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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신사, 군대, 학교
2016.1.19
때는 조선 후기, 전라도 진산의 한 마을에 어떤 선비가 살고 있었다. 모친상을 당했는데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주를 불살랐다. 소문이 퍼져 관가에서 심문해 보니 ‘천주교’라는 ‘이단사설’에 빠진 자였다. 배교를 권했지만 사대부에게 죄를 지을지언정 천주에게는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면서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대역죄인’으로 참수된 그가 현재 한국 천주교 제1호 ‘순교자’이자 재작년 여름 광화문 앞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the Blessed)’의 반열에 오른 바오로 윤지충이다.
때는 일제시대, 평양의 한 교회에서 어떤 개신교 목사가 열심히 목회하고 있었다. 당시 일제는 신사참배를 황국신민의 의무라고 하면서 전 국민에게 강요하였다. 그런데 그 목사는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양심상 따를 수 없다고 하면서 거부하였다. 결국 그는 투옥되었고 감옥에서도 ‘일사각오’를 외치며 끝까지 거부하다가 숨졌다. 그가 현재 개신교의 순교자이자 해방 후 정부에 의해 ‘항일 독립운동가’로 인정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된 주기철 목사이다.
때는 군사정권기, 입대 연령이 되어 영장을 받은 한 대학생이 입영 명령을 거부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모든 성인 남자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있었다. “남들은 다가는 군대를 왜 안 가느냐?”고 물으니 “사람 죽이는 연습을 할 수 없어서요”라고 답하였다. 알고 보니 ‘여호와의증인’ 청년이었다.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보았지만 법원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내세워 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병역법 위반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 병역거부의 길을 선택한 대다수 여호와의증인 젊은이처럼 그는 여호와의증인 공동체 내에서는 ‘충절을 지킨 청년’으로 불릴 것이다.
때는 민주화 시대, 서울의 한 미션스쿨에 다니던 고등학생이 채플을 거부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대부분의 미션스쿨은 모든 학생에게 채플참석을 의무화하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다 참석하는데 왜 너만 거부하느냐”고 물으니 원하지 않는 종교의식에 억지로 참석하는 것이 양심에 꺼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학교당국에 예배선택권을 달라고 여러 번 건의해 보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종교자유 선언’과 ‘1인시위’를 감행하였다. 결국 학칙위반으로 퇴학당했다. 그러나 그는 법적 소송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회복하고 미션스쿨에서 관행적으로 행해져온 (반)강제적 채플제도의 문제점을 여론화하는데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현재 청소년 인권운동 분야에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강의석이다.
이 네 사건의 공통점은? 18세기말에서 21세기초에 이를 정도로 시대가 서로 다르고 등장인물의 출신 배경이 각기 다르지만 어떤 공통의 문법이 엿보인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어떤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운 개인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다. 그들은 당대 권력에 의해 각기 대역죄인, 불령선인, 병역기피자, 불량학생으로 낙인찍혀 목숨을 잃거나 투옥되거나 퇴학당했지만 그들이 속한 집단으로부터는 사후(혹은 당대)에 복자, 순교자, 충절을 지킨 자, 인권투사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이쯤 되면 ‘영웅신화’를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우리는 이 네 이야기 속에서 영웅신화의 문법을 찾아내는 종교학도의 소임을 다하면 그만인가? 이와 관련하여 한두 가지 더 생각해 볼 점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이들이 각기 거부하고자 했던 조상제사, 신사참배, 병역, 채플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이 조상제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대다수의 평범한 시민은 가까운 신사를 방문, 참배하면서 삶을 윤택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자발적으로 군입대의 길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의 결단은 존중되어야 하며, 채플에 자발적으로 참석하는 학생들의 입장 역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제사, 참배, 병역, 채플이라고 하는 의례 혹은 몸짓이 특정한 권력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무기로 전유되면서 개인들의 양심을 억압할 때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앞서 다룬 네 권력 중에서 왕조권력, 식민권력, 군사권력은 한반도에서 차례로 종적을 감췄다는 사실이다. 그에 따라 조상제사와 신사참배의 의무는 사라졌다.(병역의무만은 민주화 시대에도 존속하고 있는데 분단국의 특수성 때문인가?) 그런데 마지막 권력인 사학재단은 건재하고 있으며 미션스쿨을 통해 채플제도를 계속 운영하고 있다. ‘강의석 사건’을 통해 채플의 강제성은 완전히 해소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미션스쿨의 배후에 있는 종교권력이 자기확장의 논리 속에서 교육공간인 학교를 ‘선교어장’으로 여기는 것이 중요한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지속되는 한 어린 학생들의 양심은 억압의 회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양심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 한국 개신교 종교권력에서 순교자로 추앙하는 주기철 목사는 일제하 신사참배가 자신의 양심에 위배된다고 보고 거부하다가 희생되었다. 그런데 현재의 미션스쿨은 자신의 양심에 꺼려 채플참석을 할 수 없다고 하는 학생들에게 채플을 강요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태도는 자기분열의 증세인가?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의 결핍인가? 아니면 ‘진리강박증’의 포로인가?
이진구_
종교문화비평학회 종교문화비평 편집위원장
논문으로는 <미국의 문화전쟁과 '기독교미국'의 신화>, <최근 한국 개신교의 안티기독교 운동과 대응양상>, <다문화시대 한국 개신교의 이슬람 인식:이슬람포비아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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