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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학의 미래

-소강절 탄강 1000주년을 맞아-


2011.8.16


지난 4월에 역우(易友)인 윤상철씨가 『황극경세』완역본(5권)을 발간하였다. 10년 전에 초간 번역본(3권)이 나온 바 있으나, 그 초간본에는 「성음율려」부분이 누락되었는데, 이번 재간본에는 그것의 완역이 이루어진 것이다. 동양 역학계의 쾌거이다.

필자는 며칠 전에 『황극경세』를 공부하다가 올해가 소강절 선생이 탄생한 지 1000주년이라는 것을 알고 가슴이 뭉클했다. 1천년 전의 역학계를 생각해 보고, 또 1천년 후의 역학계를 생각해본다. 소강절이 역학계에 남긴 족적에 비해 아무도 그의 탄강 1천년을 기억하거나 기념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하기만 하다.

강절 소옹(1011~1077)은 자가 요부이다. 죽은 후에 강절(康節)이란 시호를 받았다. 아버지는 중국 하남 사람이고, 소강절은 낙양에서 살았다. 성품이 온화하고 부드러웠다고 알려져 있다. 노소와 귀천을 막론하고 낙양성 사람들은 소강절을 좋아하였다. 여러 차례 추천되어 관직이 주어 졌으나 매번 사절하였고, 병을 핑계로 부임하지 않았다.

진래(陳來)는 소강절의 사상적 특징을 상수파에서 전승하던 내원(來源) 사상이 담겨져 있는 것과, 안락과 소요의 경지를 제창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노사광(勞思光)은 소강절의 선천도나 여러 이론들은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하하였다. 소강절이 연역한 우주탐구가 비록 신유학의 관점을 벗어나 있다하더라도 천도변화의 도수를 밝혀 역학연구의 새 지평을 열어 놓았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소강절은 동학 이래 한국민족종교의 개벽사상과 한국역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실로 소강절의 역학은 한국에서 꽃을 피기 시작했다.

1860년 득도를 전후하여 최수운이 설정한 천도적 과제는 ‘다시개벽’이었다. 최수운은 다시개벽만이 오로지 금수 같은 세상 사람을 건지고 지상선경의 새 세상을 열수 있다고 믿었다.

개벽이란 말의 어원은 오랜 것이지만, 최수운이 말한 ‘다시개벽’이라는 말은 소강절로부터 직접적으로 받은 것이다. 소강절은 개벽(開闢)이라는 개념에 수리적 시간성을 부여하여 우주1년이라는 독특한 철학체계를 세웠다. 또 소강절은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자신의 개벽관을 음양변화의 관점에서 새롭게 정립하였다. 특히 복희선천팔괘도와 문왕후천팔괘도를 확정하여 선후천 개념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소강절은 선후천의 변화를 말했으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적 대변혁으로까지는 인식하지 않았다. 단지 『황극경세』 주석에 의하면 후천으로의 변화를 옛 것을 변경(변화)해서 새 것을 따른다는 “변구종신(變舊從新)”이라고 했을 뿐이다. 이 때가 원회운세(元會運世)에서 말하는 오회지반(午會之半)이다. 변구종신이란 극에 달한 양기운이 사그라지면서 새로운 음기운이 일어난다는 음양적 변화를 의미한다. 소강절 이후 이런 우주관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수운에 의해 이 변구종신은 '다시개벽' 또는 ‘후천개벽’이라는 말로 대체되면서 그 문맥 이상으로 크게 강조되었다. 다시 말해 오전에서 오후로 바뀌는 음양의 변화를 자연적 변화로만 인식한 것이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 그것을 우주적 근본변화로 깨달은 것이다. 최수운이 소강절과 달리 투철하게 음양의 변화를 주목한 것은 천지의 변화에 의해 동반하는 인간의 변화를 통찰하였기 때문이다. 변화의 극점인 오회지반[하루로 보면 정오 12시]을 소강절이 천지의 변화로만 설명했다면, 최수운은 그 천지변화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신령(神靈)한 인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이름이 동학(東學)인 것은 하도와 낙서가 안고 있는 중앙 토(土)가 동방의 목운(木運)으로 변한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그 변화의 기점이 1860년이다.

최수운으로부터 20여년 뒤인 1881년에 새로운 괘도가 한국의 연산 땅에 출현하였다. 이름하여 김일부의 정역팔괘도이다. 이는 소강절이 개념정립한 복희선천팔괘도와 문왕후천팔괘도를 뛰어넘는 제3의 팔괘도이다.

김일부는 “천지가 기울어진 지 2,800년(天地傾危二千八百年)이 되었다”라고 밝혔다. 문왕팔괘도는 천지가 경위(傾危)하여 건곤괘가 서북과 서남의 한 모퉁이에 치우쳐 있다. 김일부는 소강절에 의해 후천팔괘도로 명명된 문왕팔괘도를 2800년 동안 기우뚱한 부조화의 팔괘로 지적하고, 이 기우뚱한 천지를 축미(丑未) 도상(圖上)으로써 바로잡는다. 그것이 바로 곤남(坤南) 건북(乾北)으로 하늘 땅이 남북에 정위(正位)한 정역팔괘도이다. 따라서 김일부는 복희선천팔괘도와 문왕후천팔괘도를 모두 선천으로 보고, 자신의 정역팔괘도를 진정한 후천으로 규정한다.

흔히 소강절의 역학을 선천역학(先天易學)이라고 한다. 그가 말한 선천역학이란 복희역에 근원을 두고 14개의 선천도(先天圖)를 그린 것에서 연유한다. 복희역에 근원을 두었다는 말은 복희 이래 선천의 우주심법에 주목하여 우주생성의 이법을 도상화 한 것을 뜻이다. 그러나 최수운과 김일부는 선천적 우주심법보다도 후천적 우주변화 속에 살아갈 인간에 주목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불완전하다고 본 인간 속에서 최수운이 그 신령성을 발견했다면, 완전하다고 본 천지 속에서 김일부는 그 부조화를 발견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19세기에 한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천지인 합일의 획기적 우주관을 필자는 후천역학(後天易學)이라 말하고 싶다. 소강절의 선천역학은 지난 1천년 동안 동양인의 사유구조를 지배해왔다면, 한국의 후천역학은 앞으로 1천년간 세계인의 의식세계를 이끌어 가는데 그 어떤 역할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은 후천역학을 아는 사람이 적어 그 힘이 너무도 미미하다. 하지만 이미 우리 생활 속에서는 알게 모르게 모두가 후천역학의 틀 안에서 살고 있다. 후천역학의 핵심은 양(陽)에서 음(陰)으로, 사(斜)에서 정(正)으로, 씨앗에서 열매로 변하는 것이다. 그 음(陰)은 성격이 팽창보다는 수축을, 드러난 것보다는 숨어있는 것을 상징한다. 절기로는 가을과 겨울이며, 사람으로는 여성과 영(靈)을 상징한다. 또 정(正)이란 모든 비뚤어진 것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그 가장 큰 정화(正化)는 지축의 정립(正立)이다. 23.5도 기울어진 지축까지도 바로 잡아야한다는 것은 그 어느 것도 비뚤어지거나 불균형한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후천에는 경사(傾斜), 비색(否塞), 불통(不通), 불균형, 사욕(邪慾)이 사라진다는 것을 일러준다. 여성의 시대, 영성의 시대, 소통의 시대란 다 그런 미래사를 예시하는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1천년 동안 인류는 음(陰)과 정(正)과 실(實)을 향해 과거보다 더 빠른 속도로 큰 변화를 체험하며 진화(進化)할 것이다. 영화(靈化)하고 정화(正化)하며 실화(實化)가 동시적으로 전개된다. 한국에서 일어난 후천역학의 미래는 여기에 있을 것이며, 이를 심화시켜 줄 제2, 제3의 소강절 같은 석학이 출세할 때 그 전망은 더 밝아질 것이다.

이찬구_

수운교 법사원장/한국철학사전 집필위원 교수

lee2918@empas.com


주요저서로 《천부경과 동학》,《주역과 동학의 만남》,《채지가 9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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