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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00호-길 위의 일본 : 道를 묻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6. 8. 24. 17:43

 

길 위의 일본 : 道를 묻다



 

2016.1.12

 

 

해가 새로 바뀌었는데 길은 낡은 그대로 있으면서 잘 보이지 않는다. 필경 내 눈이 맑지 못한 탓일 게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허접한 강박관념이 늘 나를 어디론가 밀어내고 있다. 요즘 나는 규슈올레를 걷고 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일본 <규슈관광추진기구>가 <사단법인 제주올레>에게 매년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올레시스템의 도입과 더불어 다케오 코스를 처음 개장한 2012년 이래 현재 총 16개의 규슈올레 코스가 존재한다. 그 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일본의 맨얼굴은 도(道)를 묻는 날 것 그대로의 내 안 풍경과 겹쳐지곤 한다.

 

세상에는 외길만 있는 것이 아니며, 천 길 만 길로 이어져 있는 길을 선인이든 악인이든 누구나 오고 간다. 내게 도를 묻는 일은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된다. 에도시대의 유학자 중에 이토 진사이(伊藤仁, 1627-1705)라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어맹자의』(語孟字義)에서 도를 “길 즉 사람이 왕래하고 통행하는 곳”이라고 정의내렸다. 과연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보아 알 만한 구체적인 개념을 더 선호하는 일본인다운 정의이다. 그것은 도라는 글자의 원뜻과도 잘 통한다. 도라는 말은 머리 수(首)에 책받침변(辶)이 합쳐진 글자이다. 거기서 수(首)는 인간을 가리키며 착(辶)은 멈추었다가 가고 또 멈추었다가 가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도라는 글자는 인간의 왕래와 머무름 즉 일상적인 삶 그 자체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그래서인가 일본에는 신도(神道)라든가 무사도 외에도 다도, 화도(華道), 서도, 향도(香道), 유도, 검도, 궁도(弓道), 공수도, 합기도 등 일상적이고 친근한 예능이나 무술 따위에 도라는 글자가 붙는 표현들이 많다. 이 중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기원을 가진 표현은 말할 것도 없이 신도이다. 이 신도라는 말은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 쓰였던 도교적 용어인데, 8세기초『일본서기』편자가 처음으로 그 말을 쓰게 된 이래 근대 이후 마치 그것이 일본 고유의 민족종교인 양 널리 선전되었다. 이에 비해 무사도라는 말은 에도시대 야마가 소코(山鹿素行, 1622-1685)에 의해 최초로 사용되었는데, 이 시기를 전후하여 다도, 서도, 화도, 향도, 검도, 유도, 궁도 등과 같은 표현도 하나씩 둘씩 쓰이기 시작했다가 그 후 메이지시대에 일반화 혹은 상품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전까지 다도는 ‘차노유’(茶の湯), 화도는 ‘릿카’(立花), 서도는 ‘데나라이’(手習い), 향도는 ‘분코’(聞香) 등으로 불려졌다. 그러니까 예능과 무술 등에 도라는 글자가 붙게 된 것은 에도시대 중엽 이후부터이며 그것이 오늘날과 같은 이미지로 널리 유포된 것은 주로 메이지시대 이후라는 말이다. 현대일본에서는 ‘스모도’(相撲道)라든가 ‘라면도’(ラㅡメン道) 혹은 ‘샐러리맨도’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요컨대 길이 길로 이어지듯이 일본에서 도는 끊임없이 확장되며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노자는 도를 우주의 근본적인 무형의 원리로 보면서 ‘도가도 비상도’를 말했지만, 유학자들은 불가지적, 비언어적, 우주적 천도를 소우주인 인간세계에 유비하여 인도(人道)를 강조했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도덕, 도리, 도의 등의 관념은 이런 추상적인 도 해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다른 각도에서 도를 바라보길 좋아한다. 어떤 일본인 학자가 길을 깨끗이 정화하면서 나아간다는 주술적 행위에서 유래된 말이 곧 도이며, 그 도는 궁극적인 도달점으로서의 완성된 진리라기보다는 어떤 진리에 도달하는 미완성의 과정 그 자체라고 해석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이는 정화의례를 핵심으로 하는 종교인 신도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게 그것은 도를 “인간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본래적인 진리”로 보는 스테레오타입의 선험적인 해석보다 더 매력적이다.


 

 

길의 정화는 곧 그 길을 왕래하는 인간의 정화와 치유를 뜻한다. 물론 그 정화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부단히 반복되는 의식일 것이다. 인간과 세계는 본질적으로 미완성의 취약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올 한해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까? 이 나라는, 그리고 일본은 또 어떤 길을 열어갈까? 그 길이 어떤 길이 되든 자정(自淨)의 주술적 기능이 살아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규태_
한양대학교
논문으로 <현대일본종교와‘마음’(心)의 문제-‘고코로나오시’와 심리통어기법에서 마인드컨트롤까지->,<고대 오사카의 백제계 신사와 사원연구>등이 있고, 저역서로 <<일본문화사>>,<<신도,일본 태생의 종교시스템>>,<<일본정신의 풍경>>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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