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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상고사 고대사 서술
2016.1.26
지난해 11월 3일 박근혜 정부는 시민사회와 학계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했다. 정부는 현행 검인정 역사교과서가 이념 논쟁의 도구가 돼 국론 분열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해 왔다고 비판하면서 더 이상의 사회적 혼란을 막고 국민통합을 이루고자 이른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발행하겠다고 하였다. 그 확정·고시로 인하여 현행 검인정 역사교과서들은 졸지에 한국 사회에 분열과 혼란을 가져온 원흉이 되어 버렸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국정 역사교과서의 방향은 상고사와 고대사 부분을 늘리고 ‘논란 많은’ 근현대사를 대폭 축소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제기하면서 상고사 고대사의 보강을 통해 시민들이 우려하는 민족의 정기를 세우겠다고 하였다. 이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친일과 독재가 미화될 우려가 있다고 반대하는 시민사회와 학계에 대해, 오히려 민족주의를 반영하는 상고사 및 고대사 서술을 강화하겠다고 정부가 반격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이미 2013년부터 고대 동북아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상고사 고대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예컨대 박대통령까지도 2013년 광복절 축사에서 재야사서(在野史書)를 대표하고 있는 『환단고기(桓檀古記)』의 「단군세기(檀君世紀)」서문 구절('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는')을 직접 인용할 정도였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공정 대응은 북한을 견제할 수 있는 중국의 눈치를 보아야 했고,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 대처는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이미 대응 칼끝이 무뎌지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상고사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인종주의적 민족주의만 강화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본래 상고사 고대사 서술은 국내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중국 사서에 의존하거나 지금은 우리의 힘이 미치지 않는 지역의 유물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 때문에 상고사 고대사의 많은 부분은 고대로부터 전승된 설화와 같은 ‘민족의 서사(敍事)’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물론 민족설화의 서사라고 해서 민족공동체의 역사적 삶을 반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앞서 박 대통령이 언급한 『환단고기』도 선교(仙敎)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상고시대 ‘민족의 서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아마 상고사 고대사 서술에도 참고할 만한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환단고기』는 강단사학계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아직도 그 논쟁은 진행 중이다. 특히, 사서(史書)로서의 진위논쟁, 즉 금서 비전설(秘傳說)과 근대 위작설(僞作說) 간에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강단사학계에서는 아직 역사적인 고증이 불충분하다며 근대 위작설에 무게를 두는 반면에, 재야사학자와 민족종교인들은 금서 비전설에 의존하여 사서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후자에 대해 인종주의적 민족주의에 함몰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후자는 전자에 대해 사대주의와 식민주의에 물들어 있는 역사연구에 있어 기득권층들이라고 몰아세운다.
이 같은 양자의 극한적 대립은 『환단고기』에 대한 ‘사실의 검증’에만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야기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쓰인 역사는 사실의 역사와는 다를 수 있으며, 서술된 역사가 오히려 더 신화적이며, 신화의 역사가 더 사실적이고 사실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나라 잃은 위기에서 민족을 보존하겠다는 민족주의라는 신념을 담은 종교서적이다. 본질이 종교서적인 이상, 책에 대한 서지학적 논쟁은 몰라도 종교적인 서사(敍事)에 대한 사실 검증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대인의 역사를 담은 『구약성경』의 서사에 대해 누구도 사실 검증을 해야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실제로 이 책은 단군교와 관련된 종교단체(檀學會 또는 太白敎)에서 편찬되었을 뿐 아니라 현재도 그 내용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은 신념에 찬 민족주의자이거나 민족종교에 관련된 인사들이 많다. 물론 종교서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역사 서술에 활용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는 종교적인 상상력과 그에 대한 신념이 녹아 있기 때문에 민족의 서사 그 자체를 사실적 역사로 바로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장대한 민족의 서사로 이해한다면, 연구자들은 얼마든지 그것을 가지고 상고사 고대사 연구에 지적 나침반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지적 작업을 통하여 합리적으로 검증된 사실들은 적극 사실의 역사로서 수용해야 하겠지만, 역사적으로 검증이 필요치 않는 종교적인 내용까지 사실의 역사로 수용하려 한다면 세속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학계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혹시나 한국적 민족주의를 실현한다며 1970년대 폭압적인 유신체제를 만든 것과 같이. 상고사 고대사의 보완이 시민의 권리를 억압하는 국가주의적 강요 이데올로기 강화에 동원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 연구소 이사
논문으로 〈한국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 연구〉,〈근대 종교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방안〉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 《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 《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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