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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는 언제 시작되었나?
news letter No.845 2024/8/27
흔히 ‘도교’라고 하면 ‘신선’이나 ‘불로장생’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도교의 시작은 중국에서 이런 관념이나 현상이 출현한 시기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아마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학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논문은 안나 자이델(Anna Seidel, 1938~1991)의 「한대에서의 노자의 신격화(La divinisation de Lao-tseu dans le taoïsme des Han)」일 것이다.
1967년에 나온 이 논문은 이듬해에 일본어로도 번역되었는데(『道敎硏究(第3冊)』),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한나라(기원전 2세기~기원후 2세기) 때에 노자가 신격화되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노자’와 ‘도’가 일치되어, 한편으로는 만물을 생성하는 조물주와 같은 존재가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습을 다양하게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상의 주장에 대한 문헌적 근거로 자이델이 제시한 것은 『노자명』이나 『노자성모비』 또는 『노자변화경』이나 『노자상이주』이다. 가령 『노자성모비』에는 “노자는 도(道)이다.”라는 말이 나오고, 『노자상이주』에는 “[본문에서 말하는] ‘나(=노자)’는 도(道)를 가리킨다”는 주석이 나오는데, 이것은 노자와 도가 일치되었음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자이델과 같은 견해는 이미 그녀의 스승인 막스 칼텐마르크가 1965년에 쓴 『노자와 도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후한 시대에 접어들어서 노자는 진정한 신이 되었다. 165년에 (…) 노자에 대한 제사에서 함께 만들어진 「노자명(老子銘)」은 당시 이미 도교 신자들에게는 노자가 원초적인 혼돈으로서 도를 발현하는 신(神)인 동시에 삼청(三淸) - 해와 달과 별 – 과 함께 영원히 존재한다고 신앙되는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 막스 칼텐마르크, 『노자와 도교』, 장원철 옮김, 까치, 1993, 204쪽.
이상이 이른바 도교의 시작에 관한 통설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2000년대에 들어서 이러한 통설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연구가 중국에서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수도사범대학 역사학과의 리우이(劉屹, 1972~) 교수가 쓴 『경천과 숭도(敬天與崇道)』이다.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방대한 연구서는, 간단히 말하면 한대에는 아직 ‘천’의 숭배(敬天)가 지배적이어서 ‘도’의 숭배(崇道)는 출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이델이 제시한 도교 문헌들은 한대에 성립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 논문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도교의 시작은 적어도 한대 이후로 늦춰져야 한다는 말이 된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면, 리우씨에는 『노자성모비』나 『노자변화경』의 성립 연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총괄하면 『성모비(聖母碑)』에 나오는 “노자는 도이다(老子者道也)”라는 구절은 동한(東漢) 말기 사람들의 관념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성모비』 원문도 아니다. 따라서 이것을 사용해서 한대 도교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특히 한대에서의 노자의 신격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 만약에 한나라 말기에는 아직 노자를 만물의 본원으로 간주하는 관념이 성립하지 않았다면, 현재 동한 말년의 오두미도 경전이라고 단정되고 있는 두 개의 돈황 도경(道經)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령 S.6825(=스타인 돈황문서 6825번) 『노자상이주』에는 이미 ‘태상노군’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그것은 도가 인격화된 것이다. 즉 도는 태상노군이고 노자이다. 이것은 아마도 동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관념은 아닐 것이다. S.2295의 『노자변화경』에서도 노자를 “자연의 지정(至精)이고, 도의 근체(根蒂)이고, (만)승의 부모이고, 천지의 근본이고, (…) 음양의 조수(祖首)이고, 만물의 혼백이다”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성모비』에서 노자를 만물의 뿌리로 간주한 관념과 궤를 같이 한다. 그렇다면 이 경전이 동한 말년에 나왔다고 말하는 것도 대단히 의문시된다.
- 劉屹, 『敬天與崇道: 中古經敎道敎形成的思想史背景』, 北京: 中華書局, 2005, 334~335쪽.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안나 자이델이 ‘노자의 신격화’ 현상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한 문헌들은 대부분 후대에 발견된 돈황 문서이다(『노자상이주』도 마찬가지). 이것은 도교의 시작을 둘러싼 문제는 도교 문헌의 성립 연대에 관한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음을 말해준다. 즉 노자의 신격화가 등장하는 도교 문헌이 언제 성립했느냐가 도교의 시작을 가름하는 핵심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상의 리우이의 주장은 일본의 도교 연구자 고바야시 마사요시(小林正美)의 학설에도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고바야시는 유교나 불교와 대비되는 ‘도교’ 개념은, 다시 말하면 일반명사가 아니라 삼교(三敎)의 하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서의 ‘도교’ 개념은, 한대가 아니라 5세기에 처음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때의 ‘도교’의 의미는 ‘도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도(=노자)의 가르침’을 의미하고, 이것은 ‘도’와 ‘노자’가 일치되었음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즉 ‘도교’라는 개념의 성립과 ‘도=노자’의 현상(=노자의 신격화가)이 거의 동시대에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교관에 입각해서 고바야시는 1990년에 쓴 『육조도교사연구』에서 『노자상이주』는 한대의 저작이 아니라 5세기의 저작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주된 근거는 노자와 도(道)가 일치된 사상이 보이고 있고, ‘태상노군’이나 ‘도교’ 등의 관념이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고바야시는 『노자성모비』나 『노자변화경』 등의 성립 연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는데, 이 문제를 리우이가 해결해 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두 가지 학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설에 따르면 편하긴 한데 리우이나 고바야시의 학설을 정면으로 반박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특히 리우이의 연구는 방대한 문헌학적 접근을 하고 있어 논의를 따라가는 것조차 만만치 않다. 반대로 통설에 따른다고 해도, 안나 자이델의 프랑스어 논문을 읽어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대안으로 일본어 번역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어쨌든지간에 도교의 시작을 둘러싼 논쟁이 시사하는 바는 도교를 연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성환_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저서로 《한국 근대의 탄생》,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키워드로 읽는 한국철학》, 《한국의 철학자들》, 《K-사상사》,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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