현장: 종교, 전력망, 헝가리》(공저), 《헝가리 현대사의 변곡점들: 역사의 메타모포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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