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종교적 유물들: 새로운 의미화, 혹은 ‘세속화profanation’의 가능성 news letter No.841 2024/7/30 전 세계 어느 박물관을 가든 거의 대부분 우리는 과거 실제 종교 의례에 사용되었던 물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고대의 무덤 흔적, 관, 부장품, 봉헌물로부터 부적의 역할을 한 다양한 물건들, 기도 용품들, 나아가 여러 종교 건축물의 제단, 벽, 천장을 장식했던 그림들, 조각들, 이 모든 것들은 오늘날 박물관의 주요 수집품이자 전시물이다. 한때 종교적 의미로 충만했던 이들은 박물관이라는 장소에 놓이면서 역사적, 고고학적, 인류학적, 예술적 유산이자 자료로 재의미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재의미화가 곧바로 종교적 맥락의 상실을 의미하진 않는다. 상반기 서점가 베스트셀러 ..
시간, 운동 그리고 점복 news letter No.840 2024/7/23 Ⅰ. 연장과 운동 철학적으로(그리고 아마 물리학적으로도) 물질은 연장(延長, extension)과 운동이다. 연장은 길이를 나타내고, 길이는 공간을 차지한다. 그래서 연장은 기하학적 공간에 스스로를 고정한 ‘공간성’을 의미한다. 운동은 움직임이다. 운동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진행을 의미하고 이러한 진행은 ‘시간’을 의미한다. 여기에 시간에 따라 변하고 움직이는 것은 ‘생명’이다. 그래서 물질은 공간이자 시간이며, 그러한 시간은 생명이고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세상에는 물질이 아닌 것이 없다. 우리는 사람조차도 물질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물질은 고정된 공간과 약동하는 생명을 가진 존재..
스미스와 올바른 종교학 news letter No.839 2024/7/16 조너선 스미스의 학문 세계를 정리할 일이 생겨 읽은 책이 샘 길(Sam Gill)의 『올바른 종교학: 조너선 스미스를 바탕으로』(2020)이다. 2017년 스미스가 사망한 이후 그의 학문적 성과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출판된 책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수십 년째 스미스와 길의 책을 읽으며 종교학을 공부해 왔던 터라 둘 다 친숙한 학자이다. 그 둘의 대화를 듣는 기분으로 읽은 책이다. 샘 길은 북미 원주민(Native American) 종교 연구자로, 스미스와 전공 분야는 달라도 이론적 관심을 공유하며 작업해 왔다. 예를 들어, 스미스의 꼼꼼한 자료 비평에 자극받아, 원주민 자료가 학자들에게 변용되어 인용되는 방식을 추적한 ..
천주교 성지(聖地), 거룩함과 공공성 사이의 어디에서 news letter No.838 2024/7/9 롤랑 조페 감독의 1986년 작 영화 《미션 The Mission》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모양이다. 개봉한 그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이 수상에 논란의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아카데미에서도 촬영상을 받았다. 미상불 아직 30대의 제레미 아이언스(가브리엘 신부 역)가 원주민 과라니족 전사들에게 둘러싸여 부는 오보에의 선율은 천상의 음률과도 같고, 과라니족을 지키기 위해 식민지 총독부에 맞서 싸우던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 분)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끝내 부족민들에게 눈길을 떼지 못하는 마지막 장면은 기억에 선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18세기 남미에서 활동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