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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09호-지령 25호를 맞이하여(종교문화비평)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4. 4. 25. 15:49

 

 

                              지령 25호를 맞이하여

 

 

                

                       


                              

2014.4.8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존재의 죽음과 사물의
                파괴 후에도,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913) -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마르셀은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헛된 일이며, 모든 지성의 노력도 불필요하다. 과거는 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고 탄식한다. 그러다 우연히 마들렌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을 입에 넣은 순간 알 수 없는 감미로운 기쁨과 함께 어둠 속에 묻혀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찬란한 빛의 시간 속으로 부활시킨다. ‘마들렌 에피소드’로 널리 알려진 이 장면에서 프루스트는 인간이 단지 이성과 인식, 의식만으로 구성된 존재가 아니라 비의지적 요소, 즉 감각적 요소에 크게 의존하는 존재임을 말해주고 있다.

 

 

        종교현상은 종종 이성을 통해 해석되기를 거부하며 저 높은 초월의 영역에 위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 합리성, 객관성에 의해 종교를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종교학자의 노력은 어쩌면 애초에 불가능한 구도에 갇혀 있는지 모른다. 종교라는 것 자체가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이성과는 다른 영역의 산물이라면 말이다. 이런 물음은 이번 종교문화비평의 중심화두가 되고 있다.

 

 

        종교가 인간의 이성이나 사변에 의한 합리적 구성물만은 아니라는 주장은 다양하게 있어왔다. 슐라이어마하는 종교의 본질을 ‘절대의존의 감정’에서 찾았으며, 루돌프 오토 역시 종교의 특성이 비합리적 요소와 ‘성스러움’이라는 느낌에 있다고 보았다. 니니안 스마트가 종교의 7가지 차원에 예술적, 물질적 차원을 포함시킨 것 역시 인간의 감성적 혹은 감각적 특성의 중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의 종교연구가 대부분 종교의 역사나, 사회적 기능, 교리와 사상에 대한 탐구에 치중하고 종교의 감각적, 물질적(예술적) 부분의 문제를 소홀히 해 왔다는 반성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 종교의 물질성과 미학을 주 관심사로 삼으며 부상하고 있는 종교연구 경향의 하나가 바로 그 예이다.

 

 

    이번 호 특집은 ‘감각의 종교학’이란 주제 하에 인간과 종교의 감각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논문들로 구성되었다. 인간은 냄새와 맛을 느끼는 능력, 즉 후각과 미각 그리고 시각 및 청각 등에 의해 삶을 영위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정신과 영혼만이 아닌 뼈와 근육, 따뜻한 체온의 물성(物性)을 지닌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 존재조건을 인정하고 종교 현상을 돌아보자는 것이 이번 특집의 근본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주요 구성요소인 상징과 이미지, 의례적 장치들, 실천적 몸짓 등은 인지적 차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보다 포괄적 접근을 요구한다. 종교는 딱딱한 책상 위에 놓여 이성적으로 분석되기를 기다리는 언어, 교리, 개념의 구성물인 것만은 아니다. 종교는 인간의 감각적 차원에 관계하고 조응하는 물질적(material) 텍스트인 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마련된 특집논문은 다섯 편이다. 이들은 종교에 인간의 여러 감각들이 어떻게 동원되고 기능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첫번째 논문 〈이미지와 응시: 고대 그리스도교의 시각적 신심(visual piety)〉은 4세기 그리스도교 순례 문헌들을 통해 순례 현상에서 드러난 시각적 신심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다. 시각적 신심은 물리적인 접촉이 아니라 ‘응시’를 통해서도 성스러움과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표방한다.〈중세 후기의 “열리는 성모상”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물질적 상상력〉은 지금까지 서양의 중세 문화를 비물질적 영성(spirituality)으로서 이해해왔지만, 중세 문화에도 영성뿐 아니라 ‘물성 (materiality)’의 측면이 있음을 주장한다. 특히 13세기 경부터 유럽에서 만들어진 “열리는 성모상”은 중세 그리스도교 신앙의 다양하고 풍부한 감각적 경험의 차원을 보여준다고 한다.〈소노 시온 영화와 ‘응시’의 종교: 환상·욕망·사랑〉은 응시와 대상, 환상과 욕망, 상상계-상징계-실재계 등의 라캉(Lacan)적 개념들을 통해 일본의 영화감독 소노 시온의 영화 <사랑의 노출>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때 시각(eye, 주체가 대상을 보는 것)으로부터 응시(gaze, 대상이 주체를 보는 것)로 전환하자는 라캉의 문제의식이 흥미롭다. 〈생태의례와 감각의 정치〉는 최근 한국사회의 저항적 생태운동 현장에서 나타나는 종교의례의 수행 및 새로운 의례 창안, 나아가 운동 자체의 의례화 현상을 몸의 경험의 차원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의례참여자들이 시각적으로 뿐만 아니라 공감각적으로 복합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과정을 참여관찰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사이버 법당’의 의례적 구성과 감각의 배치에 관하여〉는 한국 불교 사찰이나 불교단체의 홈페이지에서 행하는 온라인 의례 프로그램인 ‘사이버 법당’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시각적, 청각적, 텍스트 콘텐츠의 비중과 감각적 자극들이 배치되고 활성화되는 방식을 살펴보고, 그 안에 일종의 ‘감각의 위계질서’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자유로운 주제의 연구논문은 두 편이다.〈한국의 정교분리와 종교정책〉은 현재 국가가 종교문제를 거의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국가의 종교에 대한 이런 소극적 태도의 원인은 형식적인 정교분리의 제도시행에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사회의 종교문화의 질을 높이고 종교자원을 국가정책에 활용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종교정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원칙이 국가마다 다르게 적용되고 있는 예에 주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의 종교: 코칭프로그램의 자기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자기계발의 열풍을 대중문화의 옷을 입고 나타난 새로운 종교현상의 하나로 보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자기계발 프로그램의 하나인 [LF]의 ‘돌파구 방법론’은 ‘성스러운 이야기’ 즉 ‘신화’이며, 매일 14시간씩 행하는 고강도의 모임은 ‘의례’이며, 포럼리더는 ‘사제/구루’와 같다고 해석한다. 결국 [LF]는 대중문화의 옷을 빌린 새로운 세속종교로서, 자유와 성공, 힐링과 행복이라는 메시지로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편승하는 ‘자본가를 위한 종교’라고 평가한다.

 

 

        이번 호의 현장노트는 뿌리깊은 갈등의 역사를 보여주는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의 문제를 다루면서 그 화해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필자는 2002년, 2010년, 두 번 이스라엘을 방문하였는데, 이 글을 통해 예루살렘을 둘러싼 3대 유일신교의 갈등의 원인과 그 역사, 궁극적으로는 세 종교 사이의 상호 공생, 공존, 소통과 조화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색한다. 필자는 네베 샬롬(Neve Shalom) 공동체를 소개하고 그 곳에서 종교간 갈등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의 희망을 보고 있다.

 

 

        성물(聖物) 기행에서는 굿에서 나타나는 여러 상징적 요소들을 살펴보고 무속에서 상징적 요소가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흔히 무속을 신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심이 되는 이른바 ‘신내림의 종교’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무속에는 굿의 각 제차(祭次)마다 무당이 갈아입는 의상을 비롯하여, 제물과 꽃, 무신도와 신상 등 다양한 상징물이 발달해 있다고 한다.

 

 

        주제서평의 대상은 2013년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학술상을 수상한 김현자 선생의 《천자의 우주와 신화-고대 중국의 태양 신화》이다. 평자는 이 책의 장점으로 중국의 신화를 다른 문화권의 신화들과 비교, 분석, 설명하여, 보다 넓은 지평에서 고대 중국의 신화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고대 중국의 신성 왕권의 특성을 고대 중국의 다양한 문화의 영역들과 결합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고대 문화와 고대적인 삶의 방식 등을 지속적으로 묻도록 자극한다고 평한다.

 

 

        이와 같이 총 10편의 글이 실렸다. 각각 다양한 주제와 영역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에게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모두 포괄하는 종교의 깊이와 넓이를 다시 한번 음미할 기회를 주는 소중한 글들이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논문을 완성한 연구자들, 원고청탁을 거절하지 않은 필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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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종교문화비평>25호(2014년 3월31일 발간) 권두언에 실린 글 입니다.

 


 송현주_
종교문화비평 책임편집위원. 순천향대학교 교수
songcloud@naver.com
주요 논문으로 <서구 근대불교학의 출현과 ‘부디즘(Buddhism)’의 창안>,〈한용운의 불교· 종교담론에 나타난 근대사상의 수용과 재구성〉,〈근대 한국불교의 종교정체성 인식: 1910~1930년대 불교잡지를 중심으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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