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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50호-종교와 종교자유(이진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5. 2. 3. 22:58

                               종교와 종교자유 
                               

                

                       
                              

 2015.1.20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종교학과 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는 인도 출신의 샤르마(Arvind Sharma) 교수가 <<종교자유 문제화하기>>(Problematizing Religious Freedom, 2011)라는 책을 펴냈는데 요즈음 우리사회에서도 뜨거운 논쟁으로 떠오르고 있는 종교자유 문제를 재조명하는데 나름의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책의 논지를 간략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종교’ 개념과 ‘종교자유’ 개념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고, ‘서구적 종교 개념’과 ‘아시아적 종교 개념’은 서로 다른 종교자유 개념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현재 인권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서구적 종교자유 개념이고 아시아적 종교자유 개념은 무시되고 있다. 이러한 편향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아시아적 종교자유 개념을 반영한 균형 잡힌 인권담론의 형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그는 서구적 종교 개념과 아시아적 종교 개념을 먼저 비교한다. 그에 의하면 서구적 종교 개념은 배타적 종교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타자의 개종을 목표로 하는 선교지향적 종교(the proselytizing religions)의 시각을 대변하는 반면, 아시아적 종교 개념은 다중적 종교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선교 활동을 하지 않는 종교(the non-proselytizing religions)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요컨대 서구적 종교는 하나의 종교에만 소속되어야 하고 선교를 중시하는 반면, 아시아적 종교는 한 개인이 여러 종교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으며 타자의 개종을 위한 선교활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종교 개념에 의해 각각 산출된 서구적 종교자유 개념과 아시아적 종교자유 개념은 어떤 점에서는 서로 만나지만 어떤 점에서는 서로 다른 길을 간다.

 

 

        양자 모두 개인이 자신의 종교를 선택하고 표현하는 자유(freedom to choose and to manifest one's religion)를 인정한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를 ‘표현(행사)하는 권리’가 다른 사람을 개종시키는 선교의 권리까지 포함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입장이 갈린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새로운 인식은 무엇인가?

 

 

        샤르마에 의하면 우선 ‘내가 나의 종교를 바꾸는 자유’와 ‘나의 종교를 바꾸도록 요구하는 타인의 자유’를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두 자유는 대칭 관계에 있지 않음을 유념해야 한다. 나의 종교를 바꾸는 나의 자유는 사실상 무한하지만 나의 종교를 바꾸도록 요구하는 타인의 자유는 그렇지 않다. 후자의 자유는 두 자유의 충돌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즉 ‘타인의 간섭 없이 내 종교를 계속 유지하려는 나의 자유’와 ‘내 종교를 바꾸기를 요구하면서 자신의 종교를 표현하는 사람의 자유’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을 개종시키려는 후자의 자유는 자신의 종교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전자의 자유와 동일한 차원에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논리를 좀 더 부연하자면 다음과 같다. 선교지향적인 서구 종교의 경우 자신의 종교를 표현하는 자유가 개종시키는 자유(freedom to convert)와 관련되는 반면, 선교활동을 하지 않는 아시아 종교의 경우에는 개종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conversion)와 관련된다. 두 종교가 만날 경우 선교하지 않는 종교의 구성원들은 선교하는 종교의 신자들과의 관계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선교활동을 하지 않는 종교는 선교지향적 종교를 ‘개종의 위협’ 속에 놓지 않는 반면, 선교지향적 종교는 선교활동을 하지 않는 종교를 ‘개종의 위협’ 속에 놓기 때문이다. 전자는 자신의 경계선 안에서만 순회하지만 후자는 그 경계선을 끊임없이 확장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양자 사이에는 불안이 상존하는데 이는 지속적인 협상(negotiation)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면 협상의 원칙은 무엇인가? 그에 의하면 ‘자신의 종교에 그대로 남아 있으려는 권리’와 ‘자신의 종교를 타자와 공유하려는 권리’는 인간 본성에 내재한 두 근본적 지향이므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억압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현재는 서구적 종교자유 담론이 압도하는 비대칭적 상황이므로 무게중심의 이동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서구의 인권담론은 선교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기본권을 근본적인 종교자유로 철저히 인정해야만 한다. 변화가 필요할 때는 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진실이다. 그렇지만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면 변화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도 똑같이 진실이다.”

 

 

        지금까지 간략히 살펴본 샤르마의 논지는 서구 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단순하고 거칠어 보이기 때문에 비판받을 여지가 많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인권 및 종교자유 연구가 서구 근대와 기독교를 배경으로 이루어져 온 것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종교사의 맥락에서 ‘종교’ 개념의 차이에 주목하면서 종교자유 연구의 편향성을 교정하려고 하는 그의 시도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서구의 학자들과 지성인들에게는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에 쉽게 감지되지 않는 측면을 그가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인도(남아시아)’라는 그의 출신 배경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러한 면에서 그의 문제의식은 ‘한국(동아시아)’의 연구자들에게는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이진구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jilee80@naver.com
논문으로는 <미국의 문화전쟁과 '기독교미국'의 신화>, <최근 한국 개신교의 안티기독교 운동과 대응양상>, <다문화시대 한국 개신교의 이슬람 인식:이슬람포비아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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