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종교평화지수, 어떻게 제정할 것인가?

- 종교평화지수 제정을 위한 콜로키움 스케치 -


2011.8.23


“종교 평화 없이 세계 평화 없다.” 세계적인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Hans Kng)의 말이다. 지극히 당연하고 단순한 말이라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선언이다. 허나 모든 위대한 말들은 지극히 단순한 것에서 나와 우리를 더 깊은 차원으로 이끌어 가는 법이니, 옛말에도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 하였겠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 한국 종교계에서는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 통용되는 듯 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웃 종교를 향해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내는 ‘믿음 좋은(?)’ 종교인들이야 진작부터 있어왔지만, 요즘은 일부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까지도 공적 영역에서 이웃 종교를 대상으로 한 ‘촌철살인’의 혐의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혐의는 사회의 여러 영역에 걸쳐 있는 각 종단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과 연결되면서 종교 간 분쟁으로 비화될 조짐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시행하는 여러 사업을 둘러싸고 종교편향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 하나의 증거이다. 현 정부 들어 불거진 정부와 불교계의 불편한 관계 역시 그러한 현상의 하나이다.

종교평화지수를 제정하는 노력은 그래서 매우 의미 있는 시도이다. 종교평화지수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종교 간 평화, 갈등, 분쟁 등을 지수로 표현한 것이다. 한 해 동안 종교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을 수치화하여 발표하게 되는데, 이는 종교 간 갈등의 심각성을 알리는 한편 종교 간 화합과 평화를 이루기 위한 객관적 가이드라인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 상황을 이제 더 이상 종교에만 맡겨놓지 않고 시민사회가 직접 챙기겠다는 선언이 바로 종교평화지수인 것이다.

이 작업은 한국종교연합(URI Korea)이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종교평화지수 프로젝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찬수 교수(강남대)외 7명의 연구자(종교학자, 철학자, 법학자)가 참여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지난 5월에 첫 콜로키움을 연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4번의 콜로키움을 열었다. 지금까지 종교평화의 개념, 지수화를 위한 방법론 등이 깊이 있게 논의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올 해에는 종교평화지수 제정을 위한 기본 작업을, 내년부터는 지수화의 구체적인 작업들을 진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종교 간 평화를 ‘지수화’할 수 있을까? 사회과학에서는 주어진 사건들 혹은 사물의 특성들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가설을 수립하고 이를 검증하는 방법으로 흔히 통계학적 수단을 사용한다. 즉, 계량화하는 것이다. 이는 경험을 객관화함으로써 다양한 사례들을 분류하고 다른 사례들과 비교 가능한 상황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계량화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바로 지수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평화지수의 핵심은 종교 간 갈등 현상을 측정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고 그것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에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크게 세 가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문제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지수화는 그 사건 속에 얽혀 있는 다양한 함의들을 생략하거나 은폐한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사건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가능성이 담겨 있어서 한 가지 해석으로 고정되거나 주변 사건에 어느 한 가지 영향만을 주었다고 단정될 수 없다.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미결성(openness) 상태의 사건을 어느 한 시점의 단일한 해석에 의해 수치화하는 것은 동시에 그 사건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의미를 배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과학적 지수 연구에 대한 인문학적 비평이 개입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한 사건의 소실된 것을 복원하고, 거기에서 결과(해석이 확정된 사건)와 동인들(원사건) 사이의 균열이 갖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균열을 발견함으로써 은폐되고 묵살된 소리들을 재현해 낼 때만이 종교평화지수 작업에서 그 ‘지수’가 갖는 위험성을 상쇄해나갈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무엇을 종교평화로 볼 것인지, 즉 종교평화를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로 설정할 것인가이다. 종교 갈등은 기본적으로 종교와 종교 사이의 문제에서 시작하지만 그로 인한 영향은 정치와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문제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서 종교가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영역에 부적절하게 관여하여 분란을 만드는 상황과 종교 본연의 역할에 따른 현실 사회 참여로 인해 벌어진 갈등 상황을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구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종교평화지수 제정에서 중점을 둘 것은 ‘종교에 의한 평화’보다는 ‘종교 사이의 평화’여야 한다. 또한 그것의 실현을 위한 제반 장치들은 가장 느슨한 형태로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러한 장치들이 자칫 개인이나 각 종단의 개별성을 침해하여 의도하지 않은 또 다른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종교평화지수를 누가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소극적 의미의 종교평화라도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어느 종교든지 국가 권력에 기대지 않아야 한다. 또한 각 교단은 다른 교단의 교리나 조직에 대한 비판을 배제하고 오로지 공적으로 인정되는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만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권력은 정교분리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수의 작성주체는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데 모두 직접 연관되어 있는 국가권력, 시민사회, 종교가 함께 되어야 한다. 아울러, 지수화 작업을 할 때 한국사회에서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위치, 종교와 시민사회의 역학관계 등을 충분히 고려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종교 지형의 특징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면서도 그 중 어느 하나의 종교가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기독교와 불교가 거의 대등한 세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한국인들은 태생적으로 다종교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일이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 모든 이들의 기본 조건인 셈이다. 이것이 한국에서 종교 간 평화가 절실한 이유이다. 종교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 없다. 한스 큉의 말은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묵직한 화두일 수밖에 없다.

오현석_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종교학과 박사과정 교수

folle@naver.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