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349호-행복, 종교, 내셔널리즘(박규태)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5. 2. 3. 22:55

                             행복, 종교, 내셔널리즘 

                                
                
                              

 2015.1.13

 

 

        지난 대통령 선거기간과 박근혜 정부 초기까지 남발되던 ‘행복’이라는 말이 요즘 거의 들리지 않게 된 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 ‘사건’의 파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행복이라는 말이 정치적 구호가 될 때 그것은 환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 담론이 종교와 결합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물음과 관련하여 현대일본사회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는 신종교 교단 <행복의 과학>(幸福の科學)은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공칭 신자수가 천만 명을 넘는다고 주장하는 <행복의 과학>은 도쿄대 법대 출신인 오카와 류호(大川隆法, 1956-현재)에 의해 1986년에 창립된 현대일본의 매우 젊은 신생 교단이다. ‘엘 칸타레’라는 지고의 영적 존재를 본존으로 하고 있고 오카와 총재는 그 엘 칸타레가 지상에 모습을 나타낸 자로 말해진다. 빈병쟁(貧病爭)으로부터의 구제를 설한 종래의 일본 신종교와는 달리, 불교의 팔정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자기정신의 향상 및 일종의 성공법칙이나 처세술에 가까운 행복의 교의를 강조함으로써 이에 공감한 비즈니스맨이나 관료들이 대거 입회하고 있다. 2010년에는 ‘행복의 과학 학원 중학고교’를 개교했으며 나아가 행복 연구를 목표로 하는 ‘행복의 과학대학’ 개교를 추진 중에 있다.

 

 

        오카와의 주장에 의하면,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일본불교의 한 종파인 <일련종> 창시자 니치렌의 제자인 닛코의 영이 강신했고, 이어 니치렌을 비롯하여 <GLA> 교조 다카하시 신지, 선지자 엘리야와 예레미야, 예수, 성모 마리아, 무함마드, 석가모니, 관세음보살, 황조신 아마테라스, <대본교> 교조 데구치 나오와 데구치 오니사부로, <천리교> 교조 나카야마 미키, 톨스토이, 우치무라 간조, 일본 <진언종> 창시자 구카이,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생장의 가> 교조 다니구치 마사하루 등 일본의 신도 신들과 종단 창시자들을 비롯하여 과거 동서양의 종교 엘리트와 위인들의 ‘고급지도령’이 차례차례 강신하여 그로 하여금 계시내용을 자동필기하게 하거나 독백형식으로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영언집>이라 하여 자신에게 접신한 이 지도령들의 계시를 책으로 펴내오고 있다. 이런 대량의 <영언집>을 포함하여 2014년 말 현재까지 오카와의 이름으로 출판된 저서가 놀랍게도 1,500여권을 넘는다.

 

 

        오카와의 저서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팽대한 내셔널리즘 담론인데, 그것은 옴사건(1995년)과 3.11대진재(2011년)를 기점으로 중요한 변화를 보여준다. 옴사건 이전의 내셔널리즘 담론에서는 ‘선택된 땅 일본과 일본인’, ‘현대의 예루살렘이자 세계의 성지로서의 일본’, ‘신의 섭리가 시작된 발상지’로서의 ‘신국 일본’, ‘시대의 중심이자 지구의 중심으로서의 일본’ 혹은 ‘은총받은 시간과 공간 속의 일본문명’ 등과 같은 일본중심주의적 선민사상이 주창되었다. 거기에는 ‘세계종교의 중심으로서의 일본종교’라는 중심상징을 토대로 정치, 경제, 종교, 과학 등 모든 방면에서 ‘세계 최고의 일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세계를 이끌어나갈 ‘키잡이’ 또는 ‘세계의 뛰어난 리더’로서의 역할을 통해 마침내 ‘새로운 영적 문명’을 창출할 ‘세계의 맹주’가 되어야 한다는 종교적 내셔널리즘의 상상력이 넘쳐난다.

 

 

        <행복의 과학>은 이런 내셔널리즘적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2009년 ‘행복 유신’을 표어로 내건 <행복실현당>이라는 종교정당을 창당했고, 같은 해 중의원 총선거에 오카와를 비롯하여 무려 337명의 입후보자를 냈으나 전원 낙선했다. 이에 앞서 오카와는 기존 <평화헌법> 제9조의 전면 폐기와 대통령제 신설을 내세운 <신일본국헌법 시안>을 공표함으로써 신인(神人)이 다스리는 신정국가의 지향성을 분명히 했다. 그 후 3.11대진재를 전후한 시기 이래 현재까지 오카와는 초기 영언집과는 달리 흥미롭게도 현재 살아 있는 인물들의 수호령이나 지도령을 초혼하여 인터뷰했다는 새로운 형태의 영언집을 폭발적으로 펴내오고 있다. 가령 현 헤이세이천황과 황태자 및 황태자비, 오에 겐자부로, 아베 총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종교학자 시마조노 스스무와 이노우에 노부타카, 푸틴, 오바마, 이명박, 박근혜, 김정은 등 그 인터뷰 대상의 면면은 유력한 정치지도자에서 작가와 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무차별적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가령 3.11대진재가 신을 경시하는 좌익정치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신정론 담론, 많은 사람들이 죽은 2014년 9월 27일의 온타케산 화산폭발을 일으킨 것이 ‘독도 수호자’인 이승만의 사령이라는 식의 혐한담론, 과거 전쟁에서 일본은 아시아 해방을 내걸고 백인우위의 사상과 유색인종 박해의 사상에 저항했다는 성전(聖戰)담론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나아가 오카와는 수상도 천황도 야스쿠니를 참배해야만 하며 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고 남경대학살도 날조라고 주장하는 등 영언을 빙자한 우경화 발언을 남발하고 있다.

 

 

        표면상 불교를 표방하면서 평화의 이미지를 유포한다든가, 종말예언을 강조하면서 신정국가를 최종적인 목표로 삼아 정계 진출을 시도한다든가, ‘인류행복화 운동’을 통한 이상사회 건설을 강력하게 주창하면서 반(反)정부적인 측면을 거침없이 노출한다는 점에서 <옴진리교>와 매우 닮은꼴인 <행복의 과학>은 작년 말 중의원 총선거에서 2석을 획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극단적인 울트라 내셔널리즘적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행복의 과학>과 <행복실현당>에서의 ‘행복’이란 말은 종교적 사랑으로 위장한 증오의 가면이라는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라고 선언해야 할까? 아직은 그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만 말해야 할 것 같다.

 

 

 


 박규태_
한양대학교
chat0113@daum.net
논문으로 <현대일본종교와‘마음’(心)의 문제-‘고코로나오시’와 심리통어기법에서 마인드컨트롤까지->,<고대 오사카의 백제계 신사와 사원연구>등이 있고, 저역서로 <<일본문화사>>,<<신도,일본 태생의 종교시스템>>,<<일본정신의 풍경>>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