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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190호-새해를 맞이하여(정진홍)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2. 2. 9. 12:07

새해를 맞이하여

2011.12.27


새해입니다.

세월 흐름이 끊이질 않는데, 사람들은 그 흐름을 끊어 끝이라 하고 또 처음이라 일컫습니다.

답답했으면 시간을 재단하여 연월일시로 나누면서 시간을 벗어나는 몸짓을 그렇게라도 해야 제법 시간을 관리하는 양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보면 그 짓이 아무런 효험도 없는 채 질질 시간에 끌려가다가 어쩔 수 없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있었던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모습이 애달프기 짝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한편 역의 문화처럼 인간의 인간다운 긍지를 드러내는 표지도 흔하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시간 안에 있으면서 시간을 제법 벗어나는 일이 역을 통해 실은 가능합니다. 존재의 비롯함과 끝은 시간과 무관한 것으로 여겨야 할지 모릅니다. 시간이란 그 처음과 끝 사이의 이음이니까요. 그런데 그 이음의 폭과 무게와 진정한 길이와 색깔마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지어낼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 생각하면 사람 참 귀하고 오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새해는 사람의 존엄함을 현시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런 인간의 긍지를 조용히 지워버리는 계기일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 찬 시간이 이제 막 펼쳐진다는 창창한 꿈을 꾸게 하는가 하면 또 하나의 주기를 보내면서 속절없이 낡아가는 사람살이를 확인해야 하는 마디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택일은 언제나 비현실적입니다, 불가피하게 어느 한 쪽을 선택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이지만 그렇게 선택이 산뜻하게 끝나지는 않습니다. 차마 잘라내지 못하는 자락이 늘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새해를 사는 ‘도덕’도 새 가능성을 안고 환희 작약하는 희구를 마음껏 숨 쉬면서 아울러 낡음에 관한 아련한 아쉬움을 삭이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해는 용의 해라던데 이런 새해맞이의 도덕률에서 유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화가가 용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용은 실재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상 속에 있는 실재입니다. 그래서 화가는 용을 그리고 싶었지만 모델이 없어 화실의 캔버스 앞에서 무척 긴 세월을 고뇌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용이 화가가 딱해서 자신이 모델이 돼주어야 하겠다고 판단하고는 슬그머니 화가의 아뜨리에로 들어가 모델의 자리에 살그머니 앉았습니다. 그런데 용을 본 순간 화가는 놀라서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 새해의 꿈이 화가와 같은 것이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새해에 대한 인식이 화가와 같은 것이면 참 안될 것 같습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는 지난 한 해 아주 잘 살아왔습니다,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새해에도 잘 살 것입니다. 자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꿈과 바른 인식을 아울러 지닌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연구소는 물론, 우리 회원들과 우리를 아껴주시는 모든 분들께서 새해에는 뜻 하신 바 모두 이루시고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2011년 12월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정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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