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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 그리고 종교학 강의에 대한 단상



 

      

                                                                                                     2015.6.30

 

 

기호학과 이데올로기 비평으로 현대 신화연구에 깊은 영향을 준 롤랑 바르트는 프랑스 지식인 최고의 명예인 콜레주 드 프랑스에 취임한 후 얼마 되지 않은 1980년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와 함께 1977년 1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취임강연과 약 2년 남짓의 강의는 “어떤 운명을 예감한 제사와도 같은” ‘마지막 강의’이며 유고가 되었다. 쇠이유 출판사는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바르트가 했던 <소설의 준비>라는 주제의 강의와 <미로의 은유>, <프루스트와 사진>에 대한 세미나 노트를 함께 엮어냈고, 바르트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민음사에서는 올해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원제: La Preparation du roman I et II (Cours et seminaires au College de France 1978-1979 et 1979-1980)라는 제목의 국내 번역본을 냈다.

 

육중하고 매력적인 어조, 권위 있지만 무한한 환대를 베푸는 따뜻함이 있었다는 바르트의 강의는 유창하고 유연했지만, 녹취록과 비교해보면 탁월한 임기응변처럼 보이는 부분조차 강의노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만큼 세심한 글쓰기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글쓰기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두려움이 점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강의와 세미나는 연구와 글쓰기, 강의가 맞물리는 어떤 이상적 조화를 보여준다.

 

바르트의 강의는 원제처럼 글쓰기, 특히 소설 쓰기의 준비에 대한 것이었다. 기호와 구조, 언어의 출구없는 감옥에서 어떻게 구원의 언어, 탈권력의 언어체로 끊임없이 새로운 출구, 문학의 유토피아를 구체화할 것이냐에 대한 그의 고민이 세심한 강의 설계도 안에 구체화되어 있다: “우리는 신앙의 기사도, 초인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언어체를 가지고 속임수를 쓰는 일, 언어체를 속이는 일만이 남아 있습니다.” 편집자 나탈리 레제는 서문에서 “바르트의 강의 ‘소설의 준비’는 하나의 대답 그 이상이다. 이것은 완전한 가르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탐구의 대 항해를 보여줄 뿐 아니라 청중들 앞에서 탐구의 법칙을 극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탐구대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오로지 탐구자 자신에서 대해서만 알게 된다는 그 법칙을 말이다.”라고 쓰고 있다.


특정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바르트의 “완전한 가르침”은 완전한 글도 아니고 완전한 화언행위도 아닌, 잠재적인 대화가 특징짓는 특수한 산물로서의 ‘강의’의 일회성과 현재성에 집중되어 있다. 강의는 “처음부터 죽어야만 하는 것, 또 죽기를 원하는 것, 존재하지만 어쨌든 곧 죽을 것으로서의 발화”인 것이다. 그는 강의를 책으로 출간하는 것, 그렇게 과거를 관리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 강의노트가 출판된 것은 그런 점에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강의와 글쓰기의 긴장과 조화, 글쓰기와 말하기, 가르치기의 복합적 실천으로서의 강의의 여러 차원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풍요로운 일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는 고등실천연구원에서의 세미나식의 강의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한 테이블을 둘러싼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랑의 대화’로서의 세미나식 강의와 달리 익명의 다수청중을 향한 강의는 다른 공간에서의 새로운 대화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의 강의노트는 그러한 강의의 즉흥성과 현재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준비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사이에 삽입된 ‘미로의 은유’에 대한 세미나이다. 특정한 주제를 던지고 여러 분야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그와 같은 학제적 세미나는 청중에 대한 강의와 상호보완적이면서도 어떤 완결된 리듬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현재 대학교육에서 전공강의와 교양강의의 성격과 위상차 및 관계에 실마리를 제시한다. 소수의 종교학 전공자를 위한 강의와 종교학 교양 혹은 대중강좌는 청중, 강의 공간, 청중과 강사의 관계 등에서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종교학 학부나 대학원 교과과정만큼 일반교양으로서의 종교학, 종교학 대중강좌의 교육방향과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를 시작하던 바르트의 소회와 그가 강의와 세미나를 리드미컬하게 운용하던 방식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게다가 우리는 이러한 대중강좌가 초기 종교학사에서 했던 역할을 떠올릴 수 있다.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윌리엄 프레이저, 윌리엄 제임스 등 종교학의 선구자들은 영국 대학이 교양있는 시민을 대상으로 연 기포드 강좌(Gifford lectures)나 히버트 강좌(Hibbert lectures)에서 종교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한 대중강좌들은 초기 종교학의 사회적 확산이나 소통창구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종교학 이론의 발전에도 활력을 불어넣으며 종교학고전을 형성하는 견인차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상아탑 내에 유폐되어 있던 대학 강의들이 전형적인 평생교육강좌를 넘어서 온라인 강의, 팟캐스트와 같은 새로운 매체, 각종 콘서트와 토크쇼, 시민강좌 등 다양한 청중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면서 변형, 진화하고 있는 최근의 흐름도 예사롭지 않다. 지식 대중화의 범위나 방식이 변화되고 있는 이러한 새로운 흐름은 종교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이들에겐 하나의 도전이자 창조적 모험이 될 지도 모른다. 친밀한 사랑의 대화로서의 심포지온, 대학의 일반교양, 시민 교양 강의의 교차로에서 종교 혹은 종교학 가르치기의 서로 다른 지향점과 접점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요청되는 때가 아닌가?

이에 새로운 삶, 새로운 강의를 시작하던 바르트의 우아한 맺음말을 다시 음미하면서 그가 보여준 연구와 세미나, 그리고 강의의 맹렬한 긴장과 조화를 되새겨본다.


“한때 우리가 아는 것을 가르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는 시기가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구(chercher)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쩌면 배운 것을 잊어버리는(desapprendre), 또는 우리가 관통한 지식이나 문화, 믿음의 침전물에 망각이 부여하는 그런 예측불허의 수정작업을 허용하는 또 다른 체험의 시기가 온지도 모릅니다. 그 체험은 잘 알려진, 그러나 유행에 뒤진 한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그 어원의 교차로에서 저는 감히 스스럼없이 그 말을 다시 쓰고자 합니다. 즉 예지(sapientia)라는 말을, 어떤 권력도 존재하지 않으며, 약간의 지식과 약간의 지혜, 그리고 가능한 많은 맛을 가진 그 말을.” (롤랑 바르트, 1977년 1월 7일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강연, <<텍스트의 즐거움>> 중 <강의> 143쪽)

 

 

 

 


안연희_
선문대학교 연구교수
chjang1204@hanmail.net
논문으로 <아우구스티누스 원죄론의 형성과 그 종교사적 의미>, <“섹스 앤 더 시티”: 섹슈얼리티, 몸, 쾌락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 다시 읽기> 등이 있고, 저서로 <<문명 밖으로>>(공저), <<문명의 교류와 충돌>>(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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