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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04호-정월(正月) 단상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6. 8. 24. 17:52

 

정월(正月) 단상



 

2016.2.9

 

 

오늘은 병신년(丙申年) 정월(正月) 초이틀입니다. 어제 설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해가 바뀌었습니다. 아니 해가 바뀐 건 한 달 열흘 전인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 달 열흘 전에 시작된 해는 2016년이고, 병신년은 분명히 어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음력의 육십 간지(干支)로 해를 센다면 설날이 1월 1일이니까 이날부터 해가 바뀌는 것이 맞겠지요. 달력이 두 가지이니 설도 둘입니다. 양력 1월 1일에는 새해 결심을 합니다. 해돋이를 보러 가는 풍습도 생겼고요. 음력 1월 1일에는 세배를 합니다. 아직도 많은 집에서는 차례도 지내지요. 새해 첫날이 둘이다 보니 새해를 맞는 의식도 거기에 맞추어 두 가지가 되었습니다.

 

1년에 해가 두 번 바뀌니 헛갈리고 불편하기도 합니다. 한 때 이러한 일관성의 결여가 거슬린다 하여 나라에서 음력 과세(過歲)를 금지하고 양력 과세만 하도록 강제하기도 했지만 오래된 관습의 힘에는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음력설은 지금도 당당히 최대의 명절로 대접받으며 연중 가장 긴 연휴의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2016년과 병신년 두 개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두 개의 시간은 같은 시간이면서 다른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도, 세계 표준 시간 속에서의 삶과 고유의 의례적 시간 속에서의 삶이라는 두 영역을 넘나들며 이어집니다. 그래서 해마다 설이 지나고 정초가 되면 내가 살고 있는 시간과 내 삶을 이루는 기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과거와 현재를 단절시키면서도 연속시키는 시간의 분절(分節)로서의 해 바뀜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그리고 옛날과 지금의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관념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주역의 64괘 중에서 정월을 상징하는 괘는 ‘태’(泰)괘입니다. 천하가 태평함을 상징하는 괘입니다. 괘의 모양을 보면 아래에 양(陽)이 세 개나 생겼습니다. 음(陰)의 기운이 지배하던 춥고 어두운 세월이 지나가고, 해가 점점 길어져 따뜻하고 밝은 계절,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봄의 첫 달인 정월에 어울리는 괘입니다. 그런데 이 괘는 지천태(地天泰) 곧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형상으로 이루어진 괘이기도 합니다. 이상합니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것이 정상이고 이런 상태라야 세상이 편안하고 태평할 텐데, 하늘과 땅이 서로 뒤집혀 있는 모양이 천하태평을 상징한다니 말입니다.

 

 

 

주역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변화와 소통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있는 하늘은 위로 올라가려 하고 위에 있는 땅은 아래로 내려가려 할 것이니,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늘과 땅이 서로 사귀고 소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태괘는 음양이 화합하여 하나로 뭉쳐짐을 상징하는 괘이며, 땅의 음기(陰氣)가 내려오고 하늘의 양기(陽氣)가 상승하는 형상으로 길하고 형통하는 괘가 됩니다. 그래서 공자는 “하늘과 땅이 사귀어서 만물이 소통하며, 위아래가 소통하여 그 뜻이 같게 된다.[彖傳]”고 하였고, 또 “임금은 태괘에서 천지(天地)가 소통하는 형상을 잘 관찰하여, 천지의 도(道)를 헤아려 이루고 천지의 마땅함을 도와서 다스림으로써 백성을 도운다.[象傳]”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저 태평한 세월은 소통과 화합에서 오며, 고여서 썩는 데서가 아니라 움직이며 생동하는 데서 오는 법입니다.

 

 

 

아무쪼록 올 한해는 천지와 사람의 기운이 변화하고 또 아래 위가 소통하는 가운데 태평한 세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호덕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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