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173호-나의 종교, 남의 종교(오강남)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10. 20. 17:23

나의 종교, 남의 종교

2011.8.30



“남의 밥의 콩이 굵다.”고 한다. 다 같은 밥솥에서 퍼낸 밥인데, 남의 밥 속에 들어 있는 콩이 내 밥 속에 있는 콩보다 더 굵어 보인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아무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서양 문물과 함께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 왔다. 상당수의 한국 사람들에게 이렇게 남의 나라에서 온 서양 문물이나 그들의 종교가 더 굵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 후 계속 그 숫자가 늘어나 요즘은 신구교를 합해 기독교인의 숫자가 한국 인구의 20 몇 퍼센트라고 한다.‘선교사상의 기적’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상스런 현상은 기독교가 굵은 콩으로 보여 기독교를 받아들인 한국 사람들의 상당수가 이제는 전에 자기가 먹던 밥의 콩을 작은 콩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 썩은 콩 으로 보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하는 사실이다. 기독교만 진리요 한국 전통 종교들은 모두 거짓이라고 보는 태도가 편만하다는 뜻이다.

얼마 전 한스 큉(Hans Kng) 교수가 이곳 대학에 와서 “기독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현재의 여러 변화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래까지의‘기독교 만’이라던 패러다임(paradigm)이 청산되고 서로 다른 종교들이 서로 대화를 통해 피차 성숙한 경지에 도달하기를 목적으로 노력하는 태도가 퍼져나가는 것이라 지적했다. 상당수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들으면 펄쩍 뛸 소리다. 펄쩍 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이 지적하였듯이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음 것으로 바뀌는 변천(shift)은 하나의 혁명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간디의 자서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간디의 아버지는 힌두교 각종파의 사람들이나 이슬람교도들이나 조로아스터교인들 등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 언제나 존경심을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고 한다. 아버지 옆에서 병간호를 하고 있던 간디도 이런 영향을 받아 모든 종교에 대해 관용의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해서만은 그 당시 예외였다. 나는 기독교에 대해서 일종의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 기
독교 선교사들은 고등학교 근처 모퉁이에 서서 힌두 교인들과 그들이 믿
는 신들에 대해 욕설을 퍼붓기가 일수였다. 나는 이것에 견딜 수가 없었다.


일부 기독교인들, 특히 19세기 이전의 고전주의적(classicist) 사고방식을 가진 기독교인들 중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남의 종교를 헐뜯고 비하해야만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겠지만, 이런 방법이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하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실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천삼백여년 전 인도의 성왕 아쇼카 임금도 그의 유명한 비문 중 하나에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해 놓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남의 종교를 공대할지라. 누구든 이런 식으로 나가면, 그는
자기 자신의 종교도 신장시키고, 남의 종교에도 유익을 끼치는 것. 그 반대로
하면, 그는 자기 종교도 해치고 남의 종교에도 욕을 돌리는 것. 이것이 모두
자기 종교만을 찬양하려는 데서 나오는 일. 누구든 자기 종교를 과대선전하려면,
그는 오히려 자기 종교에 더욱 큰 해만을 가져다줄 뿐. 일치만이 유익한 것.
각자는 남의 종교에 대해 경청하고 거기 참여할지라.


윌리엄 쟌스턴 신부의 말이 생각난다. “종교의 목표가 교인수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봉사하는 것, 그리고 인류의 구원을 증진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 자신을 가만히 살펴볼 일이다. 콩이 콩인 한 그것이 내 밥에 있든 남의 밥에 있든 그 가치를 다 같이 인정해 줄줄 아는 양식이 있어야겠다.

오강남_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과 명예교수 교수

soft103@hotmail.com

주요저서로 <<예수는 없다>>, <<도덕경>>, <<또 다른 예수:도마복음 풀이>> 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