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378호-“우리는 종교를 가지고 있어요”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6. 8. 24. 16:12

 

 

“우리는 종교를 가지고 있어요”




2015.8.4

 

 

1920년대 미국 기독교사와 관련하여 널리 알려진 사건의 하나는 프린스턴 신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된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논쟁으로서 이 신학 논쟁은 테네시 주에서 일어난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으로 인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이 논쟁은 당시 유럽에서 건너온 성서비평과 진화론 수용 여부를 둘러싸고 미국 개신교 신학이 분열하게 되는 분수령이 되었기 때문에 미국 개신교사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미국 남서부에 위치한 뉴멕시코 주에서는 아메리카 선주민(native American)과 관련된 논쟁이 일어났다. 19세기말 미국 서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퍼졌던 ‘유령의 춤’(Ghost Dance)이라는 우리에게 좀 더 알려진 신종교 운동과는 다른 것으로서 이 논쟁은 푸에블로인들의 춤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푸에블로인들이 행하는 전통적인 춤 의식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비밀리에 행해졌기 때문에 그들을 개종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던 개신교 선교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백인들은 이 의식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취했다. 백인들은 온갖 상상에 근거하여 선정적인 소문을 퍼뜨렸는데 그중에는 성적 난장(sex orgies),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나이든 남자들의 성적 착취, 사람을 제물로 삼는 인신공희 등의 비난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소문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서 이 의례에서는 성적 절제가 불문율이었으며 비밀 의식은 의례의 준수에 필요한 엄격한 자격 요건과 관련된 규정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선교사들을 필두로 하는 강력한 여론에 의해 미국 정부는 마침내 이 의식을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에서 푸에블로인들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이때 이들은 무장투쟁이 아니라 담론전략을 구사했다. 이 글의 타이틀인 “우리는 종교를 가지고 있어요(We have a religion)"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한 구호이다. 이 구호는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종교자유 조항(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에 근거한 것으로서 후반부 문구에 의하면 미국 의회는 ‘종교의 자유로운 실천’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할 수 없다. 따라서 만일 푸에블로인들의 춤 의례가 종교적 행위로 인정된다면 정부가 이 의식을 금지할 수 없음을 알고 푸에블로인들은 자신들의 춤이 종교적 행위라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개신교 선교사들을 비롯한 많은 백인들은 푸에블로인들의 ‘원시적(primitive)’ 춤 의식은 종교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고 주장한 반면, 푸에블로인들의 주장을 강력하게 지지한 백인 지식인들이 있었다. ‘문화적 모더니스트들’(cultural modernists)로 불리는 예술가, 작가, 인류학자들이 바로 그들인데, 이들은 당시 미국 문화가 타락했다고 보고 푸에블로인들의 ‘원시적’ 몸짓 속에 오히려 근대 문명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진정한’ 종교성을 발견하려고 했다. 물론 이들은 서양이 상실한 순수함을 ‘신비화된 동양’에서 찾고자 했던 오리엔탈리즘의 계보에 속한 자들이다. 어떻든 이들의 지원에 힘입어 푸에블로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적 춤 의식을 ‘종교’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자신들의 전통을 지속할 수 있는 ‘종교자유’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나의 역설이 등장하였다. 이들이 수용한 종교 개념은 서구 유럽의 ‘종교개혁’과 계몽주의라고 하는 특정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으로서 개인의 양심과 신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 양심 중심의 종교 개념은 종교를 선택의 문제로 간주하면서 종교의 자유를 요청한다. 따라서 이러한 종교 개념을 수용한 집단은 대내외적으로 종교자유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푸에블로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근대적 종교 개념을 무기로 활용하면서 종교자유의 권리를 획득했고 그러한 권리 행사를 통해 춤 의례의 전통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와중에 내부 이탈자가 생겨난 것이다. 서구 문명에 노출된 푸에블로인들 중에는 전통적인 춤 의식이 ‘문명’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의례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주로 젊은 층에 해당하는 이들은 그 동안 지도자들의 권위에 눌려 어쩔 수 없이 춤 의례에 참여했지만 이제 이러한 구속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를 찾은 것이다. 즉 전통적 춤은 종교적 행위이고 종교는 자유 선택의 문제이므로 이제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의례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고 이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푸에블로인 내부에 이른바 ‘전통주의자들(traditionalists)’과 ‘진보주의자들(progressives)’의 대립이 생겨났다. 전통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춤 의례는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인데 젊은이들의 이탈로 인해 공동체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는 그들이 외압을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행위의 결과로서 어떻게 보면 ‘업보’이고 어떻게 보면 이른바 ‘역사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다. 어떻든 이 문제는 푸에블로인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종교’라고 하는 개념이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 속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정치적 개념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푸에블로인들의 경우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요즈음 인도 연구와 관련하여 등장하는 ‘힌두교의 발명’(invention of Hinduism), 스리랑카의 프로테스탄트 부디즘(protestant Buddhism), 인도네시아의 아가마(agama)와 아다트(adat), 중국의 유교(비)종교론, 일본의 신사(비)종교론, 그리고 한국의 단군논쟁(신화-역사-종교)에 이르기까지 ‘종교’ 개념의 정치적 효과와 관련하여 등장하는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이는 서구 근대성의 영향을 받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이러한 사례들은 개신교를 암묵적 모델로 한 서구 근대 세속주의의 자장 속에서 형성된 종교 개념이 식민주의의 확장과 더불어 나타난 현상들로서, 종교는 어떤 본질을 지닌 고정불변의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의 욕망에 따라 끊임없이 그 내용이 (재)형성되는 매우 불안정한 논쟁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임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 이 글은 현재 예일대학교에서 미국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는 Tisa Wenger의 《We Have a Religion: The 1920s Pueblo Indian Dance Controversy and American Religious Freedom》(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9)의 핵심 내용을 필자 나름대로 재구성해 본 것이다.

 

 


이진구_
종교문화비평학회 종교문화비평 편집위원장
jilee80@naver.com
논문으로는 <미국의 문화전쟁과 '기독교미국'의 신화>, <최근 한국 개신교의 안티기독교 운동과 대응양상>, <다문화시대 한국 개신교의 이슬람 인식:이슬람포비아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