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22호-파란색과 분홍색: 옷, 젠더, 종교 (최화선)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4:07

파란색과 분홍색: 옷, 젠더, 종교



2008.9.30

태어날 아기가 남자 아이라는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 선물 받는 출산용품은 대부분 파란색 위주다. 아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전형적인 남아용품만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주변 사람들에게 틈날 때마다 이야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에 쌓인 아기용품들 반은 파란색 계열이고 간혹 중성적 색깔로 분류되는 노란색, 흰색 등이 보일 뿐, 분홍색 계열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서구에서 남자아이 = 파란색 계열, 여자아이 = 분홍색 계열 이라는 도식이 만들어진 것은 2차 대전 이후라는 점이다. 1차 대전 전까지만 해도 오히려 반대로 남자아이들이 분홍색 옷을 입었고 여자아이들이 파란색 옷을 입었다. 게다가 수세기동안 서구에서 어린아이들이 입던 옷은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드레스처럼 생긴 옷이었다(19세기 사진들에서는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옷만으로는 전혀 구별이 안 간다).

남녀의 옷 구분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렇게 확실한 것이 아니다. 역사적, 지역적 차이에 따라 다르며 또 지금도 계속 달라지고 있다. 단지 구분 자체를 확실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항상 같이 있어왔던 것뿐이다. 어떻게 보면 사회가 옷에 배당한 젠더 규칙이 적용될 뿐, 옷 자체는 성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한 책에 실린 일화를 보면, 은퇴한 가톨릭 주교가 그동안 사용했던 전례복 - 장백의(長白衣), 띠, 영대(領帶), 개두포(蓋頭布)를 세탁소에 맡겼더니 나중에 세탁소 주인이 보내준 영수증에는 긴 드레스 하나, 끈 하나, 스카프 하나, 앞치마 하나 이렇게 적혀있었다고 한다. 가톨릭의 전례복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그 옷들을 여자들이 입는 옷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옷에 대해 부여한 젠더 규칙 때문에 그 옷이 누군가에게 입혀지는 순간, 이는 곧 한 사람의 성별을 확인하는 가장 즉각적인 방법 중 하나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성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사회와 문화가 만들어 놓은 규범을 교란시키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4세기 중반 소아시아 북부 강그라(Gangra)라는 도시에서 열린 그리스도교 공의회에서 결의된 내용 중에는 여자들이 금욕주의라는 명분하에 여자의 옷이 아닌 남자의 옷을 입거나 머리를 남자처럼 자르는 것을 금지하는 항목이 있었다. 공의회의 이 같은 결정은 당시 여성 수도자들 중에서 남자 같은 옷차림을 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글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여성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옷차림도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여자들이 ‘여자답지 못한’ 옷차림을 하는 것 역시 교회는 엄격히 반대했다. 잔 다르크가 종교재판에 회부된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남장 때문이었다는 것도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5세기 말-7세기경에 이집트, 시리아 등지에서 유행한 남장여자 수도자들에 관한 이야기들에서는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기 위해 남장을 하고 남성 수도자들과 함께 살았던 여자들이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대부분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수도자가 되기 위해 남장이라는 수단을 택하고 남성 수도자들과 어울려 살아가다가 뜻하지 않은 사건들, 주로 여성 신자들을 유혹하려했다는 혐의 등에 휘말려 마침내 그들이 원래 여자였다는 것을 밝히게 된다. 여성 수도자들이 남자처럼 차리고 다니는 것을 엄격히 반대하는 교회였지만, 이 특정한 이야기 전통에서 남장은 이들의 성인으로서의 삶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극적장치로 사용된다. 나아가 여기서 남장은 텍스트 속에서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카테고리를 교란시키며, 젠더의 역전, 이중성, 모호함을 만들어내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남자 옷을 입은 여자 수도자들은 여전히 여자이지만 동시에 더 이상 여자가 아닌 성인=이상적 남자이다. 이들은 젠더라는 것이 이미 원래부터 정해져있는 본질적,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마치 옷을 입듯이 매일 반복하는 수행일 뿐이라는 쥬디스 버틀러의 주장을 환기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옷은 여전히 성별, 젠더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젠더 정체성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옷을 입듯 매일매일 반복하는 행위들을 통해 구성되는 효과일 뿐이라면, 무슨 옷을 입는가는 어떤 젠더의 역할을 수행하는가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옷 자체는 성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것 같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또한 이분화된 젠더 구분의 모호성을 드러내고 남녀라는 고정된 젠더축이 뒤흔들릴 수 있는 중요한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다. 다른 성의 옷을 입는 것이 단지 취향의 문제로 가볍게 취급되지 않고, 사회질서와 종교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태어날 아이에게 파란색 계열만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최소한 어린 아이에게 사회가 미리 정해놓은 젠더의 틀을 절대적인 것으로 강요하지는 않겠다는 내 소박한 의지일 뿐이다. 어차피 자라면서 사회화 과정 속에서 불가피하게 이분법적 젠더 구분에 따른 수많은 편견과 강요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시달리게 될 텐데 미리부터 서두를 것은 없지 않은가.

최화선(한국종교문화연구소, hschoe@empal.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