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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무(巫) 관련 자료를 살피면서
2016.3.1
조선시대 실록 같은 문헌자료에는 유학자나 관료들이 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중국 고대 문헌자료를 보아도 무가 경외와 존경의 대상이기 보다는 비웃음과 힐난의 상대로 취급되었던 흔적이 발견된다. 이런 현상은 이미 선진시기부터 나타난다.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저명한 제자백가들만 해도 무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노선에 따른 비판 방식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무를 경시하는 모습은 거의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성인(聖人)이 유가를 포함하여 모든 제자백가들이 지향하였던 이상적 인물상이었지만, 단지 성인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드러냈던 것과 유사하다.
『장자』에는 열자(列子)가 계함(季咸)이라는 무의 신통력에 일시적으로 흠뻑 빠지게 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계함은 사람들의 생사와 화복을 기가 막히게 맞추는 능력이 있어서 누구든지 그를 보면 두려워 피할 정도였다. 열자도 그의 능력에 반한 나머지 자기 스승인 호자(壺子)보다 더 높게 평가하기에 이른다. 이런 제자의 반응을 접한 호자는 계함을 자기한테 데려오라고 명한다. 호자는 계함과 네 번에 걸쳐 만난다. 만날 때마다 계함은 호자의 진짜 모습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미숙함을 드러낸다. 결국 호자와의 대결에서 패한 계함은 열자가 뒤쫓아 갈 사이도 없이 쏜살같이 도망을 친다. 이 모든 장면을 목격한 열자는 그동안 자기 학문이 크게 부족했음을 깨닫고 삼년을 집밖에도 나오지 않고 정진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에피소드는 도가의 입장에서 무를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도가 이외에도 무를 폄하하는 발언들은 여기저기서 확인된다. 그 중에는 다른 사람 욕하면서 무와 같다든가, 무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든가 하는 언급도 보이는데 아마도 이런 이야기들은 무의 입장에서 가장 기분 나쁜 말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들을 접하다보면 선진시기 무는 사회적으로 지위도 낮고 주변 사람들한테서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하기 쉽다. 하지만 우주 운행의 질서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격조 높은 담론에 담아 소통시키고자 애썼던 선진시기 수많은 사상가들의 입에서 심심찮게 떠올려지고 심지어 자신들의 주장을 논증하기 위한 비판의 소재로 사용될 정도였다면, 이 당시 무를 하찮은 존재로 상상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오히려 그러한 사례들은 중국 고대 시기 무의 견고한 사회적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흔히 우리는 무에 대하여 말할 때 고대로 올라갈수록 정교일치의 상황에서 수장의 역할을 겸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을 포함한 모든 문화의 뿌리였으리라 추측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그 어떠한 주장도 타당한 증거를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니며, 단지 무가 지닌 원초성을 전제한 상태에서 논리적으로 구성된 추론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무를 고대 사회와 문화를 설명하는 만능키로 여기는 태도는 분명 매력적인 측면을 지니지만, 학문적으로는 앞으로 풀어야할 많은 숙제들을 덮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그다지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와 같은 논란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선진시기 무가 지닌 저력만큼은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누군가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건드리지도 못할 만큼 막강하지는 않았던 무의 위상이 사회개혁을 지향하는 제자백가들의 입장에서 그들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전개할 수 있었던 조건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여타의 문제를 떠나 무에 대한 선진시기 사상가들의 비판이 확인해주는 것은 무는 이 시기 종교 상황을 이해하는데 놓쳐서는 안 될 요소라는 사실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가 자신의 입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발언한 자료가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간접적으로 기록된 이야기들이 대부분인 환경에서 무를 연구하는 것은 어떤 의미와 한계를 지닐까. 어쩌면 이에 대한 고민부터 풀면서 시작하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임현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최근 논문으로 〈종교와 문자: 상대 종교적 매개로서 갑골문의 본질과 기능〉, 〈갑골문에 나타난 상대 후기 사전 체계에 대한 고찰: 주제(周祭)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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